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진 풍경이 곧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 -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

도서,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
글 입력 2020.06.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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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과정이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 풍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며 소통해야 할지에 관한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사유의 과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 지은이의 말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

_정훈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 풍경_표지.jpg

 


[PRESS]

사진 풍경이 곧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



오늘날 사진은 문자 못지않은 언어가 되었다. 사진이 없으면 게시물 공유가 불가능한 인스타그램의 조건은 우리에게 전혀 불편하지 않으며, 가상으로 이루어진 공유 공간에 글 없이 사진만 나열된 장면은 낯설지 않다. 카카오톡이나 다이렉트 메시지에서 문자가 아닌 방금 찍은 사진이나 일명 ‘짤’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대화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 되었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또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으며 사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까지 갖춰져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읽고, 사진으로 소통하며, 사진을 통해 자기 만족감을 느끼고, 기록하고 기억하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일상의 풍경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반면 우리는 사진이라는 언어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언어는 내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는 수단이자, 상대가 발화한 내용의 의도와 목적을 서로 읽어가며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있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적지 않은 시간을 거치며 국어, 문법, 어법 등을 통해 말과 문자라는 언어에 대해  배워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언어가 된 사진으로 소통하면서 그에 대한 사유와 성찰은 충분히 일어나고 있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진을 소비하고 만드는 우리는 어떤 태도로 그 언어를 마주하고 있을까. 인스타그램 탐색 탭에 가서 잠시 볼만한 이미지를 찾는 순간의 감정과 온도를 떠올려보고, 우연히 만난 이미지를 볼 때 그것은 만든 이가 누구고 그것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그저 빠르게 보고 넘겨버렸던 짧은 순간들을 생각해보자.


이제 사진에 대해선 그것이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주요한 언어가 된 만큼 여러 질문과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성찰과 반성이 일어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이번 글에서는 사진가의 작업과 함께 일상에 자리한 사진과 그 풍경에 대해 입체적인 이해와 사유를 하고자 하는 도서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을 리뷰하려 한다. 책의 소개와 함께 필자가 도서를 통해 이해하고 사유한 내용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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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은 사진의 이미지와 그것을 재현한 오브제(프린트, 스크린, 스마트폰 등),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에 의해 매개/재매개된 일상에 관한 상(像; picture)과 그러한 상으로부터 촉발되는 지각과 사유의 이미지를 총합적으로 지시하는 말이다.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사진=일상 혹은 사진 풍경=일상 풍경이라는 관념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 보도자료 중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은 사진가들의 작업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전개된 사진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비평이자, 사진 풍경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에 관해 독자의 사유를 일으키려는 실천적 이론의 모습을 띠고 있다. 독자는 섹션마다 저자가 제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지적과 함께 사진가의 작업을 살펴보며 ‘사진 풍경'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도서는 ‘전쟁과 기억’, ‘일상의 교란’, 월경의 메타커뮤니케이션’, ‘사진은 기억에게 말을 건넨다’, ‘포스트모던 이후’라는 큰 카테고리를 둔 16편의 글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제목에 나타난 전쟁, 교란, 월경, 기억 등의 텍스트는 배타적인 사진 주제가 아닌 일상과 사진이 상호적으로 의미를 재형성하거나 그러한 작용이 펼쳐지는 핵심적인 영역으로 이해된다. 책에 명시되어 있듯이 ‘사진의 의미’는 프레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진을 둘러싼 주체 간 사이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가뿐만 아니라 사진을 마주한 이들도 의미 형성에 함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상과 사진이 상호적으로 의미를 재형성한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모든 독자는 일상을 살아가며 사진으로 소통하는 언어의 주체로서 도서의 내용과 함께 사진 풍경과 그 의미, 이면에 대해 사유하는 유의미한 존재로 위치하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사진이 얼마나 일상 자체가 되어버렸는지, 그리고 진실보다 더 믿어지는 것이 되었는지 등 사진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사회의 이면에 대해 저자의 비평과 사진가의 작업으로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실재하나 비가시적이기에, 혹은 가시적인 것에 의해 가려진 세계의 이면과 실체를 마주하고 반추할 수 있었다. 또한, 정치학과 자본주의에 뒤섞여 실제와 가상의 구분조차 사라진 사진 풍경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는 한편에서, 우리가 잊어가고 있던 것들을 사진가들의 작업을 통해 익숙하게 사진 언어를 사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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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

11. 카메라 앞에서의 퍼포먼스와 생산적인 소외의 감각


 

