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정으로 표상된 신화에 대해서 - 나의 눈부신 친구

고도의 감정 놀이
글 입력 2020.06.2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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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곡점의 부재


 

우애가 무엇인지 일원적으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오랜 시간을 봐 온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넓지 않았을 시절부터 봐 온 ‘친구’에게 갖는 감정의 형태는 어떠한가. 나폴리 4부작의 서막을 알리는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렇듯 친구로서 마주보는 사람들의 ‘경계’를 논한다. 나아가 각자뿐 아니라 서로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 ‘규정’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서사의 중심부에 위치한 인물은 릴라와 엘레나다. 1권을 포함해 4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과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 둘이다.

 

연인에 대한 문제건, 집안에 대한 문제건, 유럽을 휩쓸었던 파시즘의 광기건,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이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토론이건. 이들의 앞에서 모두 ‘주변부’로 물러날 뿐이다. 서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심부와 주변부에 위치한 인물이나 요소들은 바뀌지 않는다. 언제나 릴라와 엘레나가 이야기의 화두로 등장한다. 그들의 관계성이 서사의 핵심으로 대두된다. 일련의 사건과 가족, 친구 등의 주변인들은 말 그대로 주변부에만 머무른다. 그런 서사적 올곧음을 관찰하는 것이 재밌다. 관찰을 계속할수록 이들이 친구인지, 친구라는 ‘신화’를 빙자한 사디-마조히즘적 타인들의 교집합인지 잘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은 때때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다가도, 놀라울 정도로 다정하게 서로를 향한 우애를 드러내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감정의 양상이 정 반대의 양상으로 행하는 과정에서, 변곡점은 명확하지 않다. 다시 말해 릴라와 엘레나가 일련의 사건에서 겪는 감정들에는 외연적인 계기만 존재할 뿐 본질적인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애정과 싸움이 발생하는 데에는 합리적인 원인이나 명분이랄 게 없다. 변곡점의 부재는 이들의 관계를 단지 ‘우정’으로 국한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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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분 없는 긴장감의 연속


 

 

릴라는 왜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보다 빨리, 나보다 더 잘 하는 걸까. 내가 따라가면 도망가면서 정작 자신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와 나보다 앞서나가려 하는 걸까. 나는 한동안 릴라를 피했다. 그만큼 화가 났다. (182-183p)

 

나는 동네의 경계를 넘어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릴라처럼 벽돌공, 자동차 정비공, 야채장수, 식료품점 주인, 구두수선공과 어울리는 대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함께 지냈다. 이제 릴라가 디도나 영어 단어 암기법이나 3인칭 어미변화나 파스콸레와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 말할 때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릴라가 자신도 나만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증명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았다. (212p)

 

 

엘레나는 변변치 않은 집안에서도 학업을 지속해 중학교에 진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고등학교까지 진학한다. 우수한 성적과 더불어 그녀는 모나지 않은, 성실하고 착한 심성을 지녔다. 그렇기에 타인의 시선에서 엘레나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비춰진다. 그럼에도 엘레나는 언제나 삶의 중심부에 릴라를 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방과 후에 릴라를 만나 그녀와 함께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릴라의 지적 능력은 뛰어났다. 그녀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지속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재학 시절 학급에서 성적 1등을 놓치지 않은 범재였다. 언제나 엘레나보다 학업에 대한 직관적인 능력과, 세계의 이면을 관찰하는 능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이론과 실제 현상 간의 유비적인 관계를 추론하는 일에도 뛰어났기에 인문학 교과목에서 쓸 수 있을 작문 아이디어를 손쉽게 내놓기도 했다.

 

엘레나는 그런 릴라를 존경하면서도 시샘한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리스어와 같은 고급 언어를 단기간에 독파하고, 신발을 만드는 일에 열정과 재능을 보이는 릴라의 행보에 자꾸만 위축된다. 나아가 시간이 지날수록 외적으로 아름다워지는 릴라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끼고, 거울 너머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외관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엘레나는 릴라의 곁에 계속 남아있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녀의 걸음걸이에 발을 맞추기 위해 학업적으로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남자친구를 사귀어 결혼을 준비할 태세인 릴라와 연애의 영역에서도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자 했다.

 

릴라도 엘레나에게 이와 비슷한 위기감과 애정을 느낀다. 『나의 눈부신 친구』를 포함해 나폴리 4부작 전권은 엘레나의 시점에서 1인칭으로 서술되기에, 릴라의 시점을 단독으로 목도할 기회는 없다. 하지만 엘레나의 서술과 릴라 자신이 남겼던 일기나 편지(1권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의 내용을 읽다 보면, 릴라 역시 엘레나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의 이탈리아에서 여성이 중등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집안 환경이 넉넉지 않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 때문에 그렇게나 똑똑했던 릴라마저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상의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달랐다. 나폴리 출신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물질적 환경이 여유롭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였음에도, 엘레나는 중학교에 진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해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보이며 대학교 진학까지 준비한다. 자신과 달리 엘레나는 고등교육을 받으며 표준어로 작문하는 법을 배우고, 지적인 글과 기사를 작성하는 방법을 배우며 ‘다른 세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위기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구두공인 아버지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도, 매주 동네 도서관에 방문해 가족의 이름을 빌려 책을 몇 권씩 빌렸던 것도, 동네에서 가장 부유하고 외모가 뛰어난 마르첼로를 혐오하면서도 그와의 문제를 레누(엘레나의 애칭)에게 끊임없이 꺼냈던 것도. 위기감을 느껴 자신의 뛰어남을 입증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언뜻 보면 이렇듯 릴라와 엘레나는 마치 서로에 대한 우위를 독점하고자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만 같다. 이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긴장감에는 그럴싸한 명분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벅찰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름의 합리화가 행해진다는 전제 하에. 둘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가 가능할 때도 없진 않았다. 이들의 관계를 굳이 명시적인 언어로 규정해보자면, 둘은 우정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투쟁을 반복하는 사이다. 릴라와 엘레나는 서로에게, 우정으로 표상된 기호를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신화를 투영하고 있다. 기표가 되는 재료는 서로의 존재고, 기의가 되는 재료는 매 순간 서로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지위 등, 서로를 규정하기 위한 정신적 요소들이다. 서로간의 갈등과 화해, 또 다른 싸움, 평화의 반복이 이어졌던 와중에 변곡점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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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계에 대한 이야기


