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06. 본전 뽑기

어디에도 있는 본전
글 입력 2020.09.29 17:3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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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른다.jpg

 

 

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 <본전 뽑기>로 이어갑니다.


*


나는 때로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용기를 내는 바람에 다분히 충동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밥먹을 때 잠깐 볼 영화를 고르는 것도 30분이 걸릴 만큼 대부분의 생활에 있어서 신중한 편이다. 그리고 그 신중함은 본전과 관련이 있다. 본전은 '원가 또는 그것에 해당하는 돈'을 뜻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본전은 시간을 의미한다.

 

난 시간에 관대한 편이었다. 심심하다고 생각될 땐 하릴없이 잠을 잤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유롭게 넘쳐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을 땐 최저시급인 4200원보다 적은 4000원만 받고 10시간씩 5일 동안 편의점 매대를 지켰다.

 

내 인생을 바꿀 만큼 아주 중요한 비밀을 깨닫게 된 건 경영학 수업이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경영학 수업을 맡고 있던 호기심 많은 교수님 덕분이다. 그녀는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눈빛이 강렬했던 분이었다. 실제로 교수님은 여군이었던 이야기, 보험설계사로 월 천만 원 번 이야기, 남자친구가 실종됐던 이야기, 실패사업 박람회에서 벌레 튀김을 구매했다는 이야기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교수님은 어느 날 문득 "여러분은 돈과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를 포함해 학생들이 대답하지 않자, "돈이랑 시간 되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써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 이후에 수업내용이 뭐였는지 전혀 기억 못 할 정도로 큰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난 한 번도 진지하게 돈과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큰돈이 없었기 때문에 돈이야 깊이 생각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겠지만, 시간을 흐르는 대로 흘려 보냈다는 사실에는 강펀치라도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이러한 사건 이후로 나는 본전을 따지게 됐다. 이전과 달리 나에게 시간은 아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이상 심심하지 않았다. 잠을 줄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나와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관계를 정리하고 눈에 띄게 멀어졌다. 그리고 나의 시간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 또한 배려하게 됐다. 금전적인 대가를 받는 일을 구할 때의 기준도 바뀌었다. 단지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는 일이 아니었으면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이 잘한 선택인지 알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본전은 아주 나중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시급보다 못한 시급을 받고 일했던 편의점에서는 유통기한이 빠른 것은 앞에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장을 볼 때 매우 유리하다. 기업의 전략에 당하지 않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유통기한이 넉넉한 제품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병맥주 하나를 덜 계산했다고 해서 윽박지름을 당하고 쥐꼬리만 한 일급에서 오천 원이 까였던 맥줏집에서는 심플로트라는 브랜드의 클링클 컷 감자튀김이 저렴하면서도 맛있고 2kg을 주문하여 봉투에 10개씩 소분해 놓으면 먹기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기 전공 수업을 수강하며 연기를 계속해서 좋아하고 이어나가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됐지만, 익숙한 장소를 새롭게 느끼는 방법이나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감정과 뒤이어 나올 행동을 유추해 보는 일, 이를테면 눈치를 기르는 일에 도움이 됐다.

 

영화관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화난 사람들은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어학원에서 일한 건 맞춤법과 말솜씨에 이루 말하지 못할 도움이 됐고 콜센터에서 일한 건 배달음식을 시킬 때 종이에 써서 주문하던 나의 전화 공포증을 깨줬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이번 글의 소재를 정했고,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로켓배송 뒤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람들과 육체노동의 존엄함을 알게 됐다.

 

본전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늦게 돌아올지 모르니 시간을 쓰는 데에 조금 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호기심 많은 교수님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되새긴다. 나의 시간에 대한 본전을 찾는 행위는 반복될 것이다.

 

*

 

저는 황인숙의 「시간」이라는 시에서 "나는 시간으로 선명한 조약돌이에요"라는 시구를 좋아합니다. 저라는 사람 또한 과거에 선택한 시간의 총집합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시간을 제 글을 읽는 데에 써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TMB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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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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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지
    • 오늘도 잘읽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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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의세상
    • 성지성지님 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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