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5년 동안 살아온 대치동의 노른자 동네1 [장소]

글 입력 2020.09.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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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을 하였다. 동네를 관찰한 후 패턴이나 역사 등의 아이덴티티를 찾고, 리브랜딩 하는 프로젝트로 수업은 막을 올렸다. 과제가 주어졌다. 일주일 간 자신이 하고 싶은 곳을 선정하여 문헌연구와 현장 조사를 함께 하는 것이 과제의 미션이었다.

 

나는 내가 15년 동안 이사를 가지 않고 살아온 동네로 정하였다. 나는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본, 한국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동네 중 하나인 대치동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전형적인' 대치동이라는 곳이 아닌, 그 안에 있는 노른자 지역이다. 흰자 안에 쏙 들어가 있는 노른자처럼, 오래된 주택가인 대치동 구마을은 이미 개발이 된 학원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개괄적인 설명을 하자면, 대치동은 정부에서 논밭의 마을을 계획적으로 개발하여 만든 '강남 8학군' 동네이다. 그렇게 때문에 '재개발'이란 단어는 항상 대치동의 키워드였다. 그중 내가 이번에 초점을 맞춘 '한티 마을(또는 한터마을. 지금은 대치동 구마을)'은 이 주제와 밀접한, 자연부락 시절부터 작년까지 그 자리를 지켜온 구마을이다. 조선시대부터 이곳은 탄천 주변 저지대를 농토로 활용하여 채소 위주의 농사를 지었던 동네이다.

 

530년 된 은행나무가 마을 초입에 위치하며, 공동체 문화와 농사 문화가 발전했었던 이 지역은 지금의 대치동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의 장소였다(1950년까지만 하더라도 초가집들이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80년대에는 연립주택 건설 붐으로 풍경이 한차례 탈바꿈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 구마을 일대는 일부를 남기고 주택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되어, 1980년 그대로를 오래도록 간직해 온 동네의 흔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2020년 현재는 대치동 구마을 제1, 2, 3지구의 주택재건축이 이미 결정되었으며, 3지구를 제외한 1, 2지구는 철거가 완료되었다. 하지만 아직 잔류하는 구역이 존재한다. 아래 사진에 제1지구의 공사장 바리케이드 너머로 보이는 구역이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주택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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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현장 너머로 보이는 동네

 

 

사실 한티마을은 대치동에 15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들르지 않았던 동네이다. 일부러 찾으려 애쓰지 않으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큰 길에서 더 들어가야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대치동에 대한 문헌 연구를 하다 우연히 찾게 된 이 '한티마을'은, 이 지역에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주택들과 상가들, 철거되기 전의 폐가들 등 낙후돼 있으면서도 리모델링 된 집들과 한 데 섞여 묘한 기운을 자아냈다. 대치2동을 지도로 보았을 때, 원래 구마을의 범위는 꽤 넓었었다. 2018년 상반기에는 구마을의 전체 구역이 철거되기 전이었는데, 그때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어쨌든, 최후로 남아 있는 구역을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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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언덕(한티)'이라는 이름에 맞게 가파른 동네의 지형

 

 

동네의 지형은 굉장히 가팔랐다. 그리고 집들은 이 경사에 맞게 요리조리 쌓아 올려져 있었다. 이 주택들은 한 번에 설계하고 제작한 느낌이 아닌, 여러 번 고치고 더한 느낌이 정말 강했다. 창문과 문들의 개수는 일반 집들보다 많았고, 자세히 보았을 때 집과 연결된 작은 공간들도 꽤 있었다. 아파트와 깔끔한 주택가만 봐 왔었던 나는 마치 다른 지역 또는 다른 시간으로 여행을 온 듯한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우리 동네 속에 있는 공간이라니, 아이러니했다.

 

2020년 대치동의 여느 다른 장소들과는 참 다른 느낌이지만, 지금 여기에는 토박이들보다 우리 집과 유사한 가족들이 훨씬 더 많이 산다. 교육을 신경 써야 하는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구성하는 가족 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직도 이 동네의 세탁소나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오랫동안 이곳에 거주하신 분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사람들도, 건물들도 모두 섞여 있어 바글바글하면서도 어딘가 반가운 느낌이 들어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동네를 감상하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생각에 잠겨 돌아다니다 갑자기 내가 아는 대치 2동의 구역에 들어섰다. '아,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이 정도로 가까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한티마을을 옛날부터 대표하는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발견하였다. 예전엔 이 나무를 눈여겨보지 않았었는데, 한티마을의 유래이자 토박이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담겨 있는 중요한 장소임을 알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은행나무의 주위는 이미 개발이 되어 카페와 학원들이 들어서 있었다. 주택가를 돌아다닐 때만 해도 90년대로 시간여행한 느낌이었는데, 이런 곳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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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람들이 살지 않는, 동네의 서쪽 부분

 

 

2시간 동안 정신없이, 꿈을 꾸듯이 천천히 돌아다닌 것과 다르게, 과제를 할 때에는 리서치 자료들과 찍었던 사진들을 배치하며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빠르게 보냈다. 이렇다 보니 마을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또한 수업의 페이스가 굉장히 빨라 수업 직전이나 수업 중에 내가 고른 '한티마을'의 인사이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을 가지고 최소한 중간기간까지 작업을 한다. 천천히 호흡을 다시 가다듬고, 한티마을 관련 책들도 찾아보고 마을 분들에게 여쭤도 보며 다시 이곳을 배회할 예정이다. 서두르지 말자. 그리고 단순히 과제를 한다기보다는 이 가치 있는 동네를 기록하는, 너무나도 유의미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끊었다고 생각하고 잘 해내보자.

 

 

 

노지우 태그.jpg

 

 



[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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