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은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는가 - 연극 '크리미널' [공연예술]

다시는 발생해선 안 될 그 사건을 되새기며
글 입력 2020.08.0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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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가 내리는 오후, 어두운 산장 안에서 손, 발이 모두 묶여있는 4명의 사람들과 시체 1구가 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깨어난다. 정신이 든 사람들 서로 줄을 풀어주고 나가려고 하지만, 모든 문은 잠겨있다. 곧이어 전화벨이 울리고, 10분의 카운트가 시작된다.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이 우리를 이곳에 납치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시체, 산장 안의 물건들, 당신, 그리고 나 모든 것이 단서이다. 그리고 하나둘씩 밝혀지는 사실들... 범인은 과연??

 

  

 

배경이 된 사건


 

2016년부터 공연을 이어 온 <크리미널>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이는 2004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밀양 지역의 고교생 44명이 울산 지역의 피해자 1명을 온라인 채팅으로 유인해 무려 1년 동안이나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성폭행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퍼뜨리겠다고 협박했고, 실제로 조사 중에 유포된 것도 밝혀졌다. 경찰에서 송치한 가해자 44명 중 기소된 학생은 7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이 국회의원 혹은 밀양 인사들의 자녀였기에 쉽게 풀려났다는 의혹이 있다.

 

이후 경찰, 가해자 가족들, 언론의 2차 가해로 피해자는 여전히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 구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연극의 배역은 다음과 같다. 검사 강철기, 서울대 학생 이진오, 기자 한수민, 정신과 의사 최도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관련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납치를 당해 끌려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산장의 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고, 이곳을 나가려면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해 내야 한다.

 

중반까지는 수상한 증거가 나와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극구 부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이머가 돌아가는 와중에 계속해서 흘러만 가는 시간에 어쩔 줄을 모르며 답답해한다. 그러나 서서히 그들의 목숨줄을 조여가는 범인에 이진오가 자신이 어렸을 때 ‘김지영’이라는 여자애를 강간했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는 채로 말이다.

 

점점 신경질적이고 예민해져가는 그들. 모든 퍼즐이 완벽히 맞춰지면서 한 명 한 명의 죄가 밝혀진다. 그들은 모두 ‘김지영’이라는 여성에게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방식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다. 사죄 영상을 찍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범인에 억지로 이끌려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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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밝혀진 범인은 자살했다고 알려진 ‘김지영’이었다. 사건 이후 이진오의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고 합의했다고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게, 그녀의 양아버지가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합의한 후 돈을 가지고 달아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잊어버리고 산 그들에게 사과를 받는 동시에 복수를 하기 위해 이 장소에 모아 둔 것이다. 끊임없이 그들의 죄를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먼저 가해자 이진오는 친구들과 함께 그녀를 강간했음에도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턱에 거액을 내고 곧바로 풀려났다. 나머지는 모두 그의 아버지로부터 청탁을 받고 이 사건을 조작하였다.

 

한수민 기자는 돈을 받고 기사를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써서 내보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최도영 역시 가해자에게 유리하도록 피해자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소견서를 작성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철기 검사는 청소년 법을 핑계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이후 범인의 이간질로 살기 위해 서로 죽이게 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수민 기자와 강철기 검사. 그러다 검사가 한수민 기자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뭐라 말을 꺼내려는 찰나, 곧바로 그녀의 총을 맞고 사망한다. 그리고 TV에 범인의 얼굴이 나오며 극이 마무리된다. 한수민 기자를 연기했던 그녀가 바로 당시 사건의 피해자 ‘김지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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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현실과 닮아있는 연극


 

신선한 오프닝, 흥미진진한 스토리 구성과 충격적인 반전으로 보는 내내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연극이었다. 밀양 여중생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연극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 그때의 사건과 참 많은 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나 ‘한공주’ 등으로 다시 회자된 이 사건을 연극으로 접하니 더욱 생생하게 와 닿는 듯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존했던 연극이 아닌가?

 

치가 떨릴 정도로 이기적인 배역들에 보면서 화가 많이 났었다. 어쩜 사람이 이리도 추악할 수 있을까.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에 더욱더 몰입하게 된 것 같다. 이진오가 뱉은 “남녀가 같이 있는데 뭐 했겠어요”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끔찍한 자기 합리화와 회피에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한참이나 진정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던 그들처럼, 범죄가 가해자에게는 과거형이고 피해자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추악한 현대 사회를 연극에 옮겨놓은 듯했다. 연극이어서 과장하고 극대화한 게 아닌, 현실 그 자체를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더럽고 끔찍해서 현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아


 

“인간은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된 연극이었다. 항상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필자에게도 꼭 그것만은 아님을 알려주는 이러한 현실이 닥칠 때면 마음이 너무 쓰리다. 피해자에게 한 행동뿐만 아니라 서로 살아남기 위해 난생처음 보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칼을 쥐고 협박하고, 결국 죽이기까지 하는 그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숨 앞에서 끝없이 나약해지고 추악해질 거면서 고작 지폐 몇 장에 넘어간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돈이 그렇게나 중요할까? 자신의 양심을 팔아넘길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일이 주변에서도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툭하면 기사로 접하기도 하고. 그래도 같이 범죄를 저질러선 안 되지 않는가. 피해자의 편에 서주지는 못할망정 가해자의 편에 선다니. 인간이길 포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복수했던 방법이 옳았다고는 볼 수 없다. 자신도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된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경우는 현실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정당히 복수할 방법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더럽히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 길을 택했을까? 극 속의 그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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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녀의 복수는 끝났지만, 이후에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단지 분풀이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녀가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도, 주변의 시선이 언제나 따라붙겠지. 끝없는 악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 썩어빠진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바뀌어야 하고 말이다. 더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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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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