 

 

1958년 12월 31일 릴라는 처음으로 경계의 해체를 경험한다. 경계의 해체는 내 표현이 아니다. 단어가 가지는 일반적인 의미를 극대화해서 릴라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릴라는 사람이나 사물을 구성하는 윤곽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1959년의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옥상에 모인 그날 밤, 릴라는 생전 처음 경계의 해체를 강렬하게 체험한다. 그때만 해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정확히 규정짓지 못했기에 혼자서만 간직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1980년 11월 어느 날 밤에 이르러서야, 옥상에서 경험했던 현상에 대해 내게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도 하고 자식도 둔 36세의 여자가 되어서도 때때로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고백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경계의 해체라는 표현을 썼다. (113p)
 

 

이처럼 뚜렷한 변곡점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관계의 긴장감은 정합적으로 해명되지 않는다. 이는 곧 경계에 관한 서술로 이어진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경계는 타인에게 행하는 ‘규정’의 일종이다. 이 행위는 특히 릴라에게서 자주 포착되며, 엘레나 역시 릴라가 경계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자기 주변의 인물과 사건을 바라봄을 느낀다. 그렇기에 경계에 대한 이야기는 곧 릴라와 레누의 서사에서 핵심적인 축으로 기능하게 된다. 나폴리 4부작 전 권에서, 경계에 대한 설명은 릴라의 언급을 통해 계속된다. 엘레나는 이처럼 릴라가 꾸준히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음을 기술한다.

 

릴라에게 ‘경계의 해체’란 어떤 경험이었나. 그녀 자신도 문장으로 명료하게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려 온 삶의 궤적이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면, 그것이 앞서 말했듯 규정에 관한 것임은 분명하다. 엘레나의 서술에 따르면 릴라는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자신이 다른 사람, 물건, 숫자, 글자 따위의 경계를 파괴하며 그 속으로 이전되는 듯한 느낌을 몇 번인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경계의 파괴는 규정의 파괴와도 같다. 자신이 타인에게 내렸던 규정이 깨져버렸음을 의미한다. 릴라는 언제나 불안정한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에 그녀는 아이들에게 ‘이상하다’는 평을 일상적으로 들었고,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도 그녀는 유독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이는 단지 그녀의 외관에서 우러나오는 느낌 때문이 아니었다. 수제화 공정을 차려 부를 획득할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오빠 리노와, 매사에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아버지. 나폴리 시골에 서서히 닥쳐오는 정치적인 불안감, 그 가운데에서 무너지는 사회의 질서들. 공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는 ‘천박함.’ 뛰어난 두뇌와 예민한 시선을 지녔던 릴라에게 이 모든 상황들이 중첩됨에 따라 그녀는 더욱이 “이상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릴라를 둘러싼 환경은 그녀를 감당하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았다. 그릇의 형태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릴라가 택했던 방법은 타인과 주변의 사물, 현상 모두를 어떤 ‘틀’과 ‘규정’ 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릴라에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를 가르쳤던 선생님과 같은 반 학우들은 자신이 반기를 들고 대항해야 할 존재들로 여겨졌다.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아버지와 오빠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할 불쌍한 사람들로 비춰졌다. 동네의 문제아로 유명했던 솔라라 형제는 그저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릴라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언제나 그녀만의 틀을 씌웠다.

 

그렇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경계가 파괴되고 해체됐다는 것은 릴라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했던 방법이 무력화됐음을 의미한다. 스테파노의 집 옥상에서 솔라라 형제의 위세에 대응하고자 화려한 폭죽을 몇십 개씩 쏘아댔던 그 순간. 릴라는 스테파노를 포함한 이성 지인들의 악마적인 면모를 목격하고 그들에게 부여했던 규정이 깨어짐을 경험한다. 더불어 자신의 세계도 일부 무너졌음을 직감한다.

 

그래서 나는 서술의 주체가 엘레나였음에도, 적어도 1권에서는 릴라의 불안정과 불완전함에 눈길을 더 줄 수밖에 없었다. 릴라는 심지어 그녀 자신에게도 타인의 앞에 나서기 위한 역할을 끊임없이 부여함으로써 경계를 세웠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만큼은 그 양상이 달랐다. 그 사람이 엘레나였다. 엘레나도 릴라의 규정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엘레나는 자신에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야 할, 가장 눈부신 친구”로 규정됐다. 릴라 스스로도 자신을 엘레나의 친구로 규정하기 위해, 레누의 학업을 돕겠다는 사명을 스스로에게 부과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글로 된 무언가를 꾸준히 배웠던 것이다. 하지만 엘레나는 단지 경계에 대한 릴라의 언급만으로, 그녀의 섬세함을 좇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1권을 읽고 경계의 해체를 논했던 릴라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것 때문인지 내 손에는 지금 이 시리즈의 4권이 잡혀 있다. 4권까지 모두 읽은 후에 또 다른 감상평을 써 보고자 한다.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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