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 아라베스크 [연극]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
글 입력 2020.11.11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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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5).jpg

 

 

"진짜 난민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진짜로 있는데요?"
"진짜 난민이 뭐냐고 묻는데요? 자기는 진짜로 있다고 여기에."
"난민이 인정되면 그 때 난민이 되는 겁니다."
 
2018년 여름, 예멘인 마흐무드가 제주도에 왔다. 피부색, 언어, 카피에, 라마단, 아잔... 무엇 하나 익숙한 것 없이 온통 생소한 타인이다. 그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열 장 남짓한 난민인정신청서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의 진술뿐이다.
 
조사관, 보조, 통역은 그를 이 땅에 받아들여도 되는지 고민한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눈빛들이 무대 위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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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00여명이 넘는 예멘인들이 무비자로 제주도에 입국하여 ‘난민’ 문제가 불거졌다.

 

일명 ‘제주 난민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지금까지 한국 내 난민 수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 첫 예시로 꼽힐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아라베스크]는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하는 과정을 포착한다.


중앙 무대에서 세 명의 조사관, 보조, 통역이 난민에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판가름할 동안 관객은 철저하게 청자로 내몰린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있듯 경계는 이미 그어졌기에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 경계는 인종과 문화, 국가와 종교가 전혀 다른 이방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해져서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7).jpg

 

 

‘우리가 생각하는 난민이란 무엇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이나 TV에서 목숨을 걸고 타지로 향하는 난민을 보며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와서 난민 신청하는 이방인들은 이제껏 미디어를 통해 봐왔던 난민의 모습과 달랐다.

 

안전해 보이는 경로로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에 온 이방인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려는 이방인을 보자마자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도와주어야겠다는 다짐은 사라져버렸다.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는 완전한 타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행동이 수상해 보일 정도였다.


난민이라는 민감한 문제는 다루기 어려울뿐더러 까다롭기까지 하다. 단순히 옳고 그르다를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경계선 안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눈앞에 닥친 상황 이후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등 일상생활에서도 감히 언급하기 힘든 말들이 도마 위에 올려져 그 내부를 파헤친다.


한 사람을 판단하기에 현저히 부족한 자료들과 사실일지 거짓일지 알 수 없는 이방인의 진술이 무대 위를 오간다. 온정에 호소하는 듯한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통역을 거친 말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확신할 수 없는 답변들과 수상한 행동들은 의혹을 증폭시킨다.

 

그 속에서 난민 인정 신청서는 제 기능을 잃었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4).jpg


 

결국, 난민에 대한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곳에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관객들에게 판단을 넘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청자가 되어 보고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하기에는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세 쌍의 눈빛이 의심과 의혹을 하고 있기에, 그저 과정을 보았을 뿐 난민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라는 말에 연극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 주었다.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 단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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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놀땅

 

 

극단 놀땅은 2004년 9월 창단하여, 일상에 대한 예민함과 시대에 대한 관찰로 감춰진 것을 들춰내고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기를 관객에게 청하고자 한다. 연극이 관객에게 섬세하고도 색다른 체험이 되길 바라며 끊임없이 연극을 탐색하고 있다.

 

주요작품 - <연애 얘기 아님>, <사랑, 지고지순하다>, <그녀를 축복하다>, <금녀와 정희>, <1동 28번지, 차숙이네>, <예기치 않은>, <본.다>, <브루스니까 숲>, <칼리큘라>, <홍준씨는 파라오다>, <벚나무 동산>, <흔들리기>, <선을 넘는 자들>,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 <쥐가 된 사나이> 외

 


2020_놀땅_아라베스크(선돌)_포스터(최종).jpg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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