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한 조각과 가재가 노래하는 곳 [도서]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일인데도 곁에 누군가를 두기 위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했다.
글 입력 2020.06.21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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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마을에 유명한 청년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가 발견되는 사건으로 이 소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건과 연관된 인물 카야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사건의 중심부로 점차 다가온다. 1952년부터 시작된 카야의 이야기와 1969년 현재에 일어난 체이스 사건. 1952년부터 1969년에 맞닿을 때까지 보여주는 성장이야기는 보는 내내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개의 반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해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을 읽는 것에 막막함 먼저 앞섰는데, 그 생각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책을 덮은 순간까지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도 그 생각은 이어졌다.

 

엄마가 떠나고 형제가 떠나고 아버지마저 떠나 혼자 남게 된 카야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체이스의 사건 보다 카야의 성장기가 더 흥미로웠다. 믿었던 조디 마저 떠나 폭력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카야. 배운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카야.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조차도 어깨너머로 보거나 옆에서 엄마를 도우며 본 것이 다였다. 그런 카야가 아버지가 떠나자 돈을 벌기위해 홍합을 따기 시작한 건 충격적이었다. 카야라는 어린 인물이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8시간씩 홍합을 따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날 것의 상태, 야생의 상태의 카야와 나는 접점이 없지만 이상하게 마치 내가 카야가 된듯한 느낌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처음으로 카야에게 “아가”라고 부를 때도 믿기지 않아 그 장면을 계속 곱씹었다. 아버지가 카야를 자신의 딸로 인정해가는 모습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언제 다른 가족들처럼 떠날까봐 불안하기도 했다. 마치 그 판잣집에 카야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여자애들처럼 손으로 입을 막고 깔깔 웃었다."

 

 

어쩌면 이미 보통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산 카야에게서 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 때 남들과 다른 게 무서웠고,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한 적이 있었으니까.


'보통'이 아닌 카야에게도 첫 사랑이 찾아왔는데, 바로 테이트였다. 카야는 테이트와 삶과 사랑은 같은 말이라고 할 정도로 그가 모든 것이었다. 그랬기에 테이트가 떠나야하는 상황이 오고, 마침내 떠났을 때 카야가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이해됐다. 내가 아프니 다른 사람 또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곤 하니까. 그것은 무조건 반사 같은 것이니까 당연하다. 또한 그러한 모습들이 카야를 점점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카야의 마음에 사랑 비슷한 무언가가 솟구쳐 날아왔다. 이제 홍합을 캐지 않아도 돼.”
 

 

테이트와 헤어진 후 카야는 체이스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라는 외형만 갖추었을 뿐, 체이스에게도 카야에게도 사랑 그 자체는 아니었다. 이미 카야는 앞서 테이트에게 사랑에 이미 한 번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심장에 울타리를 쌓되 외로움을 덜고 싶은 마음. 카야는 테이트로 인해 진짜 사랑을 배우고 체이스로 인해 거짓된 사랑을 배웠다. 거짓된 사랑, 이라고 말하기엔 추상적이지만 카야의 생각이 체이스는 그저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함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체이스와 결혼한다면 홍합을 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체이스는 그저 카야에게 있어 도구뿐이라는 걸 나타내주고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또는 읽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나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을 점이 있다.  첫 번째는 카야가 수집품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서이다. 나는 그것이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남은 곳을 어떻게 해서든 채우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커질수록 오히려 카야의 외로움도 깊어져 갔다. 깊은 외로움으로 얻게 된 그림 실력과 책을 낼수 있는 기회는 과연 카야에게 있어 '좋은 기회'였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카야는 체이스를 생각해서 웃었다.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일인데도 곁에 누군가를 두기 위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했다."
 

 

두 번째는 위 문장처럼 '나'도 카야처럼 곁에 누군가를 위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한 적 있는지. 그러면서 절대로 마지막가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사실 카야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녀에겐 점핑과 메이블이 있었고, 습지가 있었고, 시가 있었다. 점핑과 메이블이 카야에게 정이 가 그녀를 돌봐주기 시작한 것과 넓은 습지에서 대지의 어머니를 만난 것,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시는 카야의 성장에 함께 했다. 카야는 혼자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에겐 기억나지 않았을 때부터 함께 했던 테이트가 있었다. 용의자로 올라 감옥에 있을 땐 고양이가 있었다. 그들은 카야를 믿었고 그녀가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주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것은 내게도 이런 사람이 있는가이다. 혹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지도.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내가 자연은 될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그 사람에게 한결같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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