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몸을 통한 '함께-있음'의 경험;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바디무비스' [다원예술]

글 입력 2020.11.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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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2021년 말에는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지만 영국 면역 학계 권위자 마크 윌 포트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언택트를 온전히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올해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10대 트렌드 키워드, COWBOY HERO 중 마지막 챕터를 ‘휴먼터치(Human Touch)’로 정했다.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따뜻한 감성에 대한 목마름이 강렬해질 것이'기에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인간과의 단절이나 대체가 아니라, 인간적 접촉을 보완해 주는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만남, 대화, 접촉, 눈 맞춤 등 인간은 함께 있음을 인지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에 대한 드라마틱 한 인식의 전환을 맞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우리는 '언택트'와 '콘택트' 사이의 양가적 욕구를 동시에 안고 있는 듯하다. 이를 테크의 영역에서 해결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몸이란 원시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기에 인간의 손길, 감성, 공감, 사랑은 언제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자 모든 결실은 결국 이를 위해 맺어지는 것이었다.

 

 

 

바디 무비스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 1967-)는 공공장소에서 컴퓨터, 프로젝터, 사운드 디바이스, 센서, 로봇 등 전자 기기 기술을 이용한 대규모 인터랙티브 설치를 통해 관람객과 실시간 소통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의 연작 《관계적 건축 Relational Architecture》에서 <바디무비스>는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한 참여를 통해 함께 함을 실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직접 접촉이 불가한 코로나 이후의 공존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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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로자노-헤머, 《관계적 건축》연작 가운데 6번째 작품인 <바디 무비스 Body Movies>(2001), 가변크기, 네덜란드 로테르담

 

 

2001년 8월부터 9월까지 도시 로테르담의 중심가에 있는 파테 극장 (Pathé Cinema) 건물의 전면과 그 주변의 광장, 사우부르그 스퀘어(Schouwburgplein Square)를 배경으로 선보인 <바디 무비스>는 기존의 건축 물을 거대한 스크린-인터페이스로 전환하고 건축물 앞 도시 광장을 무대로 삼아 프로젝터, 그림자 추적 장치, 센서, 조명, 컴퓨터, 음향효과 장치 등을 활용하여,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참여시키는 설치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파테 극장 전면에 프로젝터를 활용하여 로테르담, 멕시코, 마드리드, 몬트리올 등의 세계 여러 도시에서 수집한 실제 인물들의 모습을 다양한 크기로 투사한다. 그리고 스크린에 강력한 빛을 비추어 먼저 투사한 인물들의 형상들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한 후, 건물 앞과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그림자 상으로 실시간 변환하여 스크린에 투영한다. 투영된 사람들의 그림자로 인해 벽면의 가려졌던 인물상들은 딸깍하는 음향 효과와 함께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고 극장 앞을 지나던 무심한 사람들은 건축물에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인물의 형상과 그림자 움직임을 인식한 후 점차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점차 '걷기'라는 행위에 대한 일상적 동기와 목적을 걷어내고, 즉흥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작품 안에서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 없이 이루어지는 표현과 놀이를 통해 사람들은 점차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며 새로운 관계에 대해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

 

관객과 예술가, 생산자와 소비자, 주체와 대상의 뚜렷한 정의와 역할의 경계가 무너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양상은 민주적 시장 질서가 강화되고 연대의식이 강한 시민 사회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트렌드이자 주체적으로 규정한 나와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진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점점 참여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는 것은 쌍방향 미디어 시대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스펙터클로 가득 찬 세상에서 수동적 관조가 불러올 고립에 대한 두려움, 혹은 참여하지 않으면 도시에서 한 점으로도 남겨질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 작품에서도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는 관객의 '참여'는 작품을 감상자와 작가가 함께 작품을 창작하는 ‘공동 제작’의 산물로서 거듭나게 한다. 직접적인 '몸'의 활동이 개입하는 참여를 통해 관람객은 작품에서 새로운 퍼포먼스와 이야기 그리고 경험을 창조해내는 공동 저자가 된다.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관계적 건축'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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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클 도시의 특성인 개인 ‘소외’ 현상은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들 간의 체험 가능한 공동체의 종결을 의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현대(Contemporary/Modern)'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지만, 급격한 변화에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빈틈은 곧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들로 무섭게 다가왔다. '관계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공존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

