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짧게 잘 쓰는 법 -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었다

글 입력 2020.1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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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글을 써 본건, 그러니까 나만의 글을 써 본건 중학교 때다. 그 시절 유행하던 양산형 판타지라고 부르는 소설에 빠져 나도 친구와 함께 그 양판이라는 글을 썼다.

 

고등학교 때는 신문부 기자로 활동했다. 25살이 된 지금은 컬처리스트로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다. 정리하면 글을 달고 산 인생이다. 그래도 아직 글을 잘 쓰는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글을 잘 쓰지도 않았고 잘 쓰고 있지도 않으며 그냥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쓰고 있다.

 

 


짧게 쓰는 글



나는 수시나 정시로 대학에 진학하는 루트를 따라가던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입시생이었다. 문과생이라 국어 시간마다 수능특강을 붙잡고 비문학을 열심히 읽고, 분석하고, 해석하고, 요약했다. 복잡하게 꼬인 긴 문장을 어떻게든 짧게 풀어내는 법을 배운 뒤에는 논술을 준비하며 복잡하게 꼬인 긴 글을 쓰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를 교육을 받고 대학에 와서 나는 다시 글 쓰는 법을 배웠다.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한 학과라는 이유로 모든 수업이 영어였기에 영어로 글 쓰는 법을 배웠다. 책 내용처럼 나, 즉 I로 문장을 시작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내 의견을 ‘나’로 시작하지 못 하는 21세기 홍길동이 되었다.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히는 게 아니라 글이 턱 하고 막혔다.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작가만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친구에게 건네는 톡 하나로도 글을 쓴다. 새벽에 자려고 누웠다가 감성에 취해 SNS에 올리는 다음 날 이불 걷어차며 후회할 문장으로도 글을 쓴다. 결국 글이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써 내려가는 행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길어지고 별로 없으면 짧아지는 게 자연스럽다. 구태여 줄이거나 늘리면 하고 싶은 말보다 더하거나 덜 하니 찝찝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에게 이 말을 하고 싶을까만 생각하면 참 간단하고도 가볍게 써질 글이 괜히 어려운 이유였다.


우리는 시는 짧은 글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품고 있다. 하지만 산문시라는 길게 늘여진 시가 있다. 우리는 산문은 보통 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시산문이 있으면 안 될 이유도 없다. 굳이 글을 쓸 때도 질소를 사면 과자가 딸려오는 기이한 현상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이 책이 나에게 건넨 한 마디는 그랬다.

 

 

 

글을 씁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글과 쓰고 싶은 내용이 다르다. 내가 추구하는 글은 비유하자면 눈이 가벼워지는 글이다.

 

어려운 말은 최대한 쉽게 풀어내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미사여구는 덜어내서 막히지 않고 술술 읽히는 쉬운 글이다. 문제는 이런 글을 쓰는 게 썩 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내가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 가지를 생각하면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답을 내리면 그 답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이 따라온다. 그에 대한 답에는 또 그 답에 관한 생각이 붙는다. 정신 차리고 이 생각의 연속을 멈추지 않으면 어느샌가 내 글에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어딘가에서 제발 방 좀 치우라는 아무개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에 황급히 필요한 내용을 찾고 추려내기 바쁘다. 정리를 끝내면 체력이 바닥나있다. 귀찮음이 몰려오고 풀어내려는 노력을 거부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어려운 용어로 대충 얼버무린 전혀 가볍지 않은 글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아마 꽤 가볍게 읽어질 거라고 본다. 작가의 조언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쓰고 있으니 만약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이 책의 효과를 직접 경험하는 중이다. 나는 긴 글을 써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긴 글로 장황하게 이어지는 것보다 짧은 문장의 연속으로 리듬을 타듯 글을 쓰는 게 읽는 사람에게나 내 사고회로나 여유를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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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 쓰는 법
- 쓴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
 

지은이 : 벌린 클링켄보그
 
옮긴이 : 박민

출판사 : 교유서가

분야
인문 > 독서/글쓰기

규격
130*200mm (양장)

쪽 수 : 264쪽

발행일
2020년 08월 20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90277-62-4 (03800)





저자 소개


벌린 클링켄보그(Verlyn Klinkenborg)
 
<뉴욕타임스> 편집위원. 뉴욕주 북부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관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모아 『전원생활The Rural Life』과 『단순하지만 충만한, 나의 전원생활More Scenes from the Rural Life』을 출간했다. 그 외 지은 책으로 『건초 만들기Making Hay』 『마지막 좋은 때The Last Fine Time』 『티모시; 가련한 거북이에 관한 기록Timothy; or, Notes of an Abject Reptile』 등이 있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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