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바라보는 미약한 시선과 손길 -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도서]

레몬 차를 마시고, 핑거 라임을 베어 무는 순간을 상상해보기를
글 입력 2020.07.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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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과 라임의 색을 그대로 가져온 표지의 색감을 바라보고, 오목하게 패인 과일의 모양을 한 번 쓰다듬어 본다.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그 재미에 잠시 빠져보게 되는 『레몬청 만드는 법/핑거라임』을 소개한다.

 

 

레몬라임_표지.jpg


 

 

1. 이야기의 공백을 찾아 더듬거리기


 

‘꼭 필요한 낱말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없애기 시작하자 글이 점점 짧아졌다.’라는 작가의 말을 유심히 읽고 책장을 넘기면 두 편의 짧은 소설을 만나게 된다.

 

「레몬청 만드는 법/핑거라임」 이 두 편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 등장하는 서술자의 시선과 생각을 차분히 따라가게 되는데, 그들의 시선과 생각 밖의 일이 이야기의 공백으로 남아있어서 읽는 내내 그들의 시선 밖을 상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레몬청 만드는 법」에서 ‘나’가 끝끝내 왜 가게 자스민에 온 단골 여자 손님이 그날은 혼자 왔는지 알지 못한 것처럼 나 또한 그 여자가 가게에 왜 홀로 왔는지, 레몬차 13잔을 마시는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상상해보았다. 「핑거라임」에서는 왜 상담사인 ‘나’가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왜 다른 내담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 소설은 그렇다. 짧은 글 속에 숨겨진 단어와 단어 사이-문장과 문장 사이-글과 그림 사이의 간격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2.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기 : 「레몬청 만드는 법」


 

‘나’는 태국 음식점 ‘자스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그가 일하는 가게에 다녀가는 수많은 단골손님 중에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대학원생으로 추정되는 한 남녀커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가게에 여자만이 와서 레몬차 열세 잔을 마시고 가는데 훗날 ‘나’는 레몬차를 마실 때마다 떠올린다.

 

‘그녀에게 레몬청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는 사실도. (p.23)’라고.

 

이 짧은 소설 안에 그녀가 왜 그날 홀로 가게에 왔는지 담겨 있지 않지만, 서술자 ‘나’가 그녀가 홀로 왔을 때, 계속 따뜻한 물을 잔에 따라주는 모습, 그녀에게 레몬청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순간을 읽으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기를 느꼈다. 그 온기는 레몬청에 뜨거운 물을 담아 조금 우려내고 식힌 뒤 마시는 따뜻함과 달달함을 닮았을 것이다.

 

그 온기 어린 시선을 잠시 상상해보면, 가끔(어쩌면 종종) 사라지는 인류애가 회복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일이 내게 닥쳐서 레몬차를 열세 잔 비울 동안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 시간 동안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그런 나를 지켜본 사람에 대해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짧은 소설이지만, 조금은 오래 읽어나갔다.

 

 

 

3. 당신은 버티기 위해 무엇을 하나요? : 「핑거라임」


 

이 이야기의 서술자는 상담사인 ‘나’이다. ‘핑거라임’이라는 낯선 과일이 상담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독특한 설정 아래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상의 무수한 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진다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나’는 핑거라임 요법을 더는 시술받을 수 없는 의뢰인에게 핑거라임을 주고 의뢰인의 귀마개를 받는다. 각자의 고통을 버티기 위해서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는 일이었다.

 

의뢰인이 더는 핑거라임 요법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는 핑거라임이 ‘정신적 의존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설정은 핑거라임이 은유하는 것, 우리를 버티게 하며 그것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가? 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나는 우유가 들어간 라테가 생각이 났다. 몸이 지쳐있음을 느낄 때, 생각이 많아질 때, 어떤 일을 지속해서 하기 위해 나는 그 순간마다 커피를 찾았다.

 

상담사인 ‘나’가 의뢰인의 귀마개를 받고 난 뒤의 미래, ‘나’로부터 핑거라임 농장의 명함을 받아 간 의뢰인의 미래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버티기 위해 어떤 수단을 택한 이들은 그 하나만으로 삶의 고통스러운 부분을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나’가 상담의 효과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에 일부 답이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상담이란 그저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 주는 미약한 손길이 아닐까. 그러니 상담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상담사만의 탓은 아니다. (p.54)’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미약한 손길, 핑거라임, 혹은 귀마개와 같은 것이 있다면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살아갈 방법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런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이야기로 내게 읽혔다.

 

 


4. 더듬거리며 찾을 수밖에 없는 것 : 레몬차와 핑거라임


 

두 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나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까닭은 글에 레몬과 라임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일 수도,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미약한 시선과 손길의 이야기가 가진 온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발견을 해낸 작가의 세심한 시선을 느끼며 나의 주변을 돌아보면 더욱 의미가 깊어질 책이다.

    


131.jpg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 나는 레몬 조각에 이를 깊이 박았다 -


지은이
김록인 글, 노경무 그림

출판사 : 바다는기다란섬

분야
한국소설

규격
118*177mm, 양장본

쪽 수 : 112쪽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정가 : 11,000원

ISBN
979-11-961389-2-9 (02810)





저자 소개


글쓴이_ 김록인
 
레몬-라임을 좋아해서 해마다 제주 레몬이 나는 겨울, 제주 라임이 나는 초가을을 기다린다. 소설을 많이 읽고 조금씩 쓴다. 꼭 필요한 말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없애기 시작하자 글이 점점 짧아졌다. <레몬청 만드는 법 / 핑거라임> 이후 동물 실험에 관한 짧은 소설을 작은 책으로 낼 예정이다.
 
 
그린이_ 노경무
 
자신을 돌보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다. 그림책 <불에서 나온 사람>과 만화 <불안을 걷다>는 아픈 몸을 살아 내는 이야기다. 여행을 좋아해 틈틈이 쓰고 그려 여행 에세이 <남해여행자>를 내기도 했다. 현재 애니메이션을 공부 중이다.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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