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논하며 – 도서 '고요한 인생'

체념의 반복
글 입력 2020.09.1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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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변이라고 포섭하기도 어려운


 

주변부로도 포함하기 어려운 삶들이 있다. 신중선의 소설집 ‘고요한 인생’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러하다. 인물들의 생이 흩어진 글자들을 읽으며, 그들의 인생으로부터 직접적인 접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런데도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 바람이 차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인물들의 상처가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나는 나를 온몸으로 밀어내는 듯한 동네의 근처 미용실로 가 미용사에게 머리를 내어준 상태였다. 시국이 바이러스로 삼엄했던 탓인지 미용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창문 밖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멀찍이 엄마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앉아있던 와중에, 머리에 따끔한 염색약이 칠해지는 동안 이 소설집을 읽었다. 염색약의 열기로 머리가 따끔거릴 때마다 페이지가 자연스레 넘어갔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으로도 열기가 들어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남편의 문란한 여자관계와 사생활로 나락에 치달은 명희의 운명을 읽어가면서. 끊임없이 서울의 근처를 걸어다니며 이름 모를 공허를 채우고자 악을 썼던 남자의 인생을 목도하면서.

 

분명, 삶의 주변부에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망설여졌던 사람들이었다. 고아원에 가 양부모에게 입양돼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여자아이나, 딸을 내버려둔 채 홀연 목을 맨 여자나, 부모와 함께 서커스 공연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어머니의 죽음을 맞고 폐허가 된 땅에 집터를 잡은 아들과 아버지나. 모두 내 주변부에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미용사가 머릿결을 따라 손을 놀릴 때마다 내 마음의 빈 구석까지 건드려지는 듯해 아팠다.

 

동시에 머릿속에는 집안의 희망에서, 절망과 빈 껍데기로 전락해버린 「언니의 봄」 속 난희의 인생이 울려 퍼졌다. 주인공의 둘째 언니 난희는 인문학을 공부한 교양인이었는데도 남편을 잘못 만나 팔자를 망쳤다. 부잣집인 줄 알았던 남편의 집안은 알고 보니 빚으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남편의 폭력과 방황으로 위태로운 가정 속에서 잉태했던 딸과 함께 난희의 인생은 절망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날이 점점 선선해지고 있었다. 미용실 한가운데에서,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을 난희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했다. 죽을 때까지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린 딸의 학업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을까. 딸에게 손수 입힐 옷들을 더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까. 가만히 상념을 흘려보내는 사이에 머리 색이 검정에 가까운 갈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두피에는 여전히 까슬거리는, 따끔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어쩐지 그 느낌이 상처가 아문 뒤 남은 흉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색할 필요 굳이 없을 것 같은데, 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고집을 부려 미용실을 찾아가 얻은 결과였다. 어색하지 않았는데도 두피 근처와 그 아래로 떨어지는 머리 색의 부조화가 나를 괴롭게 만들곤 했다. 섞이지 못한 채 지저분하게 분리된 듯한 모습에 검정을 끼얹고 싶었다. ‘고요한 인생’ 속 인물들은 그 반대였다. 곪은 구석들을 다른 무엇으로 덮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양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이는 내면의 한구석이 고장난 채 가면을 쓰고 그렇게 계속 살아갈 것이다. 남자는 때때로 어디론가 떠나는 기행을 부리겠지만, 제 입에 풀칠은 하며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언니를 잃었지만 동생의 삶은 동생의 것대로 굴러갈 테다. 상처를 애써 덮지 않으려는 모습들을 보며 기분이 묘해졌다. 머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 혼자 세상에서 유리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상처를 덮어 정상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들이 세계로부터 이탈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2. 무의미한 희망보단, 희망의 무의미함


 

 
…아내의 상냥한 제의에 그는 더럭 겁이 난다. 어쩐지 아내가 너그러운 척 할 때면 무섭다. 위 이어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사내놈이 그러고 살고 싶으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이렇게라도 아내 옆에서 아이들 옆에서 살고 싶다. 살아내고 싶다. 눈물이, 투둑 떨어진다. (「낮술」, p129.)
 

 

집에 도착해서 인상이 깊은 단편들을 한 번 더 읽었다. 육 년째 실직 중인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여전히 남성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게 보편적이라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그는 낙오자에 가까웠다. 경우에 따라서 그는 추하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다. 육 년 동안이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빌붙다니, 하고 말이다. 인간의 나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나 역시도 그의 행보를 곱게 보긴 힘들었다. 그렇지만 인간으로서 그가 처해 있는 절망적인 처지는 계속 그에게 연민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그는 살만한 입장이다. 아내는 어쨌거나 번듯한 외국계 기업에 뒤늦게라도 취업해 집안을 살리고 있으므로, 희망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순 없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희망에 내재된 무의미함이다. 희망을 가진들 그의 삶이 지금보다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아내와 술잔을 기울이고자 위스키를 따는 그의 모습은 언뜻 보면 절망적인 그의 삶에도 나아질 조짐이 도래하리라 희망을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장면에는 해결할 수 없는 우울함이 숨겨져 있다. 그래봤자 지금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가 많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

 

사람들이 말렸는데도 구태여 염색을 마음먹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잠시 떠올렸다. 내 발목을 잡았던 원초적인 우울감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멈추지 않고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만들어낸 화신이었다. 그렇게 나아간다고 한들 근본적으로 드리운 우울을 해결해 건강해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울텐데도 그렇다. 계속 무언가로 무언가를 덮어야만 하는 강박이 외관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었다. 남자와 나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둘 다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무의미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연민을 느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실무진 명함.jpg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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