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Sinn)의 혁명] 이성과 감정, 둘 중 무엇을 '먼저' 뒤집어쓸 것인가

홍상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감상한 소회
글 입력 2020.08.0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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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생각의 회로가 '정지'할 일이 있을까.

 

 

 

0.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절주 중이다. 그런데도 몇 시간째 똑같은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맥주를 사올까, 말까.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다. 열흘에 가까운 시간이다. 이 정도면 마실 때가 되지 않았나, 맥주가 술인가, 싶다가도 건강을 챙기겠답시고 내뱉었던 말들이 생각나 어쩔 줄 모른다. 갈팡질팡, 재고 또 재는 일을 반복한다. 톺아보면 술에 대한 고민뿐만이 아니다. 인생을 둘러싼 대부분 일에 나는 지나칠 정도로 기민하게 반응한다. 혼자 고민하다가, 혼자 결론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긴다.

 

“너처럼 생각이 많아도 문제야.” 사람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려는 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보살핌을 충분히 받기 힘든 상황에 늘 처해 있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웬만하면 혼자 생각하고 결정했다. 나누질 못하고 품기만 하면서, 고민의 크기를 스스로 키워나갔다.

 

 

 

1.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결정해야 더 유능해지고, 민폐를 덜 끼칠까. 고민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건, 결정은 대개 나를 해치는 쪽으로 이뤄졌다. 무능해지는 건 싫으니, 밥만 따로 먹는 시간을 없애고 공부와 일에 시간을 보태자. 몸이 아파도 팀플에서 할당받은 몫은 먼저 해내고 병원에 가자. 완전히 비합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면, 내가 참고 맞춰주자.

 

감정의 늪도 그렇게 끌어안았다. ‘결국’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강령을 품고 사는 셈이다.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거나, 최대한 가라앉히는 방향으로 굴자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밀려난다. 필연적이다. 불만을 가진 적은 많이 없다. 참지 않고 잠시 분출했던 시절, 끝내 내가 책임져야 했던 과오를 떠올리면 나는 혼자 관망하는 쪽이 어울린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지만, 그 사실에 승복하고 능력적인 불완전함을 전제하기보다, 그런데도 그와 유사한 인간상에 어울리기 위해 나를 통제하고 감정적인 여유나 휴식. 이런 것들을 포기했다고 선언하는 쪽이 역설적으로 심신을 달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생각이 많다”라는 주변의 평은, ‘이성적이고 냉철하다’라는 평은 썩 만족스럽게 들리는 내 특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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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김민희의 연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성을 무기로 택한 사람에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이성적으로 짜 맞출 고리들이 곳곳에 부재해서다. 얼마 전 이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도무지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어-라고 불평했었다. 화면을 응시하면서 잡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고. 그게 핵심이야. 짤막한 대답과 웃음이 돌아왔다.

 

어느 날 왓챠를 살펴보다가, 문득 그 감독의 이름이 떠올랐다. 깊이 생각해도 잘 모르겠는 감독의 영화. 무언가에 홀리듯 검색창에 ‘홍상수’를 쳤다. 여러 작품이 나왔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포스터 속 김민희의 표정이 심상칠 않아서 클릭했다. 빈속에 맥주를 한 캔 들이키면서 영화를 봤다.

 

그럭저럭 인지도를 쌓은 감독과, 미술을 막 배운 여자의 이야기가 전개됐다. 감독 저거, 제정신 아니네. 첫 번째 챕터가 끝나고 들었던 ‘생각.’ 당사자가 고해성사하면 저리 깔끔하게 해결될 일이었나. 두 번째 챕터가 끝나고 들었던 ‘생각.’ 대체 무엇이 그렇게 다르길래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나. 궁극적으로 들었던 ‘생각.’ 감정의 치기에 끌려다니던 작년에 이 영화를 봤더라면, 더 재밌는 감상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2. 이성을 뒤집어쓸 건지, 감정을 뒤집어쓸 건지.


 

-라고 ‘이성적인’ 내 정체성을 강화해 나간다. 이실직고하면서도 무서운 사실은, 영화의 저변을 이뤘던 감정이 무엇인지 내가 분명하게 알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생각의 굴레에 자발적으로 갇혀, 사태를 이성적으로 관조하는 행동을 통해 내 ‘이성적’ 특질을 선택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거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이런 점에서 흥미롭다. 애정이라는 감정을 앞세운 인물의 발칙함에 본질적으로 공감되면서도, 이성적으로는 그들을 비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내겐 아무런 책임도 생기지 않는다. 한 발짝 물러나 있기에.

    

 

“알다시피 사랑과 관련된 통상적인 용법에 따르면 ‘사랑받는 자’는 ‘선택된 사람’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선택은 상대적이거나 우발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타자가 자기를 선택한 맥락이 ‘다른 애인들 중에서’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 사랑에 빠진 사람은 화가 나고, 자기가 값싸진 것으로 느낀다. 그러니까, ‘만일 내가 이 도시에 오지 않았다면, 만일 내가 누군가의 집에 드나들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이런 생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슬프게 한다.

