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죽음 앞에선 손을 잡아보자 - 나의 눈부신 친구 [도서]

글 입력 2020.06.24 20:5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과거는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미화의 작업을 더 자주 겪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는 좋은 기억들이 주축이 되어 그 뒤로 보일 듯 말 듯한 형태로 좋지 않은 기억들이 존재한다고. 그래서 나는 자주 “힘들었지만, 그때가 참 좋았지”라는 문장을 꺼내곤 한다. 나아가 매번의 현재 또한 훗날엔 모두 아름다운 과거로 남을 거라는 생각도 종종 한다.

 

물론 좋게 기억되어서야 나쁠 건 없다고 여길 때도 있다. 차라리 잘 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개는 그러한 이유로 정말이지 나의 게으름을 이겨내고, 매일을 기록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이 된다. 일기 같은, 아니 그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방식의 기록이라도.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나만이 온전한 형태를 경험할 수 있는 매 순간 다른 생각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쪽이라도 과거는 현재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왜곡 없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욕망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 표1.jpg

 

 

그리고 「나의 눈부신 친구」의 섬세하고 내밀한 묘사로 하여금 그 욕망의 이름을 알아버렸다. 그 욕망은, 사실일지는 몰라도 진실은 아닌 것으로 기억을 종결시키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생생함의 정확한 이름은 진실이었다. 모든 현재는 과거로 바래지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장막으로 덮인 진실 그리고 그 앞을 교묘히 가린 사실의 형태로 저장되기에.

 

진실을 알고 싶어졌다. 나아가 지금도 끊임없이 과거가 되어가는 중인 수많은 현재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보다 진실에 가까운 쪽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우린 매일 죽어보는 중일지도


 

한줄기의 따스한 빛을 상상했던 제목 ‘나의 눈부신 친구’, 그리고 아름다운 색채의 풍경을 앞에 두고 손을 포갠 상태로 앉아 있는 두 여인을 책 표지로부터 만나곤 자연스레 어떤 따뜻한 우정 같은 것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이라는 단어가 그 자체만으로 파스텔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듯.


 

우리가 매일같이 느끼는 공포는 그들의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바위와 건물, 들판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밝은 빛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그 빛 사이에 어두운 구석과 폭발 직전의 억눌린 감정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태양빛 아래에서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모든 것을 지하창고의 어둠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예나 지금이나 삶은 매 순간 찬란하지만은 않다. 우리의 매일은 개인적인 행복과 불행 또는 둘 중 무엇도 아닌 것들이 얽혀있는 채로 지나가는 중이다. 현재가 그러하듯 미화된 과거 또한 실제로는 그러할 것이다. 이젠 안다.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 모두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걸.

 

이 소설 속의 단어로 말하자면 우리 삶은 ‘죽음’의 사건들을 자주 겪는다. 비가 쏟아졌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돈 아킬레는 창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목에 칼이 꽂힌 채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1950년대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의 여기, 여전히 우리는 죽음과 멀지 않은 곳에 산다.

 

우리가 겪어온 그리고 지금도 겪는 중인 죽음들은 다음과 같다. 순수하고 명랑한 나의 죽음. 가끔 내게도 못된 구석이 있다는 걸 깨달을 때면, 설상가상 이기적이고 무언가를 파괴하고 싶은 잔인한 나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반짝거리던 이전의 순수한 내가 죽어버리는 것만 같다. 질투와 시기로 가득 찬 마음으로 저지른 부끄러운 일들은 과거가 되어서도 마음을 굴러다니며 상처를 내고, 닮고 싶지 않은 부모의 행동을 어느새 그대로 따라하는 중인 나를 거울로 발견하면 불안이 희망을 죽인다.

