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연극 -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

글 입력 2020.10.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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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거야


 

성격검사의 유행은 현 세대의 성찰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한 예다. 신뢰도나 타당도를 근거로 들어 이러한 열풍에 대해 아니꼬운 시선을 보낼 수 있지만, 이런 테스트들이 어떤 안도감을 준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현대사회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아를 어떤 이미지에 잠깐 묶어 두는 것은 대단한 안도감을 준다. 그것이 온전한 진실인지는 상관없다. 사실 그것은 어떤 소통적 창구를 마련하기도 한다. 불완전하지만 어떤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한 각자의 파편을 가지고 서로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서로 이해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반대로 이러한 유행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자아의 위협을 받는지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상을 주입한다. 수많은 체계와 이데올로기, 관계 속에서 우리는 결코 온전한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 SNS 상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나'들은 선택하고 선별된 '나'일 뿐이다. 사람들은 선별된 '나'를 중심으로 소통하지만, 소통하는 그 누구도 그것이 온전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는 가상과 실재가 교묘하게 섞인 현실에 충분히 적응하고 있다.

 

SNS를 통해 자신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대, 기술발달은 분명 개인의 자아를 확장했다. 우리는 인터넷의 창에 올려진 수많은 탭처럼, 우리는 수많은 자아의 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에 취하고, 때로는 선별되고 제거됨으로써 확장된 자아를 통해 세상을 탐구한다.

 

하지만 노트북을 닫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굴까? 대체 무엇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고전적인 질문이지만, 가상과 현실이 솜씨 있게 혼합된 현실은 이 질문의 답을 더욱 난해하게 만든다. 현대사회에서 나는 파편처럼 흩어져있고, 그런 나를 둘러싼 세계는 더욱 조각나있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진실은 진실이 될 수 있을까?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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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경계 해체 쇼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의 포스터 중앙에는 얼굴 없는 여자가 묘사되어 있다. 얼굴이 묘사되지 않은 여자의 모습은 연극 내에서 자신의 삶조차 가상의 인물처럼 연기하듯 살아가는 여배우를 연상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연극에서 유독 강조하는 것이 `붉은 옷`을 입은 여배우라는 것이다. 실제로 연극에서 여배우는 붉은 옷을 입고 등장한다. 연극 시작 전에 붉은 옷을 입고 온 관객 두 명에게 선물을 주고, 극의 초반에서도 연출가는 여배우 외에도 내정되어있는 두 명의 배우가 관객 중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포스터의 주인공은 마땅히 붉은 옷을 입어야 하지만,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 포스터의 이러한 구성은 `경계를 허무는 것`을 내세우는 연극의 주제의식과 맞닿는 면이 있다.

 

연극에서 두드러지는 해체 관계는 아래와 같다. 꾸며진 나-진짜 나, 극-현실, 공연예술(동시성)-영상 매체(비동시성), 거짓-진실, 가상-현실. 일차적으로 연극은 여배우와 마임극을 중심으로 꾸며진 나- 진짜 나에 관해 이야기한다. 삼중극이라는 형식가 그 나머지의 해체를 시도한다. 삼중극이라는 용어에 따라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세 개의 이야기를 축으로 전개된다. 극 중에서 안내원을 맡은 배우가 실제 안내를 하는 `연극`이라는 상황 자체, 연극을 감상하기 위해 모인 인물들의 이야기, 앞선 인물들이 실제 관객과 하나가 되어 감상하는 마임극이 그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관객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이해하기 쉽다. 논의를 위해 관객으로써의 경험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이 연극의 시작은 관객이 `안내원`의 과장된 인사로 극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 `안내원`은 관객들이 연극적 상황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동시에 이 안내원은 연극 내에서 실제 `안내원`이라는 배역을 역할도 수행한다. 안내원은 극장 관람 예절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화장실에서 빨간색 아이폰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린다.

 

연극이 시작되고, 관객석에서 작가가 무대로 나오면서 자신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 한다. 작가가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전형적인 극장의 커튼으로 꾸몄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가상 인물의 꿈을 이야기하면서 여배우와 연출가, 후배연출가를 소개한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장면이 전환되면서 커튼이 걷어지고, 현실의 연극 매표소를 재현한 공간이 드러난다. 매표소는 현재 관객들이 감상하는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의 매표소를 재현한다. 붉은 옷을 입은 여배우와 연출가는 이에 대한 작품을 올릴 예정이다.

