[Opinion] 떠난다는 것의 의미 [영화]

당신은 토토가 될 자신이 있나요?
글 입력 2020.11.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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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의 한 화덕피자 가게에 걸려있는 여러 사진 중 ‘TOTO'라는 이니셜이 크게 박힌 흑백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TOTO'의 글자를 보자마자 영화 <시네마 천국>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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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한 후, 함께 있던 엄마에게 <시네마 천국>을 본 후의 감상에 대해 속사포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사실, 엄마는 나보다 더 영화광임에도 불구하고 <시네마 천국>은 사람들에게 하도 명작이라고 불려서 ‘이 영화가 진짜 잘 만들어졌나 보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떤 지점에서 명화가 될 수 있는지 깨닫는 건 아직 어렵다’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충분히 이렇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많이 소비하는 세대에선 <시네마 천국>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의 클리셰대로 영화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관적인 부분이 들어가 판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예술 작품인데 <시네마 천국>은 보기도 전에 사람들의 입에서 고전 중에 최고라고 뽑힐 만한 작품이라고 평가되기에 자신의 주관을 평가할 공간이 없이 수긍했었을 수 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랑 똑같은 생각(명작이 될 수 있었던 포인트가 무엇인지.)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시네마천국>을 본 사람, 또 앞으로 보게 될 사람들에게 <시네마 천국>이 한 번씩은 꼭 거쳐 가는 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등장인물을 앞세워 설명하고 싶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영사기 인생, ‘알프레도’


 

가방끈이 짧아, 10살 때부터 영사기를 돌리는 기술로 일평생을 살아온 알프레도. 알프레도 곁에는 영화가 온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토토가 졸졸 따라다닌다. 노인과 아이의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서로는 든든한 지기 지우(知己之友)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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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와 다름없이 마을 사람들이 관람하는 영화를 돌리는 도중, 큰 화재 사고가 일어난다. 영사기실 안이 순식간에 불로 물들자, 그 안에 혼자 있던 알프레도는 더 이상 세상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고 만다. 영화를 돌리는 일이 지겨우면서도 유일하게 듣고 보고 판달 할 수 있었던 영화라는 세계마저 알프레도에게 한순간에 증발해버렸다.

 

그 후, 알프레도 대신 영사기를 만질 사람이 필요했고, 토토는 매일 영사실에 놀러 가 어깨넘어 배웠던 기술을 토대로 알프레도의 영사실 바통을 이어받으며 학교 공부와 병행한다. 그런 토토의 모습을 지켜보고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강력한 한마디를 던져준다.

  

 
“지금은 이 극장에서 네가 필요하고 너도 일이 필요하지만 다 잠시뿐이야. 넌 다른 일을 해야 해. 중요한 일. 더 멋진 일. 인생을 걸 수 있는 일.”

“각자에겐 운명이 있거든. 여기를 떠나라. 넌 젊어 세상을 거뭐질 수 있어.”
 

 

사실, 이 말은 어른인 누구나 성장하는 청년에게 던져줄 수 있는 보편화된 조언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시선에서 말고, 알프레도의 시선에서 이 대사를 한 번 더 음미해봐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한 번도 연필을, 지우개를 굴려본 적이 없는 알프레도가 대체 어떻게 인생의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토토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이 답은 사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영사기 일을 하며 거쳐 온 모든 영화가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 공부와는 조금 달랐던 알프레도만의 수업 내용이었던 것이다. 정해진 상영시간마다 지겹게 들었던 작품 속의 영화 대사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수십 년 동안 한 공간에서 꾸준했던 진득함이 한 사람에게 잘 버물어져 사유를 만들어 주는 힘이 되어준 것이다. 이렇게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건네는 모든 언행과 조언을 통해, 우리 삶에서 영화가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를 알프레도라는 인물로 강력히 말해주고 있다.

 

 

 

큰 사람의 운명을 품고 있는, ‘토토’


 

넉넉지 않은 가정임에도 공부도 잘 따라가고, 좋아하는 일도 뚜렷한 토토. 토토는 청년까지만 해도 인생에서 아픔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물론 어릴 때 엄마의 돈을 훔쳐, 영화를 몰래 보다 영화관 광장 앞에서 두 들게 맞은 적 말고는 별 탈이 없었다.

 

그런 토토가 청년이 되어 첫눈에 반하게 된 사랑하는 여인이 생긴다. 그 여인은 은행 점원장의 딸로서, 흔히 있는 집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딸에게 반하고 만 것이다. 이를 알프레도가 알게 되어, 토토에게 덤덤하게 말을 건넨다.

 

 

“몸이 무거워지면 발자국이 깊은 법. 사랑에 빠지면 괴로울 뿐이야, 막다른 골목이기 때문이지... 존 웨인의 대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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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는 실명이 되었음에도 토토가 만지는 영사기의 초점이 흐리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듯이, 토토의 사랑이 못 오를 나무라는 것 또한 안타깝지만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토토에게 국왕의 연회에 제일 아름다웠던 여인에게 빠졌던 호위 병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100일을 공주의 집 발코니 밑에서 기다리면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했으나 국왕의 호위병사는 99일째에 떠나버린 이야기를 들려주고, 토토에게도 떠나라고 강력한 쐐기를 박아준다. 이 안에 의미는, 99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를 생각하며 기다리느라 행복하게 견딜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 것으로 마무리했다는 의미를 토토가 깨닫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토토도 어린 나이에 가슴 아픈 사랑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깨우치고, 로마로 떠난다. 그 후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족도, 친구도,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이 깃들어져 있는 고향도 찾아오지 않는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삶의 격을 높이러 작은 몸으로 홀로 떠난다.

 

알프레도의 조언대로, 토토는 머문 자리를 떠나 영화감독으로 성공한다. 한 번도 고향에 발을 내디딘 적 없던 토토가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된 계기는 알프레도의 장례식이었다. 나는 수많은 장면 중 이 지점이 나에게 울림을 준 명장면이다. 단순히 알프레도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토토의 눈물로 얼룩져버린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담백한 토토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카메라의 시선. 이 장면에서 토토의 얼굴만 따로 봤을 때는 쉽사리 아픔의 고조를 느끼는 사람의 상태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이 씁쓸하지만 어딘지 모를 무던해 보이는 표정은 그동안 토토가 타지에서 수많은 풍파와 더 큰 쓰라린 세상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지만, 그 안에 스스로 뛰어들며 헤엄친 강심장임을 알프레도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무너지고 슬퍼했던 토토는 사라졌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원했던 더 큰 세상에서 내면의 강함, 성공, 세상이 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잘 배우고, 잘 커서 돌아온 것이다. 때로는 토토의 인생처럼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또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토토는 타의에 조언으로 알아차렸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의적으로 어느 순간 물밀듯이 느끼기도 한다.

 

토토의 인생에서 ‘알프레도’와 ‘사랑’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사랑과 친구, 또 가족을 책임감 없이 뒤돌아보며 부리나케 고향을 제치고 달려 나왔다고 스스로를 판단한 토토지만, 곁에 두는 것보다 떠남으로써 더 큰 소중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토토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유지를 꿈꾸느냐, 변화를 꿈꾸느냐."

 

 

이 두 가지의 선택 중 하나는 인생이 한없이 길게 남은 청춘들만이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선택을 하든, 알프레도는 우리에게 이 대사를 던져줄 것이다.

 

 
“마지막에 뭐를 하던, 그걸 꼭 사랑하고. 철부지 시절을 기억해. 영사기 만지던 꼬마 ‘토토’처럼”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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