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어느 날 컴퓨터와 책상이 말을 걸어온다면 - 예술가와 사물들

어느 날 예술이 말을 걸어온다면
글 입력 2020.06.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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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은 생의 불가피한 동반자다

우리는 물건의 집합 위에 삶을 세운다"

 

 

 

예술가와 사물



 

자주 사물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사유하곤 했다... 사물은 모서리가 닳고 바스라지면서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데, 그동안 사물과 사람은 운명공동체로 묶인다. 산다는 것은 사물 속에서 거주한다는 뜻이다.(p.10) 일상생활은 사물의 가장자리에 맞닿아 있다... 사물은 사라지고, 사람도 언젠가 죽는다. 사물과 사람의 운명은 어느 날엔가 덧없이 소실점 너머로 사라진다는 점에서 동일하다.(p.11)

 

- 서문 중에서

 

 

우리는 물건과 함께 살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차원의 사고를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꿈꾸더라도, 결국 피부에 닿는 사물의 감각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아침에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 알람을 끄고,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컵’에 담긴 ‘물’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다. ‘창문’을 열어 밖의 날씨를 확인하고, ‘요리’를 하거나 간단한 ‘과일’, ‘씨리얼’ 또는 ‘에너지바’로 끼니를 챙긴 후에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긴다. ‘마스크’를 쓴 후에는 ‘신발’을 신고 ‘문고리‘를 돌려 ’집‘을 나선다.

 

아침에 일어나 각자의 일상으로 나가기 위한 짧은 과정만을 거칠게 요약해도 이렇게 많은 사물을 발견할 수 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닥, 안경, 펜, 가방, 핸드폰, 노트북, 지갑, 리모컨 등 우리는 수많은 사물과 살을 맞대며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그 사물들에 관심을 가진다. 생의 동반자이자 운명 공동체이기도 한 물건들. 우리의 삶과 함께 낡아가고 닳아가는 사물에 대한 진한 애착과 물성에 대한 통찰이 글에 묻어있다.

 

특히 이 책은 예술가와 물건을 엮어 보여주고 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물들로부터 예술가들의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것은 예술가에 대한 소개이기도 하고, 예술가가 애착을 가졌던 사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평, 때로는 재미난 뒷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사물’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건 이 책의 큰 특징이다. 프로이트, 헤밍웨이, 마를린 먼로, 니체, 이상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이 책 속에 등장한다.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책을 읽는 재미와 즐거움이 두 배가 될 것이고, 모르는 인물에 대해서는 폭 넓은 지식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술가들의 기쁨과 슬픔>

 

예술가들의 삶은 물음표로 가득차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왜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사랑했을까? 천상병 시인이 죽은 줄 알고 그 지인들이 유고시집을 엮었는데, 이를 받아본 천상병 시인이 처음 내뱉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김수영 시인이 거리 한가운데서 자기 아내를 우산으로 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렇듯 호기심을 자아내는 예술가들의 내밀한 모습이 이 책에는 다양한 사연과 함께 담겨 있다. 에곤 실레가 “돈은 악마야!”라고 외친 이유, 그리고 프로이트가 “그토록 빨리, 그토록 훌륭하게, 그토록 완벽하게 나를 파악한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라고 언급한 여성이 누구였는지도 알 수 있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

 


 

책의 깊이와 넓이에 대하여


 

이 책은 저자가 한 일간신문에 두해 동안 매주 한 번씩 쓴 짧은 글을 모아 엮어낸 것이다. 그래서 각 이야기가 한 장을 넘기지 않는 옴니버스식의 에피소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책의 구성으로부터 파생되는 느낌은 가볍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집중해서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는데, 집중이 안 될 때나 이동하면서 몇 장씩 펼쳐보기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개한 이 책의 특징 - 다양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과 한 장씩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옴니버스 구성이라는 것 - 은 이 책의 장점과 단점 모두에 관계한다. 일간신문에서 짧은 분량으로 연재할 때는 아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부분이지만 책의 형태로 엮어놓으니 생겨난 아쉬움이다.

 

첫 번째로, 다양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재미있으려면 여기에 수록된 예술가들을 알아야한다. 사물과 관련된 이 특별한 에피소드는 평소 관심 있는 인물의 것일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잘 알지 못하는 예술가라면 공감이 어렵고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보니 일반 대중 독자가 이 모든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나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고,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 20대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다. 책의 3분의 1은 평소 잘 알고 있는 인물의 이야기라 흥미롭게 읽었고, 다른 3분의 1은 이름과 간단한 정보만 알고 있는 인물이라 가볍게 읽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처음 보는 이름이라 큰 흥미를 갖지 못했다.

