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 사람이 만드는 감정의 역학관계 [영화]

영화 '클로저'와 '비거 스플래쉬'
글 입력 2020.08.2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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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등장하는 로맨스 영화는 사랑에 집중한다. 삼각관계 영화에선 주인공이 결국엔 누굴 선택할 것이며 그 과정은 얼마나 짜릿한가를 비춘다.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사랑의 시작에 집중하고 대체로 끝 맛이 산뜻하다.


근데 사람이 넷이면? 장르가 로맨스인데 사람이 네 명이면 곤란하다. 두 쌍의 커플이 잔잔히 서로의 상대만을 바라보다 평화롭게 끝난다면 좋겠다만 영화에서 그런 일은 없다. 이 네 사람은 기어이 얽히고설켜 서로를 상처 입히고,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고야 만다. 덕분에 욕망, 후회, 분노, 슬픔, 또는 절망까지 사랑에서 파생된 다양한 층위의 감정이 쏟아진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볼 때마다 마음이 시리고 답답해지는 영화가 있다. 본능에 충실한 인물들에 환멸이 나지만 감정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리고 마는 영화. 네 사람이 관계를 만들어내는, 로맨스라 분류하기에도 죄책감이 드는, '클로저'와 '비거 스플래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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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Stranger"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 이 깔리는 오프닝 시퀀스는 꽤나 유명하다. 댄이 앨리스를 만나 "Hello, Stranger"라고 말을 건네는 장면. "I can't take my eyes off you" 절절한 노랫말이 반복되고 두 사람은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눈을 마주친다.

 

이 사람이 내 운명이라는 느낌을 받는 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대화를 할 필요도, 이름을 알 필요도 없다. 이성적 작용 과정을 건너뛰는 직관은 꽤나 강렬하고, 본능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졌다면 망설임 없이 낯선 사람이 지금껏 찾아왔던 영혼의 짝이라고 믿는다.


댄이 앨리스에게 빠르게 빠지는 모습은 언뜻 낭만적으로 보이나, 자기감정이 중요해 죽겠는 댄은 얼마 안가 한나를 보고 또 무언의 직관을 느낀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에게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 은 절절하게 사랑을 노래하지만 끝에 가서 모든 노랫말을 뒤엎는 한마디의 반전이 있다. 그리고 그건 사랑의 붕괴를 그리는 이 영화의 본질을 관통하는 냉소주의다.


감정에 충실하는 태도는 낭만적 사랑과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댄은 앨리스를 두고 한나와, 한나는 래리를 두고 댄과 1년 동안 관계를 이어간다. 래리는 소유욕과 질투 분노에 휩싸여 경쟁적으로 앨리스를 만나고 어떻게든 댄의 마음을 짓밟으려 한다. 그 와중에 댄은 앨리스에게 기서 심문하는 최고로 추한 모습을 보인다. 감정에 충실한 태도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때문에 처참한 결과를 낳는 법이다.


"그래서 그 새끼랑 잤어?" 주옥같은 명대사가 많지만, 래리나 댄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멍청한 대사는 이거였다. 성숙해지면 소유욕을 초월하게 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런 식의 질투는 무척이나 우둔해 보여도 이들에겐 밝혀야만 하는 진실인 것이다. 질투심으로 뒤틀린 내면, 상대의 외도를 애써 부정하는 마음, 후회와 연민 또는 죄책감, 엉망진창으로 끌고 내려가 무너지는 관계까지. 네 사람이 서로를 할퀴고 아파하는 이 영화는 구질구질한 사랑을 해봤을수록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사랑의 붕괴 과정에서 쏟아지는 감정의 홍수가 우리가 겪어본 적 있기에 너무나 싫어하는, 그래서 더 잘 아는 그 마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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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역겨워'

 

전설적인 록스타 마리안은 영화감독인 남편 폴과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성대를 다친 마리안은 이 휴가가 둘만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길 바랬다. 하지만 마리아의 옛 연인인 음반 프로듀서 해리가 자신의 딸 페넬로페를 데리고 방문하면서 여유로운 휴가는 방해받는다. 이들이 함께 머무는 나날이 지날수록 마리안과 해리의 과거가 부상하고 그들의 관계는 질투, 욕망, 위험의 수령으로 빠지게 된다.


애인의 전 남자 친구와 함께 지낼 수 있다니. 나로서는 충격이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두 남자 사이에서 환하게 웃는 마리안이 신기하면서도 성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유분방한 해리는 마리안을 자꾸 도발하고, 폴은 해리를 달가워하지 않다가도 그들 또한 오랜 친구 사이였던 듯 이내 우애를 과시하는데 페넬로페는 이 와중에 폴을 유혹한다. 이걸 어떤 관계라고 정의해야 할지.


네 명이 이루는 관계가 자꾸 바뀌고 감정의 방향이 종횡무진하며 변주되는 걸 보는 게 이 영화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한정된 공간에서 네 사람이 계속 부딪히면서 아슬아슬하게 욕망이 선을 넘고, 후반부에서 사건이 터진다. 거대한 혼란으로 넘실거리는 마음이 결국엔 크게 첨벙하고 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순간의 처참한 모습이 하이라이트다.


클로저가 순간의 욕망으로 인한 사랑의 붕괴를 그린다면, 비거 스플래쉬는 '모든 인간은 역겨워'라는 전제 하에서 내면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이 모습을 드러낼 때의 스릴을 그린다.

 

네 사람이 함께 하는 식사 장면이 주는 긴장감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돈데, 줄곧 과묵함을 유지하다가 페넬로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와서는 어딘가 상기된 폴, 이상기류를 감지한 마리안과 해리,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페넬로페가 만들어내는 식탁 위의 미묘한 기류. 이 장면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넷일 때 발생하는 감정의 역학을 탁월하게 보여낸다. 


 

 

사각관계의 재미


 

삼각관계의 진부한 구성에 질렸다면,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사각관계 영화를 추천한다. 둘만 등장해서 애틋하게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오히려 가장 추한 구석까지 담아 보이는 이런 류의 영화가 더 사랑의 민낯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주인공이 최초에 부딪히는 일련의 장애를 극복하면 그들을 두루뭉술하게 만족스러운 미래로 보내고 마무리짓는, 단지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 그릴뿐인 로맨스 영화를 차고 넘치게 봤다.

 

하지만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움, 당혹감, 분노, 집착, 살인적인 외로움 까지. 사람을 가장 유약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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