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재순, 박성빈, 강명자 [사람]

글 입력 2020.06.1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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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서울 가리봉동과 구로공단1)

 

 

 

김재순


 

김재순은 노동자였다. 그는 지난달 22일 합성수지 파쇄기에 끼여 사망했다. 재활용업체에서 일하던 김재순은 지적장애를 동반한 노동자였다. 회사는 그가 장애를 가졌는지 알지 못했다. 현장에 도사린 위험을 경고하는 교육은 없었다. 안전장치도 없었다. 사수가 있었는데, 2인 1조는 지켜지지 않았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대개 그렇듯 인력이 부족했다. 업체 대표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자기 과실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회사와 무관한 죽음이라며 선을 그었다. 노동자 개인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는 거였다.

 

고(故)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은 현장을 녹화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했다. 김재순은 사망 전에도 파쇄기를 작동했다. 파쇄기 상부에 올라가 튀어나온 폐기물을 정리하는 모습이 찍혔다. “자기 과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파쇄기를 가동하고 투입구를 정리하는 일은 김재순이 수행하는 일상적 노동이었다. 회사는 어쩌다 발생한 개인의 불운이라고 주장했지만 김재순의 죽음은 불운이 아니었다. 일어날 수순이었다. 김재순이 아니어도 누군가 죽었을 법한 현장이었다.

 

김재순은 회사의 지시이자 승인 아래 파쇄기를 가동하다가 사망했다. 그의 죽음 또한 회사의 지시이자 승인인 셈이다.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6년 김군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고장을 수리하다가 사망했다.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망은 없었다. 2인 1조 절차는 부족한 인력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는 김군의 죽음을 “안전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김군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죽음이라는 의미였다.

 

2018년 김용균은 석탄 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벨트가 작동을 멈춰 기계 내부로 들어가 점검을 수행하던 와중이었다. 원청 간부는 김용균이 매뉴얼에 없는 일을 하다가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면 안전한 현장에서 노동할 수 있었는데 김용균이 이를 어긴 것이라는 맥락이었다.

 

김재순의 죽음은 김용균과 김군이 죽었던 풍경과 일치한다. 언론에 거론되지 못한 무수한 노동자의 죽음과 일치한다. 여론은 잠깐 분노하고 꺼졌다. 정치는 여론의 눈치만 살폈다. 기업은 현장을 복구하는 척하며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다. 어디에도 “다음”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없었다. 죽음은 되풀이되고 있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의 책임이다. 노동자의 죽음에 찰나의 관심만 기울이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김재순과 김용균과 김군의 죽음은 사회의 묵인과 방치 아래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 죽음은 재해가 아니라 타살이다.

 

 

 

박성빈


 

박성빈은 패스트푸드 매장의 시급노동자다. 학업과 병행하기 위해 주 2일 근무한다. 노동법은 주 15시간 이상을 근무하면 주휴수당이 지불돼야함을 명시한다. 회사는 이틀 근무하는 박성빈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노동 시간을 꺾는다. 하루는 7.5. 이튿날은 7.0.

 

박성빈에겐 휴게시간 30분이 할당된다. 보통 그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4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햄버거를 먹는 게 가능하다. 회사 방침이다. 다만 4900원을 초과하는 세트 메뉴를 먹는 건 금지돼 있다. 회사 방침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했어도 근무 복장을 갖추지 않으면 출퇴근 기록기를 작성할 수 없다. 정해진 시간 전까지 근무 복장을 입어야 한다. 9시 출근이면 8시 50분까지 매장에 도착해야 제 때 출퇴근 명부를 작성할 수 있다.

 

박성빈은 매장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패티를 뒤집고 기름을 갈고 폐기름을 버리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뽑는다. 그릴판에 데이고 기름이 튀고 모멸을 욱여넣고 손님에게 인사를 똑바로 하라는 명령에 자세를 고친다. 잠깐 손님이 뜸하면 매니저는 바닥을 쓸고 닦으라고 지시한다.

 

박성빈이 힘들어도 그만두지 않는 건 해당기업이 법에 명시된 모든 수당을 제공해서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 가입이 의무화 돼 있어서다. 다른 시급노동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라서다. 임금이 체불되거나 떼먹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동자의 온당한 권리를 온당하게 보장하는 시급노동 현장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이곳을 그만둘 수 없다.

