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혼이 없는 미래 [도서]

사랑에 대하여, 섹스에 대하여, 연애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8.0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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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심드렁한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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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들과 소소하게 모인 자리에서 이리저리 대화가 흐르다  누군가 "너넨 나중에 결혼하고 싶어?"하고 물었다. 취업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친구들은 돈도 없는데 결혼은 어떻게 하냐, 난 그냥 혼자 살고 싶어, 아이 낳고 일을 그만하게 되는 게 싫어 등 비슷비슷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산 후 자연스레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희생을 보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도 한몫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번엔 오래 사귄 커플의 이별 소식을 들었다. 몇 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대한 얘기가 오갔으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했고 그렇게 그 연애는 한순간에 마침표를 찍었더랬다. 결혼 전까진 아무것도 모른다더니.. 하며 혀를 끌끌 찼는데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결혼이 두 사람의 관계를 완벽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결혼은 혼자였으면 있지도 않았을 문제들을 둘이서 함께 해결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자각하지도 못했을 성격적 결함이나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한 이혼, 또는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난 후에 서로 구속하지 않겠다는 졸혼이나 황혼 이혼도 왕왕 있다. 이혼에 대한 거부감은 옅어졌고 주말 안방극장에 '한번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건 한 번 다녀오는 게 대수롭지 않게 된 요즘 세대의 단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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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한마디로 결혼에 심드렁한 세대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세트로 부여되는 일이었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사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식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결혼제도는 이후 비약적으로 상승한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로 인해 이전처럼 기능해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청년세대의 경제적 불안감, 새로운 문화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개인주의, 꾸준히 상승하는 이혼율이 보여주는 낭만 신화의 파괴 등은 더욱 결혼이란 게 과연 유효하긴 한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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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종말>, 한중섭, 2020

 

 

 

진화하는 결혼


 

오늘날 결혼의 유효성을 따지기 앞서 결혼의 뿌리를 추적해 보는 게 필요하다. 우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부일처제는 사실상 생겨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과거 결혼의 표준은 난혼이었고, 수렵채집 시대엔 여러 집단 구성원들끼리 가족을 꾸리는 군혼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남편이자 아내가 되어 아이들을 공동으로 양육하는 방식이고 정절의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아버지를 특정할 수 없었고, 따라서 모계사회였다.

 

농업혁명 이후 계급과 사유재산 개념이 발생하면서 대우혼이란 게 자리 잡았다. 일부일처제와 비슷하면서도 남성은 배우자 외의 다양한 여성을 만나며 일부다처제를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달랐다. 저자는 농업혁명의 가장 큰 피해자가 여성이라고 말한다. 사유재산을 상속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여성의 성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정절을 강제하는 가부장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무한한 성적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이 배우자의 불륜에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상대방을 소유물 취급하며 다른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 셈이다. 그 결과 인간사회에 일부일처제라는 '단 한 사람과만 결혼하고 섹스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우리는 한 사람 만을 사랑하고 서로를 배타적,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당연한 사랑의 형태로 여긴다. '내 남자'가 다른 여자랑 웃고 떠든다면 질투가 나고, 질투는 때때로 사랑의 증거로 취급된다. 일부일처제의 사회에선 질투의 정도가 애정의 척도와 비례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세태는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고 말한다. 600만 년 인류의 역사에서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시기는 고작 1%도 되지 않는다. 일부일처제나 질투는 결코 개인 간 애정의 소산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성을 독점하여 상속을 가능하게 하려는 착취적인 사회문화적 특성에 기원을 두고 있는 문화적 발명품이다.

 

소유욕과 질투가 어쩌면 '부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는 사실은 폴리아모리(비독점 연애)에 대해 마냥 부정적이었던 기존의 생각을 조금 더 유연하도록 이끈다. 아직까지 폴리아모리를 지지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일부일처제라는 각본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품고 새로운 대안이 존재함을 제시하는 폴리아모리는 결혼이 붕괴되어가는 시대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현대인의 사랑과 결혼


 

현대인의 사랑 형태는 결혼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연애하기 위해선 소비해야 한다. 돈을 전혀 쓰지 않는 데이트가 있을 수는 있겠다만, 데이트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써서 무엇을 소비하는 종종 지는 이들이 어떤 연애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가 된다. 그리고 기업들은 암시적인 광고들로 '사랑한다면 소비하라'는 규칙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면서 자본주의적 사랑의 강제성을 공고히 해왔다.

 

연애뿐 아니라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의 징표는 다이아반지다. 더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소비하는 대상이 비단 재화나 서비스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까지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최적의 결혼상대를 고르는 것은 자신과 '급이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이며, 우리 스스로도 짝짓기 시장에서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이기 위해 매력자본(경제력, 사회적 지위, 연애 경험, 취향 등)을 축적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데이트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련의 과정의 기저에는 짝짓기 시장 내 매력 자본을 활용한 상품 소비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한다'.

 

자본주의적 사랑은 매력자본, 그중에서도 특히 돈이 충분하지 않은 자들에게서 사랑할 기회를 박탈해버린다. '사랑한다면 소비하라'의 암시적인 울림은 '돈 없으면 사랑도, 결혼도 꿈도 꾸지 마라'로 메아리친다.

