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쓰는 구미호 전설 - 천년여우 여우비 [영화]

글 입력 2020.09.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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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설화


 

우리는 종종 교활하거나 매혹적인 인물을 보면 ‘여우 같다’라는 말을 한다. ‘여우 같다’는 말이 만들어질 만큼, 구미호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설 속 요괴 중 하나다. 구미호는 아홉 꼬리를 가진 신통력을 지닌 요괴로, 사람을 매혹하여 그 힘으로 사람의 간을 빼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TV 공포 시리즈인 <전설의 고향> 애청자였다면 구미호를 빼어난 미모와 잔혹한 성품을 지닌 요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생간을 먹는다는 잔혹함 속에서도 간을 내어줄 만큼 사람을 홀린다는 의미에서 매력적인 존재인 만큼, 구미호 설화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구미호 설화를 공유하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구미호가 기록된 건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해경>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처음 식인 요괴로 등장한 구미호는 오랜 세월을 거쳐 각색되어 지금까지도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곧 방영 예정인 <구미호뎐>, 웹툰 <천년구미호>, <간 떨어지는 동거>, 만화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 등 여러 매체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


 

주인공 ‘여우비’는 구미호로 10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인간의 나이로 치면 10살인 아이로,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 6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아직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은 천진난만한 여우비는 구미호가 인간이 되려면 인간의 영혼을 훔쳐야만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인간은 멍청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한 여우비는 관심 없어 하며 요요들과의 생활에 집중한다.

 

요요들이 겨우 우주선을 고치고 다시 그들이 살던 별로 떠나려고 했으나, ‘말썽요’의 실수로 우주선이 망가져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사라지고 만다. 겨우 고친 우주선을 잃은 것에 분노한 요요들이 ‘말썽요’를 심하게 나무라면서 말썽요는 억울한 마음에 인간이 머무는 마을 쪽으로 도망친다. 요요들과 여우비는 말썽요에게 심한 말을 한 것에 반성하여 인간 마을로 간 말썽요를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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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요는 수련관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잡혀 있었다. 여우비와 요요부대는 수련관 천장을 통해 잠입해서 말썽요를 빼 오려고 하는데, 여전히 삐져있던 말썽요는 돌아가길 거부하면서 여우비가 수련관에 학생으로 들어가 말썽요를 빼내려고 한다. 갑자기 전학 온 여우비를 보며 아이들이 여우비를 경계하지만, 빠르게 수련관 생활에 적응한다.

 

특히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던 소년 황금이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다. 황금이와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된 여우비는 말썽요를 되찾아 오겠다는 계획은 뒤로하고 여우비는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낸다. 여우비는 구미호가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푸른 영혼은 '사람이 누군가를 절실하게 사랑할 때 나타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황금이를 좋아하게 된 걸 자각한다. 황금이를 좋아하게 된 여우비는 점차 인간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구미호 사냥꾼이 수련관에 나타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구미호인 여우비를 사냥꾼이 추적하면서 매일같이 부적과 사냥개들의 위협에 시달린다. 어느 날 사냥개들에게 쫓겨 습격받을 찰나, ‘그림자 탐정’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그림자 탐정은 여우비가 구미호라는 걸 알고 흥미를 느끼며 여우비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는 '사랑의 진심을 전하려는 인간에겐 푸른 영혼이 보이게 되며, 그걸 빼앗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며 여우비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는 영혼을 담을 도구라면서 영혼 상자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건넨다.

 

황금이는 여태껏 여우비를 좋아했다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여우비에게 진심을 보인 그 순간 황금이의 푸른 영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 다시 돌아온 영혼 상자가 푸른 영혼을 흡수하려던 순간, 다시 나타난 구미호 사냥꾼이 영혼 상자를 밟아 제지하고, 여우비가 영혼을 훔치려 한 것으로 오해해 부적을 날려 여우비의 정체를 드러내 버린다. 사냥꾼에게 쫓기던 황금이와 여우비는 얼마 못 가 영혼이 머무는 곳인 카나바의 입구가 열리는 호수가 보이는 절벽 끝에 몰려 결국 카나바의 입구로 떨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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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이의 영혼은 ‘새’가 되어 사라진다. 황금이를 쫓아 카나바의 입구를 지난 여우비는 눈앞에 보인 한 새장 가게를 발견한다. 새장 가게 안에는 수없이 많은 새들이 담긴 새장 더미들이 있다. 여우비는 많은 새장 속에서 금이를 찾을 자신이 없어 절망한다. 이때 그림자 탐정이 다시 나타나 여우비를 부르며 도와주겠다고 제안하고, 그림자 탐정은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보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한다. 덕분에 금이의 영혼을 찾아낸 여우비는 새장을 빼내지만, 새장을 빼내는 순간 새장 더미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새장의 관리자로 보이는 토끼 영혼들이 여우비를 쫓아온다.

