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른 목에 시원한 물 한 모금 같았던 - 2020 인디애니페스트

글 입력 2020.09.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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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물이라는 표현은 너무 상투적인 걸까. 하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상업성을 띄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막 같은 영화계에 꽁꽁 숨겨진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온 기분이었다.
 
사실 씨제*나 쇼박*가 독식하는 영화 산업계에 갈증을 느껴 기존의 방식을 뒤엎고 신선하고 독특하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던 것이 벌써 근 몇 년 째다. 그런 나의 갈증을 ‘2020 인디애니페스트’는 아주 시원하게 해소해주었다.
 
모든 파트를 다 관람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요소에 부딪혀 필자가 관람하게 된 파트는 ‘독립보행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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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 속 어떤 요소들이 나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는지는 키워드를 뽑아 다뤄보려 한다.
 
 
 
과감한 메시지 전달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되었을 때의 시끌벅적했던 반응을 기억하시는지. 단순히 그 영화가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82년생 김지영 보러 가자는 여자는 거른다.’는 식의 소리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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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호랑이와 소>
 
 
‘인디애니페스트’의 작품들은 ‘인디(독립영화)’에 ‘페스트(축제)’인 만큼 그런 외부적인 잡음을 배재한 채 메시지를 소신 있게 던진다는 점에서 사이다를 마신 듯한 통쾌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끊임없이 대물림되는 가부장적인 시스템의 폐해를 엄마와 자신의 띠별 동물인 호랑이와 소에 빗대어 전달하거나(<호랑이와 소>), 육아로부터 탈출하고픈 엄마들을 불빛을 보면 탈출하는 성향이 있는 ‘나방’으로 표현하여 전달하기도 하고(<집나방>) 또 고등학생의 임신과 임신중절 수술의 과정을 백석의 시 ‘수라’에 담아 전달(<수라>)하는 과감함은 이것이 더 이상 ‘과감’이 아니라 당연히 다룰 수 있는 문제임을 전달하는 첫 발걸음 같아 가슴을 울렸다.
 
메시지가 강렬한 만큼 내용적인 면에서 전달하는 방식도 놀랍도록 과감했다. 작품 <조금 부족한 여자>의 경우, 현대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감이라는 메시지를, 신체가 부분 부분 토막 난 채 따로 돌아다니 것으로 시각화한 충격적인 내용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엽기적인 내용을 귀엽게 표현한 데서 오는 충격 때문인지 상영 중간중간, 괴로움의 신음(?)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상업영화라면 꿈도 못 꿨겠다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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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부족한 여자> 스틸컷
 
 
 
실험적인 표현 방식

 

애니메이션 축제인 만큼 실사영화가 가지는 한계들을 초월한 기발한 표현방식들도 인상적이다.
 
기승전결의 구조가 전혀 없이 음악에 맞춰 변화하는 이미지만으로 작품을 보여준다든가(<정처 없는 길>) 개개인의 불만과 고민을 화장실 휴지 위에 시각화한다든지(<사연은 변기를 타고>) 사물에 얽힌 이야기를 100% 수작업으로 제작된 클레이 모션 방식을 사용(<물건들>)하는 등 시각·청각적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앞서 말한 작품 <물건들>의 경우, 제작자들의 피땀 눈물을 갈아 넣은 영상미가 수작업의 대가인 감독 ‘미셸 공드리’ 뺨치는 정도의 것이어서 우리나라 영화계의 앞날이 기대될 정도였다. 물론 그런 황홀한 표현방식이 가치 있게 여겨지고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형성되어야 그런 인재들이 빛을 발할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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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들> 스틸컷
 
 
 
내용의 다양성

 

작품 <친화득 B>의 경우 굉장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와 내면의 정말 별 것 아닌 생각들을 소재로 다루었다. 이런 걸로 영화를 만든다고? 싶었는데 같이 갔던 지인은, 그 별 것 아닌 일상을 다뤄준 것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 작품들 중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치매와 노화와 같은 무거운 주제(<40>)를 다루기도 했는데 이처럼 크고 작은 소재들이 다양하게 스크린에 상영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축제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이와 같은 과감한 메시지 전달, 실험적인 표현 방식, 소재의 다양성 등 평소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갈증을 해소해주는 요소들이 반드시 이런 ‘축제’에 와야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닌, 주말 대형 영화관을 가도 당연하게 마주할 수 있는 때가 하루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고 인디애니페스트를 즐기며 생각했다.
 
다만 영화제 내내 좀 아쉽다고 느껴졌던 점은, 아시아 최대의 독립 애니메이션 축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복잡하고 찾기 어려웠던 안내 부스, 또 직관적이지 않은 프로그램 안내 홈페이지나 홍보 내용 등 인디애니페스트로 진입하는 장벽을 꽤 높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한국 인디 영화의 부흥을 염원하는 자로서 굉장히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 좋은 걸 나만 알고 혼자 봐야 하다니. 부디 이런 부분은 다음 축제 때 보완되어 열에 다섯은, 아니 열에 아홉은 인디애니페스트의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감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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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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