 

 

 

낭만 인플레이션


 

현대인의 결혼이 흔들리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요즘은 누구나 찍는 브이로그까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획일적인 낭만의 합성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갖게 만들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공적으로 전시한다. #럽스타그램, #1주년, #밸런타인데이 등등 과거엔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연애 행위는 소셜미디어에서 오로지 달콤한 부분만을 편향적으로 노출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디지털 관람객들에게 공개되는 쇼가 되었다.

 

그 쇼는 모두 비슷비슷하다. 비슷한 꽃다발, 비슷한 호텔에서의 근사한 식사, 기념일 선물, 커플사진, 웨딩사진까지. 오늘날 우리가 낭만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대게 만들어진 합성 이미지다. 아무도 권태로움이나 섹스리스, 다툼과 슬픔을 포스팅하진 않는다. 우리는 사랑의 시작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사랑이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큼 무관심하다. 이는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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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의 모든 단계 중 가장 첫 부분만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현실의 결혼 생활을 마주했을 때, 거짓된 낭만이 심어놓은 기대감은 쉽사리 깨어지고 지극히 정상적인 자신의 결혼생활을 완벽해 보이는 낭만 합성 이미지와 비교하면서 불행을 느끼기 쉽다.

 

항상 좋은 만큼의 안 좋음이 있는 법이다. 사랑은 도파민 화학작용이 초래하는 일시적인 기쁨 이후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모든 종류의 슬픔까지도 포함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짙어지는 낭만적 이미지는 이런 진실을 은폐하고 미혼자들에게 결혼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을 불어넣는다. 결과적으론우리에게 상처를 입힌다.

 

합성된 결혼에 대한 이미지는 현실의 결혼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일관적으로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결혼을 결심하기 앞서, 낭만 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져있던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결혼이 사라질 미래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결혼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에서 후기 근대 사회는 기존의 사회 구조가 빠르게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정의했다. 그는 <리퀴드 러브>에서 사랑 또한 유동적임을 이야기했다. 결혼도 예외는 아니다.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여기고 이혼이나 졸혼, 비혼이 새삼스럽지 않은 사회에서 결혼은 더 이상 단단한 규범이 아니라 빠르게 유동하는 가벼운 규범이 되었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1999년 작 <21세기 사전>에서 2030년쯤이면 결혼제도가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2020년에 생각해보기에 2030년은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 시기가 정확이 언제든 간에 결혼의 종말은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농업혁명, 로맨스의 대중화, 계몽주의, 도시화, 페미니즘은 역사적으로 결혼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했고 이제 성 역할의 변화,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 양극화 심화, 기대수명 증가 등의 요인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전통적인 결혼제도에 큰 균열을 내고 기이어 종말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결혼의 종말'이란 제목에 홀리듯 이끌려 이 책을 열었다. 이전까진 결혼에 딱히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던 나다. 단지 나의 미래에 있어 결혼을 하는 옵션과 하지 않는 옵션, 두 가지의 극단적인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해봤을 뿐이다. 하지만 '결혼하거나 안 하기'가 아닌 '결혼'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 결혼을 마치 인생에서 마주하는 가장 극단적인 갈림길이라 생각해왔으면서도, 결혼이란 개념 자체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다는 건 스스로도 놀란 지점이다.

 

책에선 결혼의 역사나 현대인의 사랑뿐 아니라 로맨스와 데이트 탄생의 역사, 섹스와 결혼의 충돌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과 이를 전복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까지 결혼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요인, 경제적 요인, 기술적 요인을 폭넓게 다룬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사랑에 대하여, 연애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서로가 그들의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였다. 연애 없이 결혼했고 할아버지는 결코 다정한 남편이 아니었지만, 당시의 아내는 남편의 폭력성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할 수 없었다. 그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맞춰 순종적이지만 억척같이 자식을 키워냈다. 엄마의 결혼은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직장 동료는 결혼과 출산에 발맞춰 퇴사를 택했지만, 엄마는 꿋꿋이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난 학부모 참관수업 때마다 교실에서 유일하게 엄마가 아닌 할머니가 온 아이였고, 어쩐지 이를 내면의 결핍으로 여겼다. 하지만 나의 결혼은 또 다를 것이다. 요즘엔 거의 대부분 결혼 후 경제활동을 접고 가정에 전념할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더라도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도 꽤 많다.

 

도서 '결혼의 종말'은 결혼의 부정성만을 강조하면서 비혼을 조장하려는 게 아님을 밝힌다. 다만 사랑, 섹스, 연애, 결혼에 대해 선명하게 생각해보고 저마다의 세계관을 확장할 것을 돕는다. 할머니와 엄마, 나는 한집에 살지만 각자 다른 세상을 산다. 그녀들이 따라왔던 전통적인 결혼제도가 과연 나에게도 유효할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 그곳에서부터 사랑에 대한, 연애에 대한, 무엇보다도 나의 미래에 대한 진정한 사유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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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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