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여덟 번째 목소리, 소품 디자이너 송미영

손끝에서 피어나다
글 입력 2020.11.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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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8

소품 디자이너 송미영

 


 

 
누군가와 함께한 물건에는 그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때가 묻어있다. 그것이 그저 지나간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 아주 각별한 의미로 남기도 한다. 지금 내 주변의 물건 하나하나가 멀리서 보면 자신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무대에서의 소품도 그러하다. 자연스러우면서 디테일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가 없는 것이 없다. 그렇게 소품은 무대라는 하나의 세계를 관객에게 몰입시킨다.
 
그렇다면 한 번에 수십 가지 물건을 다뤄야 하는 소품 디자이너는 어떤 생각을 하며 공연에 임할까? <윤동주, 달을 쏘다>, <소서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맨 끝줄 소년> 등 다수 공연에서 소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한 소품 디자이너 송미영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송미영.png

▲ 송미영 소품 디자이너

 

 

Q. 안녕하세요. 미영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품 디자이너 송미영입니다. 뮤지컬,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을 비롯해 무용수들이 사용하는 소품, 무대와 어우러지는 대도구, 의상과 관련된 헤드드레스(headdress, 머리에 쓰는 장식) 등 다양한 장르에서 소품 디자인 및 제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소품 디자인을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고 공부하다 보니, 대학 입시를 서양화 전공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서양화과에 진학했는데,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며 ‘졸업하고 난 후의 미래는 어떨지’, ‘내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에 관한 물음이 들더라고요. 결국, 아무런 답을 찾을 수 없었고, 자퇴를 결심하였습니다.

 

그 후, 무대미술과 친구의 추천 덕에,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다시 입시 준비를 했습니다. 입학한 후로는 무대, 조명, 의상, 소품 등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의 범위도 넓었고, 공연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해보며 흥미로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학부에서부터 연극과와 함께 공연을 제작하며 조명과 의상 디자인을 해본 적도 있지만, 소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게 가장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데코레이션’(decoration, 장식, 꾸밈)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손이 많이 가는 분야지만, 공연 때 배우가 내가 만든 것을 들고 연기하며, 관객들이 그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졸업 후, 소품 디자이너로 발 딛딜 틈을 항상 꿈꿔왔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무대 제작소, 의상팀 드레서(dresser), 소품 디자인 어시스턴트 등 오랫동안 제작에 참여하다가 서울예술단의 <바람의 나라-호동편> 무휼관 제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다시 새롭게 도전했다는 점에서 미영님에게 의미가 남다른 직업일 것 같아요. 학부 때부터 여러 분야를 공부하며 협업을 경험하셨을 텐데요. 무대, 의상 등 다른 파트와 소통하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소품의 영역을 나누기가 참 애매한 면이 있긴 하지만, 우선 대본 지문에서 설명하는 품목들을 정리한 뒤 연출부,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선생님들과 함께 회의하며 영역을 나누게 됩니다. 무대 소품의 경우, 대도구까지 소품 영역인 경우도 있고, 무대 영역으로 바뀌기도 해요. 예를 들어, 무대 도면에 책장이 속해 있다면, 소품팀에서 책장 안을 데코레이션 할 소품들을 제작하고 고정 작업까지 하게 됩니다.

 

가방, 안경, 모자 등 의상 관련 소품은 의상 디자이너 선생님과 함께 의논 후 결정합니다. 의상과의 관련도에 따라 의상팀과 소품팀의 영역이 나뉘는데, 주로 데코레이션이 많은 부분을 소품팀이 맡게 되는 것 같아요. 뮤지컬에서 많이 나오는 술집(Bar) 장면에서도 대도구를 제외한 데코레이션들은 대부분 소품팀이 담당합니다. 모든 영역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 공연이기 때문에 형태, 색감 등을 모두 공유하고 충분히 의논한 후 결정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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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재범 안무 <방랑> 中

 

 

Q. 여러 사람과 함께 만드는 무대인 만큼, 쉼 없는 대화가 이루어질 거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영님이 작업하시면서 결코 포기 못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배우들이 무대에서 ‘불편하지 않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따라서 내구성이 주요 관건이죠. 외형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연 중 사용되는 소품에 문제가 생기면 배우도 당황하게 되고, 관객 입장에서도 공연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에 무엇이든 튼튼하고 문제없이 제작하는 것이 일 순위입니다. 하지만 무게나 형태에 따라 문제가 되는 내구성 면을 극복하는 게 제일 힘든 문제이기도 합니다.

