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메모부터 일기까지 [사람]

글 입력 2020.06.0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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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예전에 썼던 글과 지금의 글이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과거에 옭매이며 살아가는 나는, 지난날의 일기를 꽤나 자주 뒤적이는 편이지만 새삼 지난 1년 전 즈음의 글들을 돌이켜 읽어보았다.


 




2019. 02. 26

모순은 강렬하다. 모순된 감정은 끈질기다. 조용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것이고 모른 체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질투가 그렇고, 욕심이 그렇다.

 

2019. 03. 14

하루라는 게 결국 어제 먹은 저녁과 내일 먹을 아침 사이 잠깐의 시간 정도 아닌가?

 

2019. 03. 22

삶이 저편에 있다. 이를테면 나는 고속도로 갓길에 서 있고 삶은 도로 건너편에 있는 것이다. 질주하는 차량을 피하기는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내디디면 돌이킬 수 없다. 어쩌면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비유하자면 집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구가 없어지고 있다.

 

2019. 03. 23 

예동이가 떠난 공예동은 여전히 많은 고양이들이 다녀가지만 예동이와 달리 허기를 채우고 목을 축이면 금방 달아난다. 한데 오늘 처음 본 아이가 나타나서 예동이의 담요 냄새를 맡고 집을 들락날락하더라.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 아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아가, 집이 마음에 드니. 너에게도 사랑을 줄게. 만져지는 건 아니지만, 온기를 쬐고 몸을 녹일 수 있을 만큼. 자주 보자.’

 

2019. 03. 25

나의 죽음을 상상했다. 죽음을 상상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만큼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살고 싶었다. 너무 간절하게 살고 싶어서 나름대로 발버둥 치며 살아왔지만, 기억이라는 족쇄에 채워진 것 같았다. 흔히들 기억은 무의지적 소재라 말하지만 내 기억은 의지적 소재처럼 느껴지곤 했다. 실체 없는 혼령들이 육체 내부의 심연 속에서 끊임없이 나의 기억을 소생 시켜 기억이 수증기처럼 새어 나오고 대기 중으로 빠져나와 나의 주변을 에워싸는 듯했다.


나는 기억의 폭정에 시달렸고 혼령들이 생존자인 나보다 더 많은 미래를 지니고 있는 듯 생각될 땐 내 존재의 결핍을 느껴 밤을 새워 울었고 나의 소멸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살고 싶었으니까. 시시각각 삶과 죽음이 뒤섞였고 그때마다 지나온 모든 과거를 존재했던 적이 없는 과거, 존재했던 과거, 거부된 과거를 망각하고 싶었다. 망각은 기억 상실이 아니라 과거의 덩어리에서 귀환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망각은 잊혀질 것과 기억될 것을 삭제하고 분류하며, 파내고 파묻는 동시에 그것들을 영원히 결합시키는 최초의 공격적 행위다.


나는 간절하게 망각하고 싶었고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레테의 강 즉 망각의 강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플라톤이 인간이 죽으면 건너게 되는 강이라고 그 강을 건너면 지상에서의 모든 기억을 망각하게 된다고 하더라. 아, 내가 건너야 할 강이구나 싶었다.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은 만큼 건너고 싶었다.

 

2019. 05. 15

삶은 항상 혼자였기에 혼자가 되는 것은 섧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실로 혼자였던 적이 있긴 했던가.

 

2019. 05. 18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내게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듣느냐 물었다. 우리는 전에도 음악에 대한 대화를 즐겼고 음악을 사랑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을 텐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매 순간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돌이켜 보니 최근에 살가죽이 갈라지고 찢어져 속살이 드러나는 일이 잦았다. 그 틈으로 붉은 핏방울이 맺히곤 했지만, 켜켜이 붙여놓은 밴드 덕에 큰 쓰라림은 없었기에 나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제 알았다. 내 안의 잡음과 내 결의 거침은 언어의 풍요가 부족했던 탓이었다.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내 사랑하던 것들을 등진 나는 쇠약해지고 있었다. 음악의 언어, 책의 언어, 영화의 언어가 그립다.

 

2019. 07. 06

사실 글을 쓰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글 따위를 쓴다고 기분이 나아졌다면, 나아질 것이라면,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더 썼을 것이다. 물론 그러했던 나날도 있었지만, 대개의 난 글을 쓰고 나면 섧었고 고독했다. 활자에 의지하게 만든 건 오로지 믿음뿐이었다. 어디로 귀결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칠흑의 굴을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손끝과 마디마디에서 피가 흐르고 곪은 손톱이 빠지고 그렇게 새살이 돋을 때까지 파고들다 보면 앤디 듀프레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게도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진 않을까, 저 너머엔 빛이, 자유가, 환희가, 구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나는 스스로를 옥죄고 상흔을 남겨가면서까지 무언가 써 내려가고자 했다.


