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여행은 착시입니다, 'A Rainy Day in New York' [영화]

과거를 향한 착시
글 입력 2020.07.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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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의 시간여행


 

영화는 시간 여행을 좋아한다. 영화는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그래서 마음껏 시간을 활용한다. 전쟁 영화는 아주 오래전 과거로 떠나기도 하고, SF영화는 상상하지 못한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영화는 사람의 상상력이 닿는 시간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생생하게 표현한다. 이처럼 시간여행은 영화의 특기이자 표현의 핵심이다.

 

영화는 시간여행이 편리하다. 연출된 화면만 완벽하게 과거로 만들 수 있다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해당 시점을 과거라고 여긴다. 현시대의 할리우드 스타가 1000년 전의 귀족을 연기해도, 사람들은 그를 중세시대의 귀족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카메라가 담는 인물과 배경의 모습들이 전부 과거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연극적 관습은 영화에서도 유효하다.

 

영화의 시간여행은 향수를 만들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시대가 변했을 때, 영화는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고, 영상, 음악 등의 총체적인 감각을 통해 쉽게 향수를 전달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길게는 50년 전, 짧게는 10년 전의 모습을 보고 향수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향수를 자극하는 영상 중, '응답하라' 시리즈는 1970~1990년대의 과거를 재현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완벽한 과거를 재현하기 위해 음악, 영상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작품이었다. 그래서 향수를 느끼는 세대와 과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영상들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의 '완벽한 시간 여행'이란 이러하다.

 

 

1. 시간을 설정한다. 영화는 배경 시점을 직간접적으로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시간은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시점의 설정, 시간의 명시는 중요하다.

 

2. 그 시간의 풍경을 담는다. 영화는 카메라에 보이는 모든 부분을 과거에 있던 풍경, 미래에 있을법한 풍경으로 바꾼다. 사극과 같은 먼 과거는 세트장을 활용해 재현하기도 하며, 짧은 과거는 신문, 유행하는 옷, 전자기기 등의 디테일을 활용해 재현한다.

 

3. 그 시간에 일어날 일을 보여준다.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 또는 미래의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영화는 시간을 활용하고 시간의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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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욕으로의 시간여행


 

많은 영화가 과거와 미래로 떠나는 가운데, 시간여행을 조금 다르게 활용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2020년 국내 개봉한 우디 앨런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A Rainy Day in New York, 2019'이다. 이 영화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제작한 우디 앨런의 작품이다. 감독은 전작에서 1920년대, 189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특정한 도시의 과거로 떠나길 좋아하는 우디 앨런은 이번 작품에서도 시간여행을 떠났다.

 

이번 작품은 1950년대의 뉴욕을 그렸다. 비 오는 날 안개 낀, 재즈가 가득한 1950년대 뉴욕의 모습을 담아냈다. 영화는 포커로 돈을 따며 재즈에 심취한 주인공 개츠비(티모시 샬라메), 낙엽 가득한 캠퍼스, 센트럴파크의 마차 등을 보여주며 과거 뉴욕의 이미지를 재현했다. 수려하게 재현된 뉴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상미에 감탄하게 했고, 1950년대의 뉴욕을 여행하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시간은 조금 특별하다. 1950년을 그리면서, 동시에 시간은 2019년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서, 1950년대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동시에, 영화의 이야기는 2019년으로 진행된다는 의미다. 영화는 과거인 '척' 하면서 현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각적 이미지와 실제 시간의 차이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감상 포인트다.

 

시간을 2019년, 현재로 설정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완벽한 시간여행을 포기한다. 앞서 말한 시간여행의 조건은, 이야기의 시간을 명시하고, 시간에 맞는 풍경을 보여주고, 시간에 일어날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1. 시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2. 1950년대와 2019년이 뒤섞인 풍경을 보여주며, 3. 2019년에 흔히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를 보여준다. 쉽게 말해, 시간적 배경은 현재에 머무르면서 모든 풍경과 이야기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는 사람들이 과거라고 느끼도록 '착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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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가 2019년의 시간에서 1950년대의 모습을 그리는 방법을 살펴보자. 영화는 현재를 회피하며 과거에 주목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주로 나오는 뉴욕의 모습은 구시가지, 재즈바, 줄지어진 노란 택시, 마차 등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다니던 대학 캠퍼스의 모습은 낙엽이 가득하고, 등장인물들의 인상착의는 과거 유행했던 스타일을 연상하게 한다. 영화에 담긴 뉴욕의 풍경은 1950년대 그 자체다.