오늘날의 셀피는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는 점에서 자화상과 유사해 보이지만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셀피는 지인 혹은 이미지를 볼지 모르는 누군가를 염두에 둔 스마트폰 셀프 촬영을 일컫기 때문이다. (...) 셀피 주체에게는 이미지의 형상으로 타인에게 인식되기를 바라는 적극적인 노출의 욕망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셀피를 찍는 주체는 대체로 셀피를 자아의 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진으로 자신이 인식되기를 바라지만 자아의 이미지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카메라 앞에서의 퍼포먼스와 생산적인 소외의 감각" 중


 

사진 공유로 소통하는 가상공간이 자유롭게 펼쳐지고, 여러 곳에 프로필 사진을 걸어야 하는 운명이 마련된 우리에게 ‘셀피’ 혹은 '셀카’는 너무도 익숙한 사진 형태다. 사진이 언어라면 셀피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자기소개의 형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셀피는 그 어떤 사진 언어보다 자주 표현되고 이에 대한 주체들의 행위도 적극적이라 생각된다. 셀피를 위한 일종의 문화, 셀피를 위한 포토존 형태의 공간,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쉽게 보정을 가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등이 활발히 형성되어왔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은 셀피를 통해 자신이 이상적인 모습의 이미지로 타인에게 인식되기를 바라는 욕망일 것이다.


셀피는 일종의 현대 자화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욕망에 의한 것이란 내용은 자주 들어와 익숙했었지만, 셀피에 대한 책의 내용에서 필자가 놀랐던 저자의 지적은 바로 셀피를 찍는 주체가 대체로 셀피를 자아의 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생각을 필요로 하는 내용이었다. 셀피를 찍는 나는 셀피로 찍힌 나의 모습은 나의 자아의 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1.jpg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 중 “카메라 앞에서의 퍼포먼스와 생산적인 소외의 감각”은 인스타그램 셀피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전시 <카메라를 위한 퍼포먼스Performing for the Camera>(2016)에 사진을 선보인 아멜리아 울맨Amalia Ulman의 “우월함과 완벽함”이라 이름 지어진 사진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찍는 퍼포먼스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책에 소개된 아멜리아 울맨의 인스타그램 사진들은 시대에 따른 감성의 결만 다를 뿐 요즘 찍는 ‘인스타그램스러운’ 사진과 특별하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중에서 책이 주목한 사진은 바로 울맨이 거울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유난히 눈길을 끄는 이 사진은 울맨의 행위, 나아가 자신의 퍼포먼스를 응시하며 촬영하는 셀피 행위 일반에 내재한 시선의 난맥상을 드러낸다.

 

여기서 스마트폰으로 거울을 보며 사진을 찍는 행위는 울맨 스스로 자신의 외화된 시선(거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신체적 여성성을 확인하는 행위)을 응시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이 사진은 거울 상의 시선으로 자신의 신체를 확인하면서 이상적인 여체의 이미지에다가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을 중첩시키는 행위,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행위 각각이 합일된 기묘한 장면인 것이다.


- "카메라 앞에서의 퍼포먼스와 생산적인 소외의 감각" 중

 

 

거울 앞에서 셀피를 찍는 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연상하면서 생각해보면 더 쉽게 이해된다. 내 모습이 비치는 거울 앞에서 나는 스스로 이상적인 모습이라 생각되는 자세(퍼포먼스)를 취하고, 그 자세를 취한 나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다. 그리고 거울상의 시선으로 나타난 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타인도 보게 될 이미지로 고정될 사진)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에 셀피가 나의 사진을 보려고 나를 팔로우한 팔로워 혹은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곧 보일 사진이라는 셀피에 내재한 배경도 함께 놓아보자.


사진을 찍기 위해 스마트 폰으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나의 시선은 내가 찍힌 이상적인 이미지의 사진을 보려는 타인의 시선과 중첩된다. 사진 속 나 역시 거울 상에 나타난 나의 모습을 스마트 폰의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응시한 것이니 말이다. 타인의 시선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시선으로, 혹은 타인 중 한명과 같은 입장이 되어 나의 이미지를 거울 앞에서 완성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때 셀피를 찍으려는 나의 퍼포먼스는 정말 나를 기록하기 위한 것인가? 정말 스스로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를 찍으려는 것인가. 셀피가 정말 단순히 타인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타인의 시선과 욕망이 나의 시선과 욕망이 된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등 사진을 둘러싼 시선과 주체에 대한 경계와 그 존재가 너무도 불분명해진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남들에게 이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에 자신을 중첩하는 것 또한 불특정한 타자들을 통해 “이렇게 보일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하게 된 기존의 특정한 이미지에 자신을 조형해서 대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나다운, 나로서의 ‘셀피’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원인과 과정을 낱낱이 파악하기에는 셀피를 둘러싼 사진 풍경은 이미 비선형적으로, 무수한 시선과 이미지가 뒤엉킨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자화상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것으로 그 과정 동안 ‘나’라는 주체를 확인하는 것에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 주체와 의도를 온전히 판단할 수 없는 상태로 형성되는 셀피와 셀피가 전제하고 있는 타인의 무수한 시선이 만들어낸 현상을 보면 셀피가 과연 자아를 확인하는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는 동시에 앞서 본 “셀피를 통해 자신이 인식되기를 바라지만, 자아의 이미지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셀피의 이면을 들춰보면, 그곳에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표현되고자 하는 자아의 구분조차 모호해지는 것으로 연결된다.