 

사실 사랑에 빠진 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타인의 주체성을 존중할 때 우리는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사랑은 내 주체성을 버리고 타인의 세계로 전락하게 만든다. 그때의 감정을 증오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은 실패하고 만다.”

 

- 장 폴 사르트르

 

  

타인의 입을 빌려 진실을 폭로하는 것과 자신의 입으로 진실을 고하는 것. 둘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애정의 경도가 변화했다. 감독님 결혼하셨다면서요, 라고 다른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사실을 폭로 당할 때 ‘희정’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 순간 그녀는 “선택된 사람”으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함춘수는 비겁했다. 연정을 내세우며 희정에게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희정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대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신변이나 상황은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이것 봐라, 자꾸 말꼬리 흐리네. 은근슬쩍 대답을 피하네. 정재영의 완벽한 연기 덕분에, 첫 번째 챕터에서는 함춘수가 우선시했던 감정의 굴레들과 그 이면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이성의 굴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희정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도 가정의 문제를 끝내 저버리지 못했으니. 결론적으로 첫 번째 챕터에서, 둘의 사랑이 파탄 났던 이유는 감정을 전면에 내세웠던 함춘수의 탓이 컸다.

 

그는 희정을 이성적으로 기만했다. 기만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합법적인’ 사랑을 나누기 어려웠을 것이기에,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표면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그렇지만 함춘수는 관계가 그렇게밖에 끝날 수 없는 이성적인 이유를 희정에게 직접 말해주지 않았다. 희정은 곧장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이 사람, 돌아갈 곳이 있었구나. 그래서 나와 순간적인 사랑을 나누려고 했던 거군.

 

반면 두 번째 챕터에서, 함춘수는 이성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희정에게 자신의 결혼 사실을 고백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로 이동하기 직전, 둘만이 있는 술집에서. 첫 번째 챕터에서는 그녀에 대한 애정만 애매하게 드러냈던 것과 달리, 두 번째에서는 애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가정이 있음을 폭로했다. 당사자에게 직접, 말이다.

 

희정은 당황했지만, 앞선 챕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배신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면 참 속이 편하겠다는, 애정 어린 질책도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이해했다.’ 그를 존중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무엇을 택하든 그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결말만큼은 변하지 않음에도, 그 사이에 존중이라는 윤리적 판단이 들어갈 구석이 있다니. 차이점이 있다면, 두 번째 챕터에서 함춘수가 감정 대신 이성의 탈을 전면에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감정이 먼저인가, 이성이 먼저인가. 주목할 사실은 무엇이 먼저인지 따지고 있을 뿐, 둘 중 무엇을 포기할지를 따지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끝내 함춘수와 희정은 이별한다. 나름대로 해피엔딩에 가까운 열린 결말을 그리고 있는 둘째 이야기에서도, 둘은 어쨌거나 헤어진다. 감성을 구성하는 이성적 측면과 감정적 측면 가운데 무엇을 우선시했느냐에 따라, 서로를 존중했는지 아닌지. 그 끝맺음에서만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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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처맞아야지."

네이버 관객평 중 압도적인 추천수를 자랑하는 평론이다.

풍자에 능하신 분이구나, 싶었다.

 

 

 

3. 감성 안의, 이성의 굴레와 감정의 굴레 간 위계


 

인간은 결국, 감성적인 존재다. 감정을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은 없고, 누구 말마따나(칸트라든지 데카르트라든지 비스무리한 근대 철학자라든지) 이성을 버릴 수 있는 인간도 없다. 그러니까 그 둘이 항상 내면에서 요동치고 있는 거다. 결정하기 힘든 선택의 순간을 맞이할 때, 내가 고민했던 이유도 감정적 선호에 가까운 선택으로 향할 것인지. 이성적 선호에 가까운 선택으로 향할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함춘수도 그랬을 거다. 말할까, 말까. 말하기 싫은데, 모르겠다. 일단 좋으니까 표현은 계속해 보자. 언제 말할까, 모르겠다. 첫 번째 파트에서 그의 갈팡질팡한 판단력은 끝내 상황을 파국으로 이끈다. 그의 사랑은 실패한다. 반대로, 똑같은 고민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말해야겠다는 선택에 가까워진 순간, 그의 사랑 역시 성공에 가까워졌다.

 

감정의 탈을 먼저 쓸 것인가, 이성의 탈을 먼저 쓸 것인가. 나는 항상 그런 고민에 직면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후자를 뒤집어쓴 채 인생을 감내하고자 마음먹었다. 무엇이든 간에 나 자신을,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위일 거다. 어떻게 ‘덜’ 기만할 건지, 방법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이다.

 

+) 별개로, 글 기고를 마쳤으니 맥주를 사러 갈 생각이다. 새벽까지 공부하기에는 술이 최고니까. 감정에 충실한 선택인 것 같아보이나, 이성에 충실한 선택이다. 알코올은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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