 

나의 식견이 부족한 탓에 발생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 독자가 이 모든 내용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두 번째로, 한 장씩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옴니버스 구성이라는 것이다. 한 장이라는 짧은 분량은 신문에서 연재를 진행할 때 효과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각종 기사들로 구성된 신문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였으리라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연재된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책으로 읽는 입장에서는 에피소드 각 이야기가 너무 짧아 몰입하기 어려웠다. 한 번에 읽지 않아도 괜찮은 형식이라 좋았지만, 반대로 한 번에 읽기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특히 기존에 잘 모르던 예술가의 경우 작품도 보고 삶의 이야기도 살펴보며 관심과 궁금증을 키워나갈 시간이 필요한데,  이 글이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기엔 너무 짧은 분량이다. 그래서 기존에 모르던 인물의 이야기가 등장하면 쉽게 흥미가 떨어진다. 반대로 기존에 좋아하던 인물이라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파트에서는 에피소드가 너무 간략해 아쉬움을 느꼈다.

 

깊이는 있으나 깊이를 담아낼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지 못했고, 폭 넓은 지식을 전달할 수는 있으나 다양한 정보에 대한 관심까지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한 책이었다. 책에 담긴 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존에 신문에 짧게 연재하던 형식의 원고를 그대로 책으로 엮어 발생하는 아쉬움으로 보인다.

 

충분한 분량이 할애됐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사물과 관련된 인물들의 에피소드 중에는 흥미로운 것들도 많았다. 풍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물의 관계를 통찰하고 어떤 인식을 전달해주려는 노력들이 돋보였다. 오랜 기간 출판 일을 하며 글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글은 힘 있고 명쾌했다.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멈칫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해하는데 무리가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예술과 나 그리고 사물


 

책을 읽으며 나에게는 어떤 사물의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내 이름과 사물. 제목이 예술가와 사물들이니까 나를 예술가로 만들어준 사물이나 나의 예술 활동에 함께했던 사물을 적어 넣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거듭해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나를 예술가라고 불러도 좋은 걸까?

 

지금 나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하려고 노력하지만, 10대 때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오는 top100 음악 정도는 들었지만 또래 친구들이 흔히 좋아하는 아이돌도 좋아하지 않았고, 별다른 문화생활도 하지 않았다. 단편소설을 비롯해 꾸준히 책을 읽는 지금과는 달리 심리학과 관련된 채 몇 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문화예술이 찾아왔던 시점은 어느 순간일까. 어쩌다 나는 소설과 영화와 음악을, 그리고 그 많은 문화예술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특별한 계기가 있기보다는 자연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내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시원한 재질의 옷을 입고,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았던 채로 어느날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문화예술에 마음을 주고 있었다.

 

어쩌면 사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극적인 만남의 순간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별한 것은 '시간을 같이 쓰며 함께 닳아가는' 관계일 것이다. 예술가가 되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술과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다보면 어느 날 예술가와 비슷한 모습으로 닳아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까지 내 곁에서 함께할 사물은 무엇일까. 내가 글을 읽고 쓰고,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이 책상과 컴퓨터일까? 누구에게나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진부하고 보편적인 사물이지만, 그래서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동시대의 작가와 감독도 이 컴퓨터 앞에서 여러 날을 고민했을 것이다. 왠지 나도 그들을 닮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뜯으며 고민하는 나를 어느 날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면,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이 글을 함께 읽을 모두를 예술가라고 불러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어느 날 예술가가 된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각할 때, 내내 함께 했던 우리의 책상과 컴퓨터의 이야기는 어떻게 기록될까. 이 평범한 사물들이 우리가 이제 예술가가 되었다고 말을 걸어올 날도 있을까?  예술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날은 언제일까.

 

앞으로 우리의 예술을 써나가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서정보>



시인 장석주가 들려주는 

예술가와 사물의 우정에 대하여

 

책과 담배를 보라! 

외관이나 표면의 단순함에 견줘보자면 사물은 놀랄만큼 복잡한 내면과 불가사의한 심연을 품는다.

 

 망치를 보라! 

가장 완벽한 것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는 단순한 형태로 완성에 도달한다. 세계는 이런 사물로 둘러싸이고, 일상생활은 사물의 가장자리에 맞닿아 있다. 

 

"나는 사물을 좋아한다.

이 책은 사물의 섬광과 아름다움을 취하고

그것을 향한 애착과 함께 

제 운명의 도약대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

 

지은이: 장석주

 

출간일: 2020년 06월 12일

 

정가: 15,000원

 

출판사: 교유서가

 

ISBN 979-11-90277-43-3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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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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