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의 한 시절 꺼내어보기 : 남매의 여름밤 [영화]

당신의 지난 여름날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글 입력 2020.09.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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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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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각자 뚜렷한 매력을 지닌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그 계절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여름,하면 생각나는 영화는 유독 많은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summer&autumn, 2014)>,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2017>는 여름을 보내는 동안 한 번씩은 꼭 봐야만 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해서 보게 된 <워터릴리스(Water Lilies, 2007)>와 <남매의 여름밤(Moving On, 2019)> 역시 내 마음속 여름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여성 감독들의 눈부신 활약이 돋보인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신예 윤단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들-우리집 연작의 윤가은 감독, 벌새의 김보라 감독, 메기의 이옥섭 감독에 이어 한 명의 자신만의 세계를 영화를 통해 구축해가고 있는 감독의 탄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언급된 감독을 제외하고도 많은 감독들이 영화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좋은 작품들을 연이어 만들어내고 있고, 이러한 활약상들을 지켜보며 반갑고 기쁜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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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매의 여름밤(Moving on)>은 여름 동안 옥주-동주 남매와 아버지, 그리고 고모가 할아버지 집에 모이게 되면서 이루게 된 가족의 한 시절을 담은 영화이다. 가난한 가장인 아버지가 옥주-동주 남매를 데리고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혼을 생각하는 고모가 합류하면서 할아버지 홀로 살아가던 집이 다섯 식구로 인해 북적북적해진다. 영화는 이 가족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여름날의 일상과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을 옥주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풀어진다.

 

 

 

어린 시절을 가만히 되돌아보다


  

“지난해 부산에 <벌새>가 있었다면 올해는 <남매의 여름밤>이다”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말은 이 영화가 영화 <벌새>와 겹쳐 볼 지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벌새>를 주인공 은희의 성장 영화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매의 여름밤>의 옥주와 겹쳐 보인다. 두 영화 모두 성장 영화이면서 그들의 가족 서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두 아이는 같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다소 냉소적이고 철들어 보이는데, 그 이유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구성원 사이 관계의 위기 혹은 해체의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영화가 독립영화계에서 많은 관객의 호응과 찬사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 서사가 많은 사람의 보편적 공감을 이뤄내면서 하나의 이야기로서 특별해지는 지점이 있어서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 특히 그들이 보는 어른은 모순적인 사람들이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아버지는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고 넉살이 좋은 사람이지만, 가짜 명품 운동화를 팔면서 생계를 위태롭게 책임지는 다소 무능력한 가장으로 그려진다. 고모는 옥주-동주남매에게 부재한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며 집 안의 분위기를 밝혀주는 존재이지만, 할아버지의 투병 이후로 아버지와 요양원을 알아보고 집을 파는 데 적극적으로 임한다.

 

이렇게 옥주가 어른들의 사정을 목격하게 되고, 종국에 이르러 가족이 해체되는 배경에는 할아버지의 투병이 있다. 할아버지가 점점 병들어가는 모습은 늙음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온 가족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던 할아버지의 집은 할아버지가 점점 병들어 가는 과정과 함께 단순한 안식처의 기능을 잃게 된다. 한 개인이 나이가 들어 홀로 몸을 챙기지 못하고, 타인에게 본인의 거취를 맡겨야 하는 상황은 사람이 나이와 병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이러한 어른들의 복잡한 속사정을 옆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기보다는 가만히 관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가족만이 겪고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다섯 식구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보편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개별적인 자신의 과거 한 시절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기억의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삶의 어느 지점을 돌아보기에 좋다. 우리가 순식간에 지나쳐온 시간을 돌이켜 보도록 만드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고 각자가 떠올리는 순간과 사람은 다를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는 이렇게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과 호응하여 수백, 수만 가지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울면서 자전거 타기


  

영화는 청소년인 옥주의 시선으로 청소년이 가진 특유의 예민하면서도 세상과 거리감을 두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부제인 ‘Moving on’의 의미는 이 영화를 옥주의 성장 영화로도 볼 수 있도록 한다. 옥주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에 비해 어른스러운 아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몇 장면들을 통해 엄마의 부재를 그리워하고, 사랑 앞에서 서툴고, 참고 견디다가 결국 터져버리는, 아직은 보호자가 필요한 청소년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몸은 다 컸네,라는 말을 듣는 옥주지만 할아버지의 집에서 보낸 여름의 한 시절을 통해 그 시간 동안 옥주의 시선과 마음은 조금씩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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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가 할아버지, 고모와 보낸 그 여름의 시절 동안 겪은 일들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을 보여주는 장면의 단적인 예로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이사 간 첫날, 2층에 자신의 방이라고 정한 곳에 동주를 재워주지 않는 모습과 대조하여 영화의 마지막에 옥주 자신을 찾아온 동주와 함께 자신의 방에서 자는 장면이다. 남매 관계란 항상 투닥거릴 수밖에 없는 관계이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를 향해 손 내미는 남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남매가 그 짧은 시간 동안 각자 조금씩 자랐음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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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청소년기의 기억은 한여름의 푸름을 닮았다. 사람마다 이 시절이 기억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나의 경우 어린 시절의 추억은 유난히 청량하고 눈부신 여름의 이미지를 닮았다. 이 영화의 배경인 여름날과 두 남매의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는 이유는 내가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과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여름을 잘 담아낸 순간들이 많았고, 그 순간을 담아낸 장면들을 보는 기쁨이 컸다.

   

이 영화는 영상의 한 부분을 찰칵, 찍어 남기고 싶은 장면들이 많다. 할아버지의 앞마당 텃밭, 여름에 먹는 음식들, 한여름 저녁의 보랏빛 하늘과 같이 여름의 순간들이 옥주와 동주의 기억의 한 구석에 나아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여름에 보면 좋을 영화로 남겨두며 추천하고 싶다.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피부로 체감하는 요즘이다. 여름의 끝이 다가오기 전, 이 영화를 통해 지난 과거의 한 조각을 들여다보며 여름의 맛을 음미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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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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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콩두
    • 오늘 영화보고 와서 아직도 여운에 젖어있었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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