셀피를 위해 이상적인 모습을 찾아가는 퍼포먼스를 하며 나의 모습을 촬영하던 카메라를 내리는 순간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을 가만히 마주할 때, 필터와 효과가 얹히며 연출된 사진 뒤에 존재하는 삶으로서의 일상들을 마주할 때 일어나는 퍼포먼스 후에 몰려오는 낯섦과 소외감을 알고 있다면 우리가 정말로 살아가는 삶이 어디에 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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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도처에 사진은 넘쳐나지만 그에 관한 말은 사라져간다. 일상과 사진이 구분되지 않는 현실이 도래했기에 딱히 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이 아니라 사진 풍경을 논의하는 것은 관념적으로 사진=일상이 되어 버린 현실적 상황을 비추어볼 때 자명한 행위이다. 사진의 풍경은 이제 우리의 일면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현실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 지은이의 말

 


습관처럼 손가락이 이동하는 이미지의 늪, 인스타그램에 찾아가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스크롤과 터치를 반복하며 무작위로 눈에 띄던 무수한 이미지를 읽은 후에 앱을 끄고 나면 결국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느샌가 또 습관적으로 다시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필자도 경험했던 장면에 대해 성찰하니 사진이 일상이 된 우리의 풍경은 정말 말이라는 언어만큼이나 무엇인가를 시각적으로 쉬지 않고 봐야 하는 모습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급한 과정에는 사진이라는 언어에 필요했을 사유와 논의가 자리할 수 없었다.


사진은 일상보다도 더 현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셀피처럼 이상화된 나의 모습이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자신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며, 예쁜 곳에서 찍은 보기 좋은 장면이 자신의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를 위해 남기는 것이며 이상적인 모습으로 타인에게 인식되길 바라는 욕망이라 생각해왔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결국 그 누구의 바람과 욕망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수없이 표현되고, 시작한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이 어느 순간부터 많은 개인 사이에서 돌고 돌아 그저 단편적으로 누구나 동의하는 이상화된 이미지라는 프레임만 허공에 부유하는 풍경이 우리의 일상의 사진풍경이 아니었을까. 나의 의도를 담아 사진에 표현하고, 타인의 사진 언어의 내용을 살펴보려는 창의적인 주체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필자 역시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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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사진을 보고 또 공유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실제적으로 사진에 대해 사유할 기회가 많지 않다. 오히려 너무도 쉽게 사진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변형될 수 있음이 이러한 사유의 기회를 더 가려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은 그러기에 사진이 언어가 되고 일상의 풍경이 된 이 시기에 필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글에서는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과 가장 익숙한 모습의 사진인 셀피와 그것이 공유되는 인스타그램에 대해서만 다루었지만, 책은 그 이상으로 다양한 방면의 주제와 사진가의 작업에 대해 입체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리뷰 글을 책 속 16편의 글 중 “카메라 앞에서의 퍼포먼스와 생산적인 소외의 감각”을 읽으며 필자가 사유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하게 된 이유는, 이 주제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감되고 와닿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판단과 사진 풍경에 대한 독립적인 사유의 과정을 가지고자 한다면 저자의 먼저 읽기를 권유한 글이기 때문이었다.

 

이 리뷰의 주제가 흥미로웠거나, 포스트모던 이후 일상 곳곳에 자리한 사진 풍경의 이면과 현상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면 추천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가볍게 읽는 도서보다는 독자의 성찰과 생각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필자 역시도 내용을 이해하고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내용을 반복해서 읽는 과정을 거쳤다. 그만큼 쉽게 읽히는 도서가 아니라는 의미도 되지만, 사진=일상, 일상 풍경 = 사진 풍경이라는 저자가 설명한 코드와 함께 다가간다면 글의 내용에 충분히 다가갈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풍경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고 지금처럼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으며 결국 사진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모여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자는 우리가 사진에 있어 주체적인 사유의 과정을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을 통해 가질 수 있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일 테다. 끝없이 쏟아지는 사진과 그 풍경이 일상이 된 사이에서 앞으로 우리가 존재하게 될 모습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글을 마무리하며 상상해본다.






[도서 정보]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풍경』



포스트모던 이후의 사진 풍경_입체표지.jpg

 


지은이

정훈


쪽수

228쪽


출판사

눈빛


가격

22,000원

 



 

 

오예찬_PRESS.jpg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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