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가 끝나도 여운은 지속된다 [음악]

세계관의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음악들
글 입력 2020.07.31 16: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영화 및 드라마 OST가 음원 차트 상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을 거다. 이제 단순히 OST는 작품에 삽입되는 배경 음악임을 넘어 오히려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요소로써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음악의 가사가 해당 작품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듣는 사람들이 작품에 다시 한번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들 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콘텐츠가 발달하면서 작품의 분위기와 유사한 음악을 편집해 팬 메이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2차 창작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2차 창작물은 작품의 향유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대한 여운을 조금이나마 붙잡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그래서 영화와 함께 주로 언급되고 있는 음악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깊은 여운에 잠식되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 같은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

이 글에는 해당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1. 새소년 '눈' X 영화 '윤희에게'


 

 

 

겨울이 생각나는 영화를 꼽자면 난 <윤희에게>를 줄곧 언급하고는 한다.

 

시린 겨울을 묵묵하게 살아가는 윤희에게 날아오는 한 장의 편지는 그녀의 얼굴에 이제껏 보지 못한 여러 감정을 보여주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영상은 인디밴드 새소년의 두 번째 EP <비적응>에 수록된 <눈> 뮤직비디오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눈>의 화자는 윤희를 닮았다. 온갖 미사여구를 제외하고 사랑, 이 단어만 되풀이하는데도 어째서인지 먹먹한 분위기가 맴돈다. 보컬 황소윤의 목소리도, 윤희의 눈빛도 어째서인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사랑, 나는 멀리 이곳에

돌아가지 않아

우스운 말이지만 

자 여기 소란스러운 내 맘


사랑, 나는 아직 어둠

가여이 여기어주오

미안한 말이지만

저기서 잠시 기다려줄래요


새소년, <눈> 中

 

 

영상은 영화 본연의 잔잔함과 손끝에서 퍼져나가는 악기들의 뭉근한 소리가 묘하게 맞물린다. 사포처럼 까칠하지만 날카롭지는 않은 보컬과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윤희의 모습이 겹쳐지며 몰입도를 가중한다.

 

<윤희에게>는 급진적으로 전개가 되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아님에도 묘하게 감도는 긴장감은 이 영화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곱씹게 하는 원동력으로서도 작용한다. 특히,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윤희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영상의 연출 구도는 마지막까지 끌고 가던 긴장감을 여운으로 전환한다.

 

윤희는 쥰과의 만남을 중심으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어떤 만남은, 또 어떤 인연은 그 자체로도 중후한 소중함을 갖는다. 아마 윤희와 쥰의 재회가 서로에게 그런 의미로서 다가온 것이리라 여긴다. 진한 풀 내음이 가득한 여름, 겨울이 그리울 때 이 영상을 꺼내 본다면 차디찬, 그러나 동시에 따스한 겨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안예은 '파아란' X 영화 '불한당'



 

 

<불한당>을 그저 느와르라는 장르로 한정 짓는 것은 꽤 많은 의미를 넘겨짚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전혜진 배우와 김희원 배우는 대본을 읽고 로맨스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김희원 배우는 후에 변성현 감독에게 극 중 재호를 좋아하는 것처럼 연기하겠다고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불한당>은 모래성 같다. 차곡차곡 모래를 쌓아 어느 정도 완전한 형태로 성을 만들면 파도가 밀려와 와르르 무너트리는 모습이 인물들의 돌아갈 수 없는 관계와 닮았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조차 남아있지 않은 채로 끝이 나는 영화의 여운은, 가수 안예은의 <파아란>을 들으면 더욱이 지속한다.

 

2017년 6월에 발매한 안예은의 미니앨범 <一日>에 수록된 <파아란>은 그녀가 불한당을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한 음악으로 알려져 있는데,  <불한당>의 팬들이 영화 클립에 이 음악을 삽입한 팬 메이드 뮤직비디오로 제작하여 아직도 회자하고 있는 대표적인 2차 창작물로 남아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가 될까

아니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서 웃고 있었을까


어렴풋이 보이는 어둠을 애써 외면하고서

불빛을 따라 걷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어

결국 절망이었어 앞이 보이지 않아

알면서도 그래 멈출 수가 없었잖아


안예은, <파아란> 中

 

 

가사는 두 주인공의 시점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현수와 재호의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암시하는 가사는 두 인물의 관계성에서 오는 애달픔을 전달하고 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메인으로 삼고 그 위에 얹은 담담한 목소리는 시작부터 완전히 꼬여버린 둘의 상처를 애써 견뎌내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 영화이기에 더욱더 현실적인 영화, 미로에 갇혀버린 채 탈출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처참함에 공감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당신에게 좋은 초이스가 될 것이다.

 

 

 

3. Zion. T '눈' X 영화 '소공녀'



 

 

문득 미소의 함박웃음이 생각날 때가 있다. 현실과 타협해 취향을 뒷전에 둔 사람들과는 달리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미소의 해맑은 모습들이 채워졌던 그 시간을 기억한다.

 

좋아하는 것들만 있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미소와는 달리 세상은 녹록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반절이다.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친구 한솔을 응원해 주던 미소는 결국 생계를 위해 만화를 포기하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또 한 번 낙담한다.

 

이제 미소의 주위에 취향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미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자취를 감추는 결말로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이 영화의 시퀄이라고 언급이 되는 노래가 있다.  바로 자이언티의 노래 <눈>이다.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눈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눈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눈이 올까요 


서두르지 마요 못다 한 얘기가 있어요 

잠이 들고 나면 오늘은 어제가 되어 버려요 

계속 내 곁에만 있어 주면  

 

약속했죠 

 

Zion.T (feat. 이문세),  <눈> 中

 

 

영화에서 한솔 역으로 출연한 안재홍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뮤직비디오는 사실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의 남편인 이요섭 감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요섭 감독은 <눈>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소공녀>에서 사용했던 소품을 활용하여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였기에 독자적인 작품으로 제작하였다고 말을 하였지만, 활용된 소품들은 영화 속 한솔과 미소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한 해석 방향으로 흘러가게 작용하였다.

 

영화 속 미소가 입고 있는 의상, 미소가 좋아하던 위스키, 캐리어에 붙어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티커 등 세계관의 연장선으로 보일 수 있는 소품들이 활용되며 더 진한 여운을 남긴 뮤직비디오로 언급이 되고 있다.

 

찬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던 미소,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에 작별 인사를 하던 한솔과 미소의 모습은 겨울로 일치하는 영화와 음악의 시간적 배경과 맞아떨어지며 생계를 위협당하는 인물의 서사를 그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동화처럼 느껴진다. 뮤직비디오 또한 한솔의 마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미소는 없지만 한솔이 남아 미소와의 추억을 그리는 모습, 한솔만이 채우는 뮤직비디오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가사들은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울림을 전해준다.

 

꿈꾸던 호텔에서의 2001일. 홀로 남아 둘의 추억을 회상하지만 아프지 않고 오히려 따사롭다. 각자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그 온기를 머금은 것처럼. 우리가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 한솔과 미소가 꼭 껴안고 있으면 좋겠다. 추운 겨울을 피하도록.

 

 


이보현.jpg

 

 



[이보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6495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