 

시급 노동자가 실수를 하면 매니저는 단체방에 글을 올린다. “여기 학교 아닙니다. 작은 사회도 사회입니다.” 박성빈은 그 말을 볼 때마다 위화감을 느낀다. 이렇게 작은 사회에서도 온갖 구박과 모욕과 열악함을 견디고 버텨야 하는데 진짜 사회는 대체 얼마나 버거울지 가늠이 안 된다. 매니저의 그 말은 훈계이자 경고다.

 

사회에 진입한 이상 모두 공평하게 불공평을 분담해야 한다는 훈계이자 큰 사회는 더욱 가차 없다는 경고다. 박성빈은 내일도 햄버거를 만들고 패티를 뒤집고 기름을 갈고 폐기름을 버리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뽑아야 한다. 저 말을 듣고 싶지 않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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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서울 가리봉동과 구로공단2)

 

 

 

강명자3)


 

강명자는 구로공단의 객공이다. 객공이란 작업량에 따라 수당을 받는 봉제노동자를 일컫는다. 연쇄 하청 시스템에서 가장 하위에 위치한 1인 하청이다.

 

강명자가 상경하여 처음 취업한 곳은 삼성물산의 하청업체였다. 1년만에 잘렸다. 이후 비슷한 곳을 전전했다. 회사들은 함석으로 만든 장판 몇 개의 공간을 기숙사라고 불렀다. 강명자는 거기서 먹고 자며 일했다. 천을 재단하고 미싱을 박았다.

 

공단 밖에선 강명자 같은 노동자를 ‘가리봉 공순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노동이었는데 남들은 조롱했다. 강명자가 자기 노동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사무직은 강명자 같은 ‘공순이’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급이 달랐다. 보너스도 수당도 강명자의 두배를 받았다. 사람은 천이나 섬유가 아닌데 노동의 종류에 따라 인간성이 마름질됐다. 공순이들은 공부를 못하고 천박해서 공순이가 된 것이니 조롱을 당하고 수당을 떼먹혀도 됐다.

 

강명자는 대우어패럴에서 노조를 만들었다. 사무국장이 됐다.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나도 나이키를 신고 싶다’고 구호를 외치고 집회를 했다. 국가는 강명자를 비롯한 노조 간부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살려달라고, 이렇게 못살겠다고 집회하고 시위했는데 그 집회와 시위가 법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강명자는 10개월 징역을 살았다.

 

취업이 안됐다. ‘노조를 만들어 회사를 괴롭히는’ 이들의 이름이 적힌 블랙리스트가 돌았다. 강명자도 거기 적혀있었다. 강명자의 노동은 점점 중심에서 멀어졌다. 나이키를 신을 수 없는 노동에 가까워졌다. 직영에서 하청으로, 퇴직금도 보너스도 없는 곳으로 흘러가 객공이 됐다. 객공은 자사 공장 직원이 아니란 이유로 수입의 절반이 떼였다.

 

도메스틱 브랜드의 옷들이 조명 받아 마네킹에 걸렸다. 세계로 뻗어나간다며 광고와 전단에서 우수함을 자랑했다. 하청에 하청을 타고 강명자와 같은 객공들의 미싱이 박힌 옷을 그렇게 선전했다. 브랜드와 메이커가 규모를 키우고 의류 산업이 성장할 때 강명자는 회사에서 잘리고 객공이 됐다.

 

2014년 9월 구로공단은 50주년을 맞았다. 정부와 지자체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잔치를 열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역사’와 ‘창조경제의 거점’이라 자평했다. 서울시 구로구와 금천구에 플래카드를 걸고 공단의 역사를 홍보했다. 그 역사엔 저임금 노동을 언급하는 대목이 없었다. 강명자 같은 노동자를 산업역군이라 치켜세우고 말았다. 기만이었다. 강명자는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던 구로공단에 돌아와 여전히 미싱을 박는다.

 

 

 

우리들


 

김재순이 죽었을 때 박성빈은 패티를 뒤집었고 강명자는 바지춤에 고무줄을 넣었다. 박성빈이 손님에게 받은 모멸을 집어삼킬 때 김재순은 안전장비가 마련되지 않은 현장에서 기계를 돌렸고 강명자는 봉제 수입의 절반을 공장장에게 떼였다. 강명자가 구로에서 미싱질을 할 때 박성빈은 폐기름을 버렸고 김재순은 파쇄기 상부에 올라가 폐기물을 치웠다.

 

더 많은 김재순이 있다. 더 많은 박성빈이 있다. 더 많은 강명자가 있다.


 

각주

1) 이문영, <웅크린 말들>, 후마니타스, 2017, p112

2) 같은 책, p113

3) 같은 책,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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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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