 

여배우는 실제로 어머니가 없지만, 어머니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꾸며서 이야기하고, 신사적인 연출가는 은근히 욕망의 시선으로 그녀를 본다. 이들은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상황이 극의 등장인물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연출가는 자신들이 극장에 올릴 작품-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그 자신들이 연기하고 있는 극 자체-를 비평한다. 그는 연극의 포인트가 여배우라는 역할의 진실과 거짓, 삼중극을 통해 드러나는 가상과 실재의 경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때 후배 연출가가 나타나 여배우의 거짓말을 비꼰다. 그 와중에 핸드폰 분실사고가 일어난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학생은 마지막으로 들어간 중년 여인을 추궁하지만, 중년 여인은 결코 자신의 가방을 열지 않는다. 경비원과 경찰까지 출동하지만 중년 여인은 도통 가방을 열지 않는다. 연출가는 여배우에게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를 묻는다. 그 와중에 연극이 시작됨을 알리고, 잠깐 암전이 된다.

 

실제 관객이 등장했던 입구로 중년여인, 핸드폰을 잃어버린 학생 두 명이 관객석 맨 앞에 앉는다. 마치 극장이 시작하기 전처럼 무대가 꾸며진다(즉, 커튼이 다시 세팅되어 있다). 학생은 큰소리로 중년 여인을 쏘아붙이고, 중년 여인은 자신의 가방을 쏟아 자신의 결백을 입증한다. 떨어진 물건에서 학생은 빨간 핸드폰을 발견하지만, 사실 중년 여인의 지갑이었다. 잠잠해진 후 마임극이 진행된다. 마임이스트는 마르셀 마르소 작품을 모티브로 한-연출가의 말을 빌리자면 매 순간 감정을 바꾸는 연기이지만, 그 모든 표정에 진실한 감정을 담고 있는-마임을 보여준다.

 

사실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삽입되었는지 모르지만, 후반에 작가가 등장해 양자역학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핸드폰 분실사건에 관해 이야기 한다.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사건이 존재할 확률과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존재하므로 핸드폰 역시 그 중간 어딘가에 빠져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좌우간 마임이 끝나고, 여배우는 연출가를 기다린다. 여배우는 연출가를 꼬셔 배역을 얻으려 하지만, 후배 연출가의 고발로 그녀의 거짓말이 탄로 난다. 그 와중에 지나가는 소개팅 남녀는 중년 여인이 붉은색 핸드폰을 개천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배우는 웃으면서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의 극본을 허공에 던져버리면서 연기 속에서 춤을 춘다. 그녀는 반복해서 `나는 나를 기억한다`를 반복한다. 그녀는 속여왔던 엄마의 존재를 그리워했었던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등장해 연극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모든 연극은 단 한 순간만 존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감동적이면서 허무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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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현실의 모사, 연출의 힘


 

사실 이 작품의 비평은 어렵다. 난해해서 어렵기보다는, 더는 덧붙일 말이 없다. 인터넷의 탭같이 다양한 층위를 오가는 것처럼, 이 작품도 다양한 층위를 오가고, 그중 하나에는 그 자신에 대한 해석을 포함한다. 위에서 기술했던 것처럼 연출가의 입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한 핵심적인 메시지-삼중극, 해체, 가상과 현실의 갈등-가 전달된다. 작가의 입을 통해 이 작품이 지향하는 가치, 즉 가상이라는 연극이 실재에서 가지는 의미와 실존의 힘을 드러낸다. 이러한 메시지는 예술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결론으로 확장된다. 작품의 제목인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다양한 해체를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준다. 혁신적인 연출은 이 작품의 명료함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연극의 주제의식은 관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었지만, 교묘한 솜씨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라서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명료하고 완결성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극에서 하이퍼텍스트를 재현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연극 이후 이어지는 영화에 대해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영화는 앞선 연극의 내용을 영화로 재현한다. 영화는 연극에서 지향하는 경계의 해체, 하이퍼텍스트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하나의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실제 영화는 연극의 내용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연극예술과 영상 매체를 비교하는 재미는 있었다. 영화의 키노아이, 철저하게 계산된 장면은 비동시적 예술을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영화는 너무나 충실하게 연극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었다. 이왕 경계의 해체를 선언했다면, 영상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노골적인 연출이 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연스럽게 클로즈업을 한다거나, 특이한 효과를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이다. 이 작품이 현대사회를 반영하는 방식은 적절할 뿐만 아니라 매우 명료하다. 삼중극이라는 난해한 주제의식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던 것은 작품의 구조와 연출이 크게 이바지했다고 본다.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는 파편화되고 하이퍼텍스트 적 현실에서 예술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담아낸 수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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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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