 

아, 우리는 죽음과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게 아니라, 어쩌면 매일 직접 죽어보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death-stranding-uhdpaper.com-4K-9.jpg

 

 

그래서,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지성을 지닌 단짝 릴라를 동경하면서도 시기하고 시기하면서도 동경하는 레누의 ‘못된 마음’과 또 그런 마음에 괴로워하던 그녀가 겪어내는 여러 번의 ‘죽음’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아가 레누로 하여금 “그래, 내 어린 시절도 비슷했지”라고 중얼거리며 과거의 진실을 들여다보던 나는 여전히 별반 다를 건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중이었다. 죽어봄으로써 알게 된 과거의 진실이란, 결국 지금 여기와 오지 않은 미래를 곧게 바라보는 일로 완성됐다.

 

또 우리는 모두 릴라보다는 레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레누일 거라는 생각은 이내 그렇다면 릴라도, 카르멜라도, 엔초도, 리노도, 파스콸라도 모두 레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레누의 1인칭 시점으로 릴라와 다른 인물들을 바라본 것일 뿐, 레누의 시선으로 보지 못한 그들 또한 겪었을 죽음에 대한 생각. 결국 우리가 레누였듯, 릴라도 레누일 수 있고 또 우리일 수 있는 셈이었다.


 

릴라는 리노 몰래 계산한 제작비 내역서를 내밀려다가 잠시 머뭇거리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다시 접었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말이 옳고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그래도 해봐야지.” 

“페르난도 아저씨가 화를 내실 텐데.”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어.”

 

 

레누는, 누군가 릴라에게 무엇인가를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릴라는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강한 아이였고, 엔초나 알폰소, 스테파노보다도, 오빠인 리노보다도, 심지어는 부모님들보다도, 담임선생님과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경찰 아저씨들보다도 더 강한 아이였다고도 말했다. 레누가 노력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던 그녀의 날카롭고 도발적이며 또 치명적인 지성은 레누를 괴롭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릴라가, 그마저도 포기를 선택해 도달한 꿈이었던 신발 제작을 다시 포기하고 집안일로 돌아가던 날, 읽는 것과 공부하는 것 그리고 아는 것을 포기하던 날, 레누의 시선으로도 그녀의 죽음을 볼 수 있었다. 릴라는 돈 아킬레만큼이나 잔인하게 칼에 찔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던, 레누의 눈으로 읽은 릴라의 죽음 이후 삶에선 눈물이 났다. 무너지지도 아니 어떤 자극에도 미동도 없을 것 같던 릴라는, 신발 제작을 포기한 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신발을 숨겨둔 방으로 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에서 생겨나 완성까지 한 신발을 어루만졌다.

 

인간의 연약함을 마주하면 그 사람의 취약한 상태를 보고 있는 기분으로 슬퍼지곤 하는데, 내가 기대고 의지하느라 그의 연약함까지도 잊고 살다가 갑작스레 마주한 연약함엔 먼저 뒷걸음질 치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니까


 

하지만 결국 이 둘이 손을 맞잡는다면. 손을 잡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돌이켜보면 가장 흔한 스킨십임에도 타인의 손을 잡아볼 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의 손을, 그것도 꽤 오랜 시간 잡아보고 있던 적이 있었나 싶은데 이상하게도 손을 잡아 본 기억은 꽤 특별하게 기억된다. 또 사람의 온기가 필요할 땐, 다른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손을 떠올리곤 한다. 왜 하필 손일까 종종 생각한다.

 

내 것과는 분명 다른 손금의 모양과 크기, 피부의 낯선 감촉이 감각을 자극할 때면, 곧 손만으로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두려울 때 또는 우리가 함께 있는 걸 감각하고 싶을 때 우린 손을 잡는다.


 

그날 저녁 돈 아킬레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층계를 난간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기로 결정한 바로 그 순간 릴라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도입이자 레누와 릴라가 함께 있는 모습을 처음으로 상상했던 장면인, 돈 아킬레의 집에 찾아가던 날 손을 마주잡던 레누와 릴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레누와 릴라의 첫 일탈, 바다를 찾아 떠나며 잡은 손도. 레누가 릴라를, 또 릴라가 레누를 필요로 한다는 서로의 절박한 마음은 맞잡은 손에 있었다.

 

우리, 죽음 앞에선 손을 잡아보자.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jpg

 

 

[윤희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