 

1997년부터 실행되어오고 있는 ‘관계적 건축’은 “관객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생경 한(alien) 기억 간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견고한 도시 공간을 새로운 시청각적 요소로 해체하며, 현대인의 실존감을 소외시키고 타자와의 관계를 단절시켜온 공공의 공간을 인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유동적인 예술적 장으로 재구축하고 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관계-특정성(relation-specific)’이라 명하며, 인간과 뉴미디어 간의 상호작용이 아닌, 상호작용을 통해 구축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상호작용성’의 개념은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비롯된다. 함께 있음의 경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 가깝게 연결되는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한 경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는 도시를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줄 수 있다. (...)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경험 그리고 공동체라는 느낌을 가지는 것,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것 중 하나이다. 뉴미디어 아트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상호 작용성에 대해 논의한다면 나는 ‘공동체', ‘함께-있음’ 그리고 ‘친밀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_Rafael Lozano-Hemmer

 

 

 

몸짓을 통한 ‘함께-있음’의 경험


 


 

<바디 무비스>의 핵심인 현대의 고립된 개인들이 ‘몸’과 몸을 쓰는 ‘몸짓’은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즉, 관객의 실시간 ‘참여’를 가능케 하는 상호작용적 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서로 관계성이 없는 사람들이 인체라는 공통성을 확인하며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본다. 도시의 스펙터클에서 부재된 관계성을 상기시켜 '공존'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그들의 ‘함께-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본 작품에서 ‘몸’은 나와 타인의 존재를 깨닫는 중요한 인식의 지점에 위치해있다. <바디 무비스>의 공간에서 몸들은 접히고, 펼쳐치고, 중첩되고, 겹쳐 들어가는 등 다양한 방식의 접촉(Contact)은 일상적으로 사람들의 몸이 닿고 스치는 그러한 만남과는 분명 다른 맥락의 만남이다.

 

현대 도시 공간의 전제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무관심을 기반으로 직접적으로 몸이 닿지 않는 '언택트'이지만, <바디 무비스>의 미디어 장치들이 이 공간에 삽입되면서 자신의 몸짓과 다른 이들의 몸짓의 콘택트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앞서 소개했던 언택트와 콘택트라는 현대인들의 양가적 열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통체의 가능성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코로나 이후에 다시 논의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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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로자노-헤머, 《관계적 건축》연작 가운데 6번째 작품인 <바디 무비스 Body Movies>(2001), 가변크기, 네덜란드 로테르담

 

 

몸이란 존재의 증거이기에 '공존'은 결국 우리가 '몸'이라는 덩어리를 가지고 있고 우리 주변에 다른 인간의 몸이 놓여 있음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언택트(Untact)'와 '온택트(Ontact)'를 한다고 해서 인간의 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데이터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명료한 증거는 바로 쾌락과 고통과 온기를 느끼는 우리의 '몸'이기에, 소통을 위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같은 공간에서 행위 하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지금, 여기’의 강렬한 공동 현전의 에너지는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상호 교환을 통한 ‘열림’, ‘함께-있음’은 우리의 몸을 통해 이루지는 공존이며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다른 시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주체와 타자가 유동적으로 그리고 더욱더 직접적으로 하나의 인터페이스에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예술과 이야기, 연극, 종교, 자연 그리고 시간은 영혼에 자양분을 주고 영혼의 갈망을 충족시키는 것들이기에, 기술 진보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등한 동반자들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다움을 표현하되, 더욱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_ 존 나이스비트 <하이테크 하이터치> 중에서

 

 

참고: 남이랑 (2016). 상호작용적 예술을 통한 함께-있음의 경험.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44, 21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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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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