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저는 아트인사이트 전문 필진 이소현입니다.

리눅스형 기질이 다분하죠.
글 입력 2020.08.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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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시간이 남았다.


 

내 노트북 배터리 수명. 그러니까, 지금부터 글을 송고하기까지 한 시간이 남은 거다. 멍한 표정으로 밀크티의 펄을 씹어댄다. 두 시간 전엔 신촌에 있었다. 학원 수업 때문이었다. 논증법이니, 글의 설계도니, 논술의 난이도니 등- 거창한 설명이 오가던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순식간에 들뜬 숨들이 모인 공간으로 이동한 거다. 이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그 숨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주말의 코엑스는 이렇게, 안면이 모자란 숨들로 가득하다. 저마다의 말로 공기를 채우는 와중에, 나 혼자 카페의 한복판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자판보다 펜이 편하다고 마음껏 소리쳤을 땐 언제고, 무던한 표정으로 자판에 손을 맡기는 나를 본다.

 

첫날 강사는 ‘종이에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명을 듣는 순간에는 그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그러나 막상 학원에 다니며 논작 훈련을 시작하니,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게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던 거다. 그게 이틀 전 일이다.

 

학원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그곳은 나를 너무 긴장하게 한다. 내 신경을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만들고, 한껏 곤두세운다. 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는 중압감을 준다. 화요일 수업 때는 실제로 한 시간 동안 논술문 한 편을 써야 한다. 사전에 준비를 잘해야 망신살이 그나마 덜 뻗칠 테다. 그래서 지금 신경의 80%는 그쪽에 쏠려 있다. 글밥 먹고 살아가는 인간 되기가 이렇게 힘들 줄, 알고야 있었다. 체득은 ‘확실히’ 별개의 일이다.

 

 

 

2. 리눅스형 인간


 

“내 주변인 중에, 압도적으로 이상하고 신기한 사람 세 손가락 안에 네가 들어.”

“대체 왜?”

“그냥. 다른 사람들이 크롬이나 익스플로러 쓸 때, 혼자 리눅스 쓰는 느낌이야.”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구시대적인’, 혹은 ‘시류에 어긋나는’ 인간. ‘혼자 딴 세상 살아가는’ 인간. 전부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칭찬에 가까운 말들은 일부러 제외했다. 이를테면, 정신연령이 굉장히 높다거나, 학구적이고 유능하다거나. 신빙성 없는 말들은 아닌 것 같지만, 이 말들을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철판이 두껍진 않다. (결과적으로, 그런 말을 언급했으니 ‘제외’한 건 아니게 됐지만.) 어쨌거나 나를 설명하는 표현들은 대개 나를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게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대화의 핀트부터 어딘가 이상하다. 키치한 트렌드나 겉핥기용 지식으로 물꼬를 트는 사람에게, 난 적절한 대화 상대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나는 높은 확률로 인상을 찌푸리거나, 당황하거나, 아예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 것들에는 지적 흥미가 안 생긴다.

 

미학을 공부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예술철학과 예술비평을 공부했다. 아직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 논문만 쓰면 주전공이 끝나는 상황이다. 그러니 과거형 시제가 더 어울릴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인문학스러운” 어문계열 학과에 진입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대학교 1학년 막바지에 미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문학과 영화, 미술, 그 외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 그들을 아우르는 사상과 철학.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가장 ‘인간적인’ 영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만큼 인간다운 활동을 찾기 어렵다. 나는 그런 일에 매달렸다. 좋든 싫든 글자 생산은 얼마 되지 않은 인생에서 내가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은 이런 내 특질을 너무 잘 간파했다. “그냥, 인문대 가서 기자 준비해. 철학 공부해. 너는 취재기자 할 상이야.”

