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관은 코로나 속에서도 살아남을까? [영화]

영화관의 낭만을 좋아합니다.
글 입력 2020.11.07 16:2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영화관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관객 수가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많은 영화들의 제작 및 배급 일정이 미뤄졌다. 또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는 영화관들도 생겨났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CGV는 영화 티켓값을 인상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로 인해 영화관의 문턱은 불가피하게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한 달 구독료와 영화관 티켓 한장의 값이 맞먹는 상황에서, 제값을 주고 티켓을 구매하는 일이 더 많은 이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세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사실 이러한 위기가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영화관의 몰락 가능성은 늘 제기되어왔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각종 OTT플랫폼이 급성장하고 영화산업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파이가 커지면서, 영화관만의 고유한 장점과 존재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더 많은 의문을 느끼고 있다.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게 아닌 이상 굳이 영화관이라는 실제 공간을 방문하지 않아도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들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이들 플랫폼의 매출은 급격히 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극도로 늘어나면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중장년층 세대들도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사용법을 배워 집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관의 헤게모니 붕괴는 영화의 상영뿐만 아니라 투자와 배급의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화사와 영화관 사이에는 ‘홀드백’이라는 일종의 협정이 존재했다. 새 영화가 제작되면 먼저 극장에서 개봉한 뒤, 2~3주 이상의 기간이 지난 이후에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VOD채널에 풀리게 되는데, 홀드백은 이 유예기간을 말한다. 영화관이 다른 채널과 서비스들에 비해 수익에서 우위를 가졌던 것도 이 암묵적인 관행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관행이 점점 깨지고 있다. 2017년 넷플릭스에서 단독으로 투자하고 배급을 맡은 영화 <옥자>는 당초 넷플릭스와 영화관 동시 개봉을 목적으로 했으나, 극장가의 외면을 받아 실질적으로 넷플릭스에서만 제공된 영화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영화관 상영을 통해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 영화사들은 이제 영화관과 OTT플랫폼에서 동시에 영화를 개봉하거나 OTT플랫폼에서만 개봉하는 방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 중이다.



[크기변환]img_170155_1.png

영화 <옥자> 포스터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비슷한 종류의 위기는 과거에도 있었다. 1950년대 당시 처음 등장한 텔레비전이라는 파격적인 매체는 극장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로부터 약 20년 후 비디오의 등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영화관은 기술적 우위라는 장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텔레비전 브라운관보다 스크린 화면이 더욱 컸고, 비디오보다 영화관의 음향 시스템이 훨씬 좋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즉, 영화관만의 차별적인 장점이 명확했다. 깜깜한 암흑과 침묵 속에서 오직 스크린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약 2시간을 앉아서 영화를 보는 방식은 영화관만의 특징이었고, 동시에 장점이었다. 기술적으로 완전하게 갖춰진 공간은 상영 중인 영화로의 몰입과 집중을 극도로 높인다.

 

이처럼 영화관만이 지니는 공간적인 특징은 학자들의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이론가 장루이 보드리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의 즐거움은 인간의 원초적 쾌락에서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둡고 컴컴한 밀실공간에서 영상과 사운드에 집중하는 것은 익명성을 유지하며 타인을 훔쳐보는 관음적 행동과 유사하기 때문에 흥분을 상기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그 공간을 향유하는 관객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공간일 것이다. 내 경험을 반추해 보자면 나에게 영화관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장소다. 러닝타임 내내 영화에만 집중하도록 강제된 공간에서는 현실의 골치 아픈 일들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다. 암흑 속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하면 서서히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시공간을 비롯한 모든 신체 감각은 현실이 아니라 영화에 맞춰진다. 일종의 유체이탈인 셈이다. 이 몰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는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예고편 영상이나 리뷰를 통해 “어떤 내용일 것이다”라고 예상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익숙한 감을 지워버려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서 깊이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늘 모든 감각을 집중해서 보고 싶은 영화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것도 아니다. 흔히 킬링타임용 영화라 불리는 비교적 가벼운 내용과 분위기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보지 않아도 집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더 그렇다. 이들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영화를 인식하고 소비한다. 편리함과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영화관에 가는 것보다 넷플릭스 등을 이용해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가성비 있고 간편하다고 생각한다. 또 OTT 플랫폼들은 기존 시청 기록을 토대로 시청자의 취향을 분석해 영화를 추천해주기까지 하니 개성을 추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다수의 군중 속에 섞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영화관의 장점 역시 오늘날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영화 비평가는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사회적 행동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관에 가서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과 어둠 속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서 혹은 소수의 친밀한 사람들끼리 취향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영화를 온라인으로 다운받아 프리미엄 TV에 연결하거나 빔프로젝터를 설치하여 집이나 소규모 공간을 대여해 친구 혹은 지인들과 보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 받는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옆 사람과 수다를 떨 수도 있으니, 타인을 배려하여 정숙해야 하는 영화관에 비해 소통의 면에서 더 자유롭다. 최근 자동차 안에서 비대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동차 극장이 화제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포맷변환]씨네마포.jpg

서울 마포구에 있는 영화카페 씨네마포(CINEMA4).

4~6명이 앉을 수 있는 미니영화관이 있다. 

(출처: 씨네마포(CINEMA4)인스타그램)

 

 

영화관도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영화 외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영화 굿즈를 제작해 관객에게 티켓과 함께 제공하는 굿즈 패키지 상영회를 열거나, 숲속 캠핑장을 주제로 한 영화관, 거실처럼 밝은 영화관 등 관람객에게 흥미를 주고자 컨셉에 맞게 공간을 단장하기도 한다. 특히 엽서, 뱃지, 필름마크 등 영화의 특징을 살린 굿즈들은 관람객들에게 극장에 방문할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주며 침체된 극장가에 숨결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이유



오늘 아트인사이트에서 문화초대를 받아 모처럼 영화관에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으니, 대충 셈을 해봐도 거의 1년 만인 듯하다. 최근 거리두기가 완화됐지만, 영화관에서는 여전히 한 자리씩 띄어 앉게 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채워진 영화관에 들어서면서 오랜만의 기분좋은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코로나 사태 이후 영화관에 가는 대신 넷플릭스에서 혹은 다른 플랫폼에서 다운받는 방식으로 영화들을 보아왔으나 여전히 영화관에 가야 영화를 제대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단 시간을 내서 그 공간을 직접 방문한다는 점에서 체험의 느낌이 강하고 또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한편으로 영화관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것은 내가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영화관에는 낭만이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영화를 보는 그 공간 자체가 주는 낭만이.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이고 디지털 기계에 능숙한 나이지만,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넷플릭스를 켜기보다는 영화관에 가서 보는 편이다. 가장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서 오롯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시대에 따라 모든 것은 변화하고, 영화도 그러한 흐름 속에 있다. 앞으로 올 미래에 영화관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영화 자체가 주는 낭만과 감동은 계속될 것이다.

 

 

[오영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