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혈연' 아니지만 '유대' 하겠습니다 Part 1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엄마가 되기까지’ 영화 「당신의 부탁」
글 입력 2020.07.1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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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왜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족이 구성되는 중심에는 ‘혈연’이 있다. 이 글에서는 혈연 중심적 가족관에서 벗어나 혈연은 아니지만 서로 ‘유대’ 하며 살아가는 가족관계를 다룬 작품들을 분석하며, 오늘날 이러한 가족의 형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신성화된 단어이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차지하는 공간은 타인이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불가침의 공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인내하거나 포기하는 일 또한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또한 존재한다.

 

웹툰 <연필의 각도>에서 등장인물들이 가족의 굴레 안에서 받는 고통, 주변 친구들이 장녀라는 이유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남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했던 일들, 폭력에 가장 쉽게 노출되는 공간이 모순적이게도 가족이 함께 있는 공간인 경우, 이러한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과연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울타리는 사회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타인보다도 내게 가장 잔혹하고 상처를 주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에 ‘혈연중심’의 가족관이 그 기저에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연필의 각도[크기변환].jpg

 

 

’해인‘은 장남인 오빠에게는 당연했던 지원과 그것을 누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 두 자식을 차별대우하는 부모님에게서 상처받는 인물이고, ’한영‘은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에 상처받는 어머니, 절연하다시피 독립한 누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은현‘ 또한 편모가정에서 자라며 받는 사회의 편견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이 글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보편적인 의문에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생각을 담아서 혈연 중심적 가족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 형태를 다룬 다양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시작으로 혈연 가족의 반대 개념인 ‘비혈연 가족’을 소재로 다룬 영화 <당신의 부탁>을 소개한다.

 

 

 

2. 완벽한 타인이 이모에서 엄마가 되기까지 : 영화 「당신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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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되기 =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기

 

<당신의 부탁(Mothers, 2017)>은 사고로 잃은 남편과 전부인 사이의 자식인 종욱과 살게 된 효진이 각자 서로의 자리에서 간격을 좁혀가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효진이 명자(효진의 엄마)와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모녀 관계로 엮인 이 둘은 영화 속 관계 중에서 가장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주고받는다. 효진이 엄마의 상처를 건드리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기에 타인이 쉽게 재단할 수 없고, 내밀한 속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서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다른 관계보다 더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영화가 이 둘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관계가 이상적으로 서로를 보듬는 관계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효진이 종욱이라는 낯선 존재를 보호자의 자격으로 받아들이고 가족을 형성하게 되면서 새로운 대안 가족의 형태를 제시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가족, 효진-종욱의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계로 발전한다. 효진은 처음에는 종욱의 친구에게 자신을 ‘이모’라고 소개한다. 종욱 또한 마찬가지로 효진을 어떠한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는다. 서로를 온전히 자의로 선택한 관계가 아니어서 둘의 관계는 종욱의 일방적인 침묵과 침묵으로 인해 종욱을 이해할 수 없는 효진의 어색한 대치가 이어진다.

 

하지만 점차 한 공간에 있는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며, 종욱의 소원인 엄마 찾기 여정에 동참하면서 둘의 관계는 점차 가까워진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종욱이 효진의 짐을 나눠 들고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 둘이 물리적-심리적으로 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공간을 나누는 관계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2) “엄마가 뭔데. 너 낳아준 사람? 그게 그렇게 중요해?”

 

 
“책이요. 새 학기 때 내 책이다, 하고 받았는데 누군가 책에 낙서를 잔뜩 해놓은 기분…. 알아요?. 낙서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읽을 수도 없고 앞장은 다 찢겨나가서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책. 그 책이 나에요.(종욱의 대사)”
 

 

종욱은 기존의 많은 영화 서사에서 나왔던 ‘엄마 찾기’ 서사를 진행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존의 서사-자신의 친엄마를 찾는 서사-에서 조금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종욱이 찾던 사람은 자신을 어릴 때 길러 준 사람이었다. 종욱이 죽은 친엄마를 찾고 있다고 생각한 효진은 종욱과 함께 연화를 찾아간 날, 연화에게 친엄마인 척을 부탁하지만 사실 종욱은 연화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고 어린 시절 자신을 왜 떠났는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한다.

 

더러워진 책에 자신을 비유하는, 위에 인용한 종욱의 말은 낳아준 사람을 포함해 자신을 돌봐준 여러 사람을 거쳐 간 자신의 인생을 비유한 듯하다. 이러한 종욱의 생각은 남들과는 다른 성장환경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종욱의 시선은 아직 엄마-아빠-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정상 가족으로 인정받는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종욱의 말에 효진은 “엄마가 뭔데. 너 낳아준 사람? 그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되묻는다.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관통한 대사이다. 효진에게 친엄마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러워하는 종욱과 이러한 종욱에게 효진은 친엄마와 같은 혈연 가족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며, 더럽다고 한들 네 책은 너의 소중한 책이라고 말해준다. 이후 이 둘은 경수(효진의 전남편이자 종욱의 아빠)를 추억하고 기억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마지막에는 무거운 짐을 나눠 든다. 이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앞으로 이 둘의 관계가 비혈연 부모-자식의 이상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긴 채 끝난다.

 

영화의 제목인 ‘당신의 부탁’은 영화의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남겨진 우리에게 찾아온’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표면적으로 당신은 효진의 전남편이 효진에게 제 아들을 ‘부탁’한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호칭만 봐서는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를 ‘당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의지하여 맡긴다는 의미의 부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부탁하는 행위의 기저에는 상대와의 연대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둘의 관계에서도 이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이유는 서로가 아직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라서 서로를 이해하는 일과 물리적-심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살기 위해 각자의 자리를 존중하고, 공동의 규칙을 정하는 ‘부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진이 종욱에게 자신이 먹은 것은 본인이 치우기를 규칙으로 정하는 장면이나, 친구에게 종욱이 자신의 빨래는 알아서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이 둘이 서로에게 자신을 존중해달라는 의미로 서로에게 정중하게 부탁해가는 과정이 곧 이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형성을 통해 관습적인 가족 내 역할에서 둘은 더 자유롭다.

 

 

이 영화는 둘의 관계에 대한 사회의 시선, 소수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보다는 이 둘이 새로운 ‘가족’으로서 서로의 존재와 자리를 인정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비혈연일지라도 가족을 이룰 수 있음을 멋지게 관객들을 설득하고 있다.

 

영화가 크게 흥행하지 못한 이유는 효진-종욱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어서 서사의 진폭이 크기보다는 잔잔하기 때문인지, 혈연 중심의 가족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가 아직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비혈연 가족 서사가 나왔다는 점에 이 영화의 의의를 두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 완벽한 타인이었던 둘이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유대 가족'으로 나아가는지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어느 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기존의 가족 개념이 흐려지면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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