 

주변 사람들은 내가 ‘찐’ 인문대생이란다. 맞다. 겉으로만 아닌 척 한다. 대학에서 인문학, 그중에서도 철학이나 미학만큼 탐구 가치가 있는 학문이 많지 않다고 믿는다. 물론 반은 농담이다. 사회과학 쪽도 재밌다. 뼛속까지 인문학, 사회과학, 법학. 소위 옛적에 ‘문과’로 묶였던 학문에 적합한 인간이다. 그래서 갑부였으면 인문사회대 대학원에 가서 학계에 도움 안 되는, 자기만족을 위한 논문이나 쓰고 살았을 거라 말하고 다닌다.

 

이쪽 학문을 좋아하는 만큼, 나는 상당히 분석적이고 엄밀하다. MBTI 유형은 INTJ-A(용의주도한 전략가-자기주장형)이다. 이 검사의 과학적 신빙성은 당연히 차치돼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대략적인 성향은 설명해준다고 확신한다. 나는 주변에서 마주치면 피곤한 유형이다. 나무위키 설명에 따르면 이 유형은 “합리주의 및 능력주의를 중시하며, 계획이 독창적이고 판단이 냉철해 통찰력과 분석력이 우월하다. 논리적인 엄밀함과 객관성을 지향하기에 옳고 그름을 정확히 하려고 한다. 순수학문에 대한 학구열이 강하며, 유능한 편에 속한다. 본인들도 이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성향 때문인가. 대화할 때 인공지능이랑 말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시도 때도 없이 듣는다. 생산적인 대화를 좋아하고, 화법이 직설적이다. 대중적인 컨텐츠, 취미, 오락 등에 별 관심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뭐든. 그래서 유행에 둔감하다. 그보단, 대개의 사람이 ‘심각하고, 어렵고, 지루하고, 머리 아프다’라고 평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학문’ 계열. 혹은 세계가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들. 신문, 서적, 블랙 코미디처럼. 이 때문에 내 희망 진로는 취재기자다. 혹은 법조계로 진출하는 것. 언론계건, 법조계건. 해당 분야에 대한 로망 따위 없다. 단지 적성에 맞을 뿐이다. 요즘처럼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일이 쏟아지는 사회에서 얼마나 고리타분한 장래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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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제주도 갔을 때.

 

 

 

3. 인류애 ‘결핍’ 과잉


 

인류애가 그냥 없는 수준을 넘어서, 원초적으로 없는 수준이다. 가까운 사람들은 잘 챙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꺼리고, ‘집단’ 단위로 공유되는 특질과 문화를 경계한다. 특히 그것들이 관성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국은 나와 맞지 않는다. 이곳만큼 집단적인 것을 ‘당위적으로’ 강요하는 와중에 개인주의적 문화를 수용하는 ‘척’ 하려는 나라도 없을 거다. 이곳의 분위기는 나를 언제나 답답하게 한다. 직업적 성향이 이런 데에는, 사람에게 이처럼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탓도 있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사람을 꺼리는 경향이 덜해졌다. 정확히는, 내가 그 틈 사이로 들어가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사람을 감정과 결부시켜 대하는 건 여전히 별로지만, ‘분석’을 위한 존재로 치환하는 건 재밌다. 노력하기 위해 요즘 마사 누스바움과 알랭 드 보통이 '감정'에 관해 저술한 책들을 읽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건 감정적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해서다.

 

부질없는 노력일수도, 상대방을 기만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기자가 되건, 법조인이 되건 계속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러니 내 쪽에 불리한 타협을 행해야만 한다. 복수전공으로 콘텐츠산업을 공부하는, 소위 트렌디하고- 사람과 많이 만나야 하는 학과를 택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다. (부전공을 다시 인문사회계열 융합 학문으로 선택해 상쇄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변에 생각보다 멀쩡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기도 해서. 결국, 돌고 돌아 내가 문제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글을 쓴다. 높은 확률로 재미가 없을 거다. 하지만 누차 언급하듯,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주변에서 요즘 AI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고 칭찬해줬다. 휴먼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란다. 앞으로 얼마나 나아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상인 사람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얄팍한 변명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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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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