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는 죽고 싶어서 기록했다

글 입력 2020.07.0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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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가정환경이, 어떠한 유년 시절이 가장 보통의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상대가 누구든 단순한 호기심에 저마다의 삶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려는 것은 무례이고 내 그럴듯한 허울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파편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굳이 다른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재차 확인하지 않아도 나의 유년이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줄줄 읊을 만큼 썩 유쾌하진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거가 아니었다면 나는 기록의 이유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니 오늘은 남부끄러운 지난날을 한 움큼 꺼내 보려 한다.


*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 기억의 잔상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펼쳐졌다가 별안간 흩어진다. 잔상 속 나는 날마다 울었다. 웃기도 했겠지만 그런 기억은 남지 않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고 엄마는 악에 받쳐 쉼 없이 폭언과 매질을 했다. 퇴근 후, 움츠러든 나를 발견한 아빠는 살림살이를 부수고 엄마에게 손찌검했다. 밤은 길었고 엄마는 나를 원망했으며 나는 자책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아빠가 출근해 엄마와 남겨지는 아침이 밝는 것을. 하여 매일 밤 잠들기 전, 베갯잇에 얼굴을 파묻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신이시여, 나를 내일이 없는 곳으로 데려 가달라고, 부디 내일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가장 공포스럽다고 말이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인간이 스스로 삶을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을.

 

열 손가락을 전부 펼치고도 모자라 몇 개를 더 세는 나이가 되었을 땐, 알게 되었다. 스스로 삶을 그만둘 수 있다는 것과 그 방법도 다양하다는 것을. 그 후엔 줄곧 나의 죽음을 상상했다. 그리고 상상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글은, ‘내가 죽으면’이라는 가정 혹은 ‘죽고 싶다’ 혹은 ‘오늘은 엄마가’로 시작하곤 했다. 매일의 내용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일기 또는 유서와도 같은 이것이 내 기록의 시작이었다. 나는 죽고 싶을 때 기록했다. 살고 싶던 날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 쌓여가는 기록과 기록의 습관화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하루는 아빠에게 기록들을 들키기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내 부모는 어린 딸아이의 벌거벗은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일기장을 보고도 아이의 안부를 물을 만큼의 여유는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저 아빠는 엄마를, 엄마는 나를 책망했다. 그 후, 나는 나의 기록들을 조각내어 변기 물과 함께 떠내려 보내곤 했다.

 

 

[크기변환]노트북.jpg

 

 

종이에 쓰인 기록은 감추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낀 나는 핸드폰 메모장과 블로그에 기록을 이어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습관화된 기록하기와 활자에 대한 의지는 죽고 싶은 나를 외려 살게 했다는 것을. 쓰는 행위는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으며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을 갖게 했음을.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글을 쓰기도 했고 내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로 글을 쓰기도 했으며 내가 항유한 것들에 대한 감상과 사색을 글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운이 좋게도 나를 아트인사이트의 구성원으로 이끌었고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기록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들었다.


*

 

하지만 아트인사이트에서의 기록은 그간 해온 기록과는 사뭇 달랐다. 매주 한 편의 글을 기고해야 한다는 강제성을 띠고 있었기에 책임감을 필요로 했고 보이지 않는 읽는 이들이 존재했다. 언어와 문화예술을 사랑하니 그다지 어려울 일은 아닐 것이라며 호기로웠던 오만과 달리 이는 꽤나 부담스러웠고 괜스레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할 얘기가 굉장히 많을 것만 같았던 처음 생각과는 달리 매주 이번 주는 어떤 주제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고민스러웠고 시간 관리에 취약한 내게 글을 쓸 시간을 비워두어야 하는 건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며 마감 전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많았다. 유난히 만족스럽지 못한 글이 출력 중일 때면, 내 부족함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고 많은 이들이 보지 않길 바라기도 했으며 스스로가 그 글을 다시 보는 것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괴로워 기고된 글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 기다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트인사이트가 아니었다면, 정기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찰나의 감정과 의식들을 장문으로 엮으려는 의무감 또한 갖지 않았을 것이다. 강제성은 나를 의식적으로 관찰하게 했고 사유하게 했고 기록하게 했으며 홀로 기록할 때 보다 배로, 혹은 그 이상으로 내 삶에 생동감과 의미를 부여했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

 

솔직히 난 그리 괜찮은 구성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문화예술 자체를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착각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에디터 활동을 통해서 내가 문화예술을 편애한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괜찮게 글을 쓰는 줄 알았지만, 이곳에선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만큼 멋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곳의 구성으로서 글을 쓰는 것이 나를 위한, 내게 이로운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때때로 삶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홀로, 또 이곳에서 계속해서 기록할 것이고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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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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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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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음
    • 기록하는건 좋은 습관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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