 

추적을 피해 겨우 금이의 영혼을 구했지만, 갑자기 그림자 탐정이 금이의 영혼을 삼켜버린다. 사실 영혼 상자는 그림자 탐정의 심장이었고, 그림자 탐정의 진짜 목적은 영혼을 손에 넣어 육신을 갖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우비를 이용했던 것이다. 드디어 영혼의 힘으로 생명을 얻어 그림자에서 벗어났다며 기뻐하던 그림자 탐정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여 새장 가게를 부수고, 새장과 눈덩이들을 몸에 둘러 골렘의 형상을 갖는다. 그러나 새장의 관리자들인 토끼 영혼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그사이 그림자 탐정에게 흡수되었던 여우비는 그림자 탐정의 심장을 물어버리고, 결국 그림자 탐정은 육신이 붕괴하여 사라지고 만다.

 

여우비는 겨우 금이의 영혼을 구출할 수 있었으나, 영혼의 관리자인 ‘삼바바’가 여우비를 저지한다. 여우비는 황금이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실수였다며 금이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지만 삼바바는 카나바에 들어온 영혼의 수는 항상 똑같아야 하고 한 영혼이 나가기 위해선 또 다른 영혼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여우비는 황금이의 영혼을 구한 대신 자신의 영혼을 새장 속에 담아버린다. 지상으로 돌아온 황금이는 여우비를 찾지만, 여우비와 다시 만나지 못하고 수련회가 끝나며 떠나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카나바의 삼바바는 여우비의 영혼을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고 여우비는 평범한 인간 학생으로 환생한다.

 

 

 

구미호 설화와 여우비


 

 

오랜 옛날, 산속에는 구미호라고 불리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들이 살았습니다. 구미호는 다른 동물이나 사람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었는데, 어떤 구미호들은 인간의 영혼을 훔쳐서 진짜 사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두려워한 사람들이 구미호를 찾아 죽이기 시작했고 구미호들은 세상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버려진 새끼 구미호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처음 나오는 문장이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우를 구미호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구미호는 동물이나 사람으로 변하는 신통한 능력을 지녔다는 건 우리가 아는 구미호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여우비는 인간에게 위협하기는커녕 호기심만 많은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다.

 

오히려 구미호의 능력으로 가장 강조하는 건 ‘영혼을 훔치는’ 행위이다. 우리가 구미호를 종종 싱싱한 인간의 간을 빼먹는 잔혹한 동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간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괴담일 뿐이며 사실은 영혼을 뺏는 게 구미호의 능력이라고 밝힌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영혼에 초점을 두어 여우비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열망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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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혼이란 무엇인가. 사실 모든 존재는 영혼을 몸에 지니고 있다. 영혼은 ‘하얀색’이지만,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영혼이 ‘파란색’으로 변한다. 구미호는 파란색으로 변한 영혼을 훔칠 수 있다.

 

 

“영혼이 있을까?”

“그럼, 모두가 영혼을 가지고 있어.”

 

 

영혼에 색깔이 있을까? 색깔이 있다고 한들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어떤 것들은 마음으로만 보인다.’라며 영혼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는 없지만, 분명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걸 직접 확인하려고 했을 때, 커다란 균열이 생긴다. 금이와 오해가 쌓인 것, 그리고 금이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며 영혼이 파란색이 되었을 때 그림자 탐정의 기계가 금이의 영혼을 억지로 확인하여 빼앗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금이의 빼앗긴 영혼은 영혼의 세계인 ‘카나바’의 공간으로 가버린다. 여우비가 금이의 영혼을 되찾으려고 관리자에게 자신의 실수라고 호소했지만, 관리자는 그게 실수가 아니라 금이의 운명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즉, 세상에서 일어난 것은 누군가의 실수가 맞더라도 그건 운명적으로 원래부터 일어날 예정이었던 일이다.

 

운명 속에서의 여우비의 대처 방식은 흥미롭다. 여우비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법칙에 압도되었음에도 운명에 맞선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가져가는 대가를 낳았음에도 금이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운명을 거슬렀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존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는 삼바바가 새장에 담긴 새를 때가 되었다며 풀어주는 장면이 나온 후 인간으로 환생한 여우비를 보여준다. 이는 당장 생명을 잃었다고 해서 자신의 운명이 끝난 것이 아니라 환생하면서 다시 자신만의 운명이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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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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