2019. 08. 26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방학의 끝자락이다. 지난 두어 달간 무얼 했나 돌이켜 본다면 퍽 한량처럼 살았구나 싶다. 종강과 동시에 꽤 오랜 기간 해왔던 미술학원 보조강사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터키로 떠났다. 아무런 계획도 일정도 없이 떠났던 여행이었다. 학기 중엔 너무 바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계획을 세울 시간조차 내지 못했고 눈 떠 보니 공항이었다. 짐도 대충 쌌는지 안경조차 두고 와서 마감 5분 남은 공항 안경원으로 뛰쳐 가 사장님의 재촉을 받으며 급히 새로 맞춘 후 비행기에 올랐다.


발이 닿았던 모든 곳에서 아름답지 아니했던 곳이 없었고 친절하지 아니했던 사람이 없었으며 행복하지 아니했던 순간들이 없었다.


길을 잃어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곤혹스럽긴 했지만 행복했다. ATV를 타고 석양 속 선홍빛 대자연을 바라보는 것, 한 폭의 유화와 같은 항구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 에메랄드빛 지중해와 뜨거운 열기 아래서 짭짤한 바다 수영을 하는 것, 나 사는 곳엔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형태와 색감의 꽃과 풀과 나무의 냄새를 맡고 눈에 담는 것, 하루 다섯 번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사원의 기도 소리와 같은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만나는 것, 낯선 식감과 향과 재료의 음식에 도전하는 것, 순수한 호의를 베푸는 이들을 만나 나 역시 다른 여행자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7kg로 시작해 12kg가 된 배낭을 등에 이고 지고 다니는 것, 어렸을 적 만화책에서 보던 웅장한 신전들은 기대만큼이 아니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곳들에서 새로이 감동을 받는 것, 생선구이 하나에 8만 원을 지불하는 호구가 되어보는 것, 가슴 벅찬 호흡 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을 내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했고 감사했다. 


사실 떠나기 전에는 여행을 통해 거창한 무엇인가를 얻고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 같다. 너무 무거운 봄을 보내서였을까, 여행의 끝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이 있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은 끝난 지 오래이며 변한 건 아무것도 없고 얻은 건 있지만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그리 거창한 것들은 아니다. 그래도 난 여전히 그 여행을 기억하고 또 추억하면서 다음 여행을 고대하게 되었다. 난 인생을 살게 하는 기억들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때문에 살아야지, 덕분에 살아야지’ 이런 기억들은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연애도 열심히 했다 아니 하고 있는 중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났다. 난 낮보다 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낮이 긴 여름은 지독하기 짝이 없어, 여름이 오는 것을 매해 두려워했는데 너를 만난 계절이 여름이라니, 나 여름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곧 가을이 온다. 이 사람과 맞는 가을은 또 어떨지. 여름이 그러했듯 가을은 또 어떤 의미를 내 속에 욱여넣을까. 박연준 작가의 소란이란 책에 보면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사람을 일컬어 “한밤중에 펼쳐진 책”이라고 했다는데, 나도 당신도 서로의 밤에 침입해 어느 페이지부터랄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열렬히 서로 읽어나간 거겠죠.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했고 열렬했어요.’라는 구절이 있다. 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 사람을 열렬히 읽어나가 보려 한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 후 쉬지 않고 입시 미술학원 보조 강사를 해왔다. 내가 잘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좋았고 아이들을 좋아하기에 사랑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이들을 통해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감사하게도 그들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 수업 때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팔을 활짝 벌리고 안아달라고 뛰어오던 아이가 있었다. 키는 나보다 훨씬 커서 사실 내가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나를 안아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마지막 날엔 내게 편지를 주더라. 퇴근길 버스 안에서 내가 그 편지를 읽고 창피함도 잊은 채 눈물을 쏟았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오래 했다고 생각했고 다른 일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꽤 재밌다. 편의점 알바라는 일, 굉장히 의미 없고 무기력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소하게 재밌고 소소하게 행복하다.

 

과연 개강하고도 행복을 입에 담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18년도 종강 날 선배에게 받은 편지를 벽에 붙여놓고 매일 보기에, 늘 그래왔듯 가까이서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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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크게 무엇이 다르다는 생각보단 그때의 난 이런 생각을 했구나 싶다.


장소에는 시간이 멈추고 시간이 멈춘 곳에는 사람이 남고, 또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떠나 풍경만 남는다. 사진은 그것들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글 또한 마찬가지이다. 길지 않은 글조차도, 단 한 문장일지언정 시간과 사람과 풍경을 간직하게 해준다.

 

지난날의 글을 읽으면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혹은 어렴풋한 파편들만이 남은 과거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다. 비록 그날의 냄새나 온도가 선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떤 감정에 잠겨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추억하고 싶어 했는지 떠올릴 수 있다. 어쩌면 그날을 기록하던 나의 표정과 모습까지도.

 

나는 다시 오지 않을, 내일이면 그리워질 오늘을 살고 있다. 고단한 현재를 견디게 해주는 힘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닌 과거의 추억처럼 소박한 것에 있기에 오늘을 기록하고 또 기억하려고 애써 본다.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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