 

하지만 영화는 현재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숨긴다. 영화는 2019년이라면 당연하게 보일 풍경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대의 뉴욕을 대표하는 명소는 타임스퀘어다. 하지만 영화는 타임스퀘어의 존재조차도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타임스퀘어의 규모가 아니어도, 길을 걷다 하나쯤 마주칠 법 한 작은 전광판마저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택시는 노란 택시들이 대부분이고, 등장하는 자동차도 현대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영화는 1950년의 흔적을 수집함과 동시에 2019년의 모습을 가린다.

 

풍경뿐만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행동은 2019년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영화의 등장인물은 전자기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주인공 개츠비가 여자친구 애슐리(엘르 패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하는 때 외에는 불필요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2019년을 살아가는 대학생이라면, 유튜브나 SNS 정도는 보고 있을 텐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애슐리도 영화감독을 인터뷰할 때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펜과 노트로만 기록한다.

 

또한, 영화의 등장인물은 1950년대에 있을 법한 성격의 인물이다. 주인공 개츠비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포커로 돈을 벌고 다니는 한량이다. 그는 재즈를 좋아하며, 가끔 재즈바에 홀로 가는 것이 취미다. 게다가 뉴욕에 가면 센트럴파크에서 마차를 타는 것이 그의 로망이다. 개츠비의 모습은 영락없는 1950년대의 청년이며, 2019년 청년층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1950년대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비 오는 날의 구도심, 안개 낀 센트럴파크, 재즈바, 철없는 사랑까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시의 뉴욕으로 가득 채운다. 하지만 영화는 1950년대가 아닌, 2019년의 시간에서 '연출된' 과거의 모습을 담아낸다. 사람들이 과거라고 느끼도록 만드는 착시의 연출이다.

 

 

 

4. 과거를 바라보는 시점의 체험


 

왜 우디 앨런은 이러한 시간여행을 의도했을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어딘가 애매한 1950년을 보여준다. 과거 뉴욕의 풍경 속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종종 등장하고, 이를 통해 영화의 배경이 2019년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1950년의 시간이 아닌, 1950년의 향수만 남았다. 어색한 과거를 보여주면서까지 배경을 2019년으로 설정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감독 우디 앨런은 1950년대 뉴욕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당시 뉴욕에서 코미디언, 영화감독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그에게 1950년의 뉴요커는 그의 페르소나이자 향수였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우디 앨런은 노인이 되었고, 뉴욕은 화려한 빌딩 숲이 되었다. 추측하건대, 그는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했을 것이고, 2019년의 뉴욕에서도 1950년의 모습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1950년대의 모습보다 2019년이라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영화의 연출은 2019년에도 1950년대의 뉴욕을 경험하고 싶은 감독의 시선을 반영한다.

 

감독의 의도는 완벽한 시간여행이 아니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시간여행을 설계하고,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를 느끼도록 만들었다. 일반적인 영화를 생각해보자. 일반적인 시간여행은 관객의 체험을 돕는다. 만약 관객이 전쟁 영화 '덩케르크'를 관람한다면, 관객은 감독이 연출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모습을 직접 체험할 것이다. 하지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시간여행은 조금 다르다. 관객은 과거의 뉴욕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1950년을 따라하는 2019년의 뉴욕을 체험한다. 그래서 관객은 뉴욕의 과거를 체험하는 누군가의 시선을 체험한다. 결국 영화는 '과거로의 체험'이 아닌 '과거를 바라보는 시점의 체험'이 된다.

 

감독의 시선은 2019년의 뉴욕에서 1950년의 모습을 찾는 것이었다. 70년이 지나버린 뉴욕에서 그는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세월의 흔적으로만 과거의 뉴욕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었고, 그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과거의 흔적만을 선택적으로 모아둔다. 관객은 그런 감독의 시선을 따라 1950년의 뉴욕의 향수를 경험한다. 이렇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우디 앨런이 느낀 뉴욕에 대한 불완전한 향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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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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