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 전성시대 [문화 공간]

요즘 집들 참 바쁘죠?
글 입력 2020.09.24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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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집 전성시대다. 최근 나오는 한 와이파이 광고는 집 안을 비추며 이런 내레이션을 얹는다. “요즘 집들 참 바쁘죠? 서재는 회사가 되고, 주방은 카페가 되고, 작은 방은 피트니스 센터가 되고, 테라스는 극장도 되고...”

 

코로나 19로 인해 열심히 가동되는 것은 마스크 공장뿐만이 아니다. 집이 그 어느 때보다 사용되고 있고, 관심받고 있다. 광고 문구처럼 집 밖에서 영위되던 많은 생활 기능들이 집으로 들어와 각자의 자리를 한 켠씩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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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인테리어는 이제 트렌드가 아닌 일상이 되었으며, 인테리어업체·어플의 성장세는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에서는 ‘가든 오피스’라고 불리는, 집 안 마당에 들이는 조립식 오피스 키트의 인기가 지난해보다 올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주말 나들이를 포기하고 선반 뒤로 보기 흉한 전선들을 감추는 일을 한다. 부엌에 적당한 작업대를 설치하는 문제를 놓고 신중하게 궁리한다. 잡지에 나온 집, 너무 비싸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집에 사는 상상을 하다가 이내 슬픔을 느끼곤 한다. 혼잡한 거리에서 매혹적인 사람을 지나칠 때처럼.”

 

-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열심히 꾸며야겠다는 욕심이 솟고, 인스타그램 저장 목록에는 갖고 싶은 값비싼 빈티지·모듈 가구들의 목록이 늘어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텅 빈 통장 잔고를 보면 매혹적인 사람에게 그 멋진 옷은 어디서 샀냐며 질문 하나 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야 하는 때와 같은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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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장의 세계는 이런 상황마저 대안이 있다고 응한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잘 꾸며진 펜션, 빈티지 가구로 꾸민 북유럽식 스테이, 사진만으로도 황홀한 에어비앤비 숙소들이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잡지 속 집을 나같이평범한 사람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런 숙소들은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자기 집에 머무르다 지루함과 한계를 느낀 사람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남의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 또 집으로. 집에 대한 열기가 심상치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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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늘어나는 숙박 시설들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집 예능’이다. 가장 먼저 운을 뗀 것은 현대인들의 집구하기를 대신 도와준다는 컨셉의 ‘구해줘 홈즈’이다.


어쩌다가 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친구와 방송을 보면서 나눈 대화에는 부정적 뉘앙스만 가득했다. 수영장이 있는 집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수영장이 관리하기 정말 힘들대.’, 뽀샤시하게 펼쳐지는 마당 딸린 집을 보면서 ‘마당 있으면 벌레 진짜 많이 나올텐데.’, 천장이 엄청나게 높은 집이 소개되는 것을 보면서 ‘에어컨 틀면 시원해질 때까지 반나절은 걸리겠다.’라며 딴지를 걸었다.

 

왠지 모를 질투 같은 감정이 생겨났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겹게 집값을 맞추고, 끝없는 서류에 지끈거려 하면서 사인을 하고, 체리색 몰딩에 꽃무늬 벽지를 피한 집이라는 이유로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허겁지겁 계약을 맺던 내 모습이 떠올라 초라해지면서도 눈은 계속 텔레비전을 향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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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내가 찾을 땐 없는 좋은 조건의 집들이 구해줘 홈즈에는 많이 나온다’며 감탄한다. 그 밖에도 줄줄이 연예인들의 집을 정리해주는 ‘신박한 정리’, 연예인들이 로망인 집에 살아보는 ‘나의 판타집’ 등 집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솟아오르고 있다.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의 감각을 무시하고 환경에 우리 자신을 무디게 만들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 또 한구석에는 우리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는 우리가 있는 곳과 지울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 우리는 이 모순되는 두 충동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는 것 같다.”

 

- [행복의 건축]

 


시청자들은 잡힐 듯 말 듯한 일종의 가상현실체험을 하게 된다. 집에 자신의 취향을 깃들일 의지는 점차 사라지고, 프로그램이 이끄는 대로 환상의 날개를 펼치다가 프로그램이 끝나면 함께 끝이 날 뿐이다.


그런 와중에 집 예능의 비현실성은 걷어냈지만, 경험과 환경, 취향을 무시하지 않고 되려 이런 정보를 모아 집을 소개해주는 부동산 중개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간단히 가격과 평수만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집들을 소개하는 도쿄R부동산에서 따와, 건축된 집들을 에세이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공인중개사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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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요즘의 거주 현상과 잘 맞아 들어가는 매력적인 집들이 나긋나긋 고르게 펼쳐져 있었다. 잠깐 둘러본 정도이고 아직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서비스는 아니기에 이 사업의 행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곧게 걷기 시작한 발자국 한 발짝처럼 달게 느껴졌다.

 

집 전성시대에 많은 사람이 집 때문에 울기도, 웃기도 한다. 집은 칼과 같다. 칼이 주관과 개성이 있는 요리사의 손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의 마음과 배 속을 풍족하게 하고, 날카로운 칼의 기능에만 눈이 멀어 멋대로 휘두르는 자의 손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이 울게 될지 모른다.

 

집에 애정을 쏟고 정체성을 함께 키우는 공간으로 여긴다면 사람을 능가하는 위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집 전성시대는 더 크게 휘청거릴지 모른다.


 

“집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 집은 정체성의 수호자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소유자들은 밖으로 떠돌던 시절을 끝내고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했다. ... 이 집이 그 거주자들의 수많은 병을 치료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 방들은 행복의 증거를 보여준다.”

 

- [행복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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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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