 

 

Q. 배우들이 믿고 연기할 수 있는 소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지금까지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많은 작품을 해오셨는데요, 미영님에게 가장 도전적이었거나 혹은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처음 발 딛게 했던 작품인데요, 서울예술단 <윤동주, 달을 쏘다>입니다. 소품 디자이너로서 대극장에 참여한 첫 작품이었기 때문에, 큰 열정과 애정을 갖고 정말 열심히 했던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디자인 및 제작을 맡았던 모든 작품 중 소품 리스트 품목이 가장 많고, 또 손작업이 많아서 고생도 남달랐던 공연이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관객들도 좋아해 주셔서 재공연도 많이 올려 뿌듯하고, 지금까지 작업을 꾸준하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는 공연이 전개되면서 ‘공간’도 함께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막이 오르면,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오래된 집(공간) 안에 낡은 물건들이 어지럽혀져 있어요. 인생의 세월만큼 쌓여있는 그 물건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정리되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연습실에서부터 세트 데코레이션되는 소품들이 모두 준비되어야 했고, 장면별로 정리되어 빠지는(out) 소품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플랜이 필요했죠.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졌지만 모든 것이 연습실에서부터 잘 준비되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공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국립발레단 <마타하리>는 ‘색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예민했던 작품입니다. 파일, 앨범, 소파, 침대, 테이블보, 가방 등 등장하는 소품의 컬러가 대부분 회색계열이었어요. 같은 회색일지라도, 따듯한 계열과 차가운 계열이 있는데, 원단의 경우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 중에 골라야 했기 때문에 원하는 컬러를 쉽게 찾을 수가 없어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완성 후 객석에서 모니터할 때 역시 그만큼 뿌듯했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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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 中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Q. 땀 흘려 준비한 소품이 무대 위에서 빛날 때 가슴이 벅찰 것 같아요. 유독 그런 감정을 느끼셨던 장면이 있나요?

 

공연이 올라가기 전 준비단계에서 힘들게 고생했던 일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 잊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른 봄 늦은 겨울>이라는 작품이 떠오르는데요. 배우들이 매화나무를 등에 매고 춤을 추는 장면과 ‘달항아리’ 안무 장면이 있었어요. 이때 소품이 무용수, 조명, 의상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이미지가 극대화되어, 관객들도 좋아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른 봄 늦은 겨울>의 상징적인 소품이 된 것 같아 작품이 끝난 뒤 굉장히 보람 있었고, 소품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빛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Q. 무대 위 영역들이 어우러져 일순 하나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 느껴도 참 마법 같아요. (웃음) 미영님이 지금까지 작업한 소품 중, 가장 애정하는 소품 딱 한 가지가 있다면?

 

2014년에 공연했던 <소서노>의 헤드드레스를 꼽고 싶네요. 당시 다양한 헤드드레스들이 제작되었는데, 소서노의 ‘삼족오 헤드피스’와 주몽의 ‘투구’를 가장 좋아합니다.

 

‘삼족오 헤드피스’의 경우, 심볼을 여주인공의 머리에 올렸을 때, 의상디자인과 매치가 되면서도 쉽게 체인지가 되는 등 여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소재를 다양하게 사용했고, 형태 또한 제 나름의 해석으로 풀어나갔죠. 그 과정에서 일일이 머리에 써보며 불편한 점을 보강해가는 등 여러모로 공들인 소품이었습니다.

 

주몽의 ‘투구’ 역시 남자 주인공의 멋진 갑옷에 걸맞은 멋진 투구여야 했고, 또 가벼운 소재여야 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소품이었습니다. 머리 전체를 덮는 것보다는 반 투구로 설명하는 것이 더 인상적일 것 같아 반 투구에 고구려 문양을 변형 시켜 나온 소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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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소서노> 中 '삼족오 헤드피스'
(사진: 박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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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소서노> 中 주몽 '투구'
(사진: 박귀섭)

 

 

Q. 고민이 많았던 만큼 기억에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뜻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영감을 받고자 할 때 주로 찾는 방법이 있나요?

 

이미지들을 많이 찾아보는 편입니다. 형태는 식물이나 건축, 조형 같은 구조물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과거의 모습부터 변화된 과정까지 역사적인 측면에서 공부하며 영감을 얻을 때도 있습니다. 다양한 이미지를 참고해서 스케치를 진행하며 형태, 구조, 색감을 완성합니다.

 

 

Q. 어느덧 인터뷰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요. 미영님이 평소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나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무대, 의상, 소품 등에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된 미니멀(minimal)한 작품이 있다면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작품 속 무대, 의상, 소품의 변화가 관객에게 설명을 대체하고,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문양이나 형태로 구성된 무대미술 안에서 배우의 움직임, 대사, 노래가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곤 해요. 만약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Q. 앞으로도 무대 위에서 남다르게 빛나는 미영님의 소품을 볼 수 있길 고대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빈칸을 채워 주시겠어요?

 

“소품 디자인은 ~다.”

 

"소품 디자인은 나와 동고동락하는 동반자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소품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갈망하며 지금까지 달려왔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저에게 색감, 디자인, 스케치 등 미술적인 부분은 제가 인생에서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절실한 친구이기도 하고요.

 

소품 디자인은 이 모든 것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저의 인생과 함께 갈 동반자입니다. (웃음)

 

 


 

 
작품을 앞두고 다양한 조건을 충족하는 소품을 준비하는 것이 늘 힘들지만,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서 톡톡히 역할을 하는 것을 볼 때면 정말 뿌듯하고 행복하다는 그의 마음이 와 닿았다. 매번 새로운 것을 구현해야 할 때면 벽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온 것처럼 앞으로도 공연에 애정을 다하는 송미영 디자이너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다음번 공연을 관람할 때에는 눈길을 끄는 소품에 주목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보다 아주 많은 고민과 노력이 깃들어 있을테니 말이다.
 

 


 

 

무대 밖, 그들의 목소리를 담다

과정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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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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