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신 쓰고 싶지 않은 일기 [사람]

2020년 8월 20일 목요일, 화창함
글 입력 2020.08.2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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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병동에 다녀왔다. 내가 아픈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힘들다.

 

어제 저녁에 유퀴즈온더블럭-‘살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편을 봤다. 오늘 오후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응급실의 의사, 간호사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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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외할아버지는 담도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했다. 이 병은 초기에 표가 나지 않아 발견이 어렵다고 한다. 그 날 할아버지가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이후 주기적으로 병원에 찾아가서 의사 선생님을 뵙는다. 이틀 전에는 욕실에서 미끄러져서 엉덩이뼈가 부서지셨다. 수술하고 응급실 병실에 입원 중이다. 고령이기 때문에 재활치료까지는 적어도 5~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밤에는 마취가 덜 깨서 외삼촌(아들)을 못 알아보셨다. 존댓말을 쓰고 누구세요라고 묻는 등 헛소리를 했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듣고 곧바로 이름을 불러줬다. 기분이 상당히 이상했다.
 
 
날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고마움인지 혹은 스스로 기억을 되새겨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절망감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냥 표정은 복합적이었고 감정은 정확하지 않았다.
 

 

의사는 살려고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러한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난 계속 살고 싶은데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운 걱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x-ray 등 기본적인 진료를 거부했다. 병실에 와서는 주사를 맞기 싫어 발버둥을 쳤다. 그 덕에 양팔은 보랏빛 멍으로 가득하다. 공포로 가득한 그는 내 기억 속 할아버지와 너무나 다른 낯선 사람이었다. 낯선 그를 보는 것은 필자의 부모님도, 할머니도, 나도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병실에 함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참 힘들다. 그냥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지치게 한다.

 

내게 외할아버지라는 존재는 굉장히 깊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댁에서 살아서인지 단순한 가족 그 이상의 관계이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생각나고 찾아뵙고 싶다.

 

자주 전화를 드릴 때마다 이야기하는 건 마냥 즐겁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앉아서 조용한 동네를 구경했다. 그러다 힘들면, 게임방에 가서 100원을 넣고 초콜릿을 뽑아먹기도 했다.

 

집 앞 세탁소에 가서 다른 분들과 수다를 떨 때 항상 옆에 붙어있었다. 햇살 좋은 날 거실에 마주 보고 앉아서 한자도 배웠고 차에서는 종종 할아버지 무릎에 앉았다. 생선을 먹을 때면 매번 가시를 발라주고 식탁 위 가장 맛있는 건 모두 내 몫이다.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지게 해주셨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큰 어른이자 친구이다. 흔한 말을 빌리자면, 언제나 든든한 나무 같은 존재이다. 이것이 가장 적당한 비유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이 고요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미리 미리 방지할 방법이 있었다면’ 하는 후회로 가득한 날이다.

 

 


에디터 명함.jpg

 

 

[문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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