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람은 익숙해지고, 후회한다.

글 입력 2020.05.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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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안 하는 편이었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은 물론이거니와 나 외부의 것들에 관심 또한 없었다. 내 시선은 온통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왜인지 2020년의 도입부에서부터 꾸준하게 후회를 곱씹고 있다. 그 후회들은 늘 그랬듯 나로부터 나를 향한 것처럼 보였다.

 

당장 어제의 나의 선택으로 멀게는 나의 탄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후회하고 있다. 그 시기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냥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글쓰기를 빙자한 나의 삽질이 시작되었다.

 

 

하나, 익숙함

 

두 발로 걷기 시작했을 때, 놀이공원에 처음 갔을 때,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사랑을 시작했을 때, 모니터에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가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을 때. 삶의 연속에서 시작은 끝이 없고 하나둘 익숙해진 후에 머지않아 익숙함이 지루함으로 변하는가 하면 다시 익숙한 보통의 일상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익숙함이라는 건 너무나도 보통의 것들이다. 무언가 일어나기 때문에 익숙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항상 거기 있던 무언가가 익숙한 것이다. 꽃과 나무, 구름이 보이는 파란 하늘, 자연스레 일상을 공유하는 이, 목이 마르면 마실 수 있는 물과 같은 것들. 그러나 익숙함은 상대적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과 아무 일 없는 하루를 간절히 기도하는 날이 오면 익숙함은 안정이자 끝이 있는 불변이며 더 발 디딜 곳 없는 절벽의 끝처럼 느껴진다.

 

 

둘, 후회에서

 

시작은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조금 달리 말하면 두 개의 선택지라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선을 그리기 위한 점을 찍고 움직이다가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이건 쉽게 말하는 '실수'다. 반복되는 실수는 실패라는 이름을 달고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후회와 두려움, 때로는 완벽과 성공을 위한 강박만 남는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형태 없이 짧게 그어진 선들이 모이고 모이면 우리는 펜을 내려놓게 된다. 더 반듯하고 더 유려한 곡선을 그리지 못해 남은 자국, 또 하나의 실패는 두려우며 후회는 못나고 짙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비단 업적 성취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 문제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시작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후회로 똘똘 뭉친 삶에 불안이 더해지면 완벽하다. 불안마저 익숙해지면 이제 우리는 펜을 쥘 수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다. 앞이 깜깜해진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우습게도 이건 내 이야기이다. 철저하게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로 점령당한 자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작이 아닌 후회가 두렵다. 사실 그것들이 진정으로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셋, 후회로

 

후회는 그것이 사람이었다면 손가락 몇 번 움직여 연락처 목록에서 바로 차단하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왜 후회를 하는 것일까. 어느 노래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면 안 되는 걸까. 사실 우리가 후회하는 건 학습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고 익숙한 것을 넘어서 더 나은 것을 향한 욕구는, 후회의 근원은 역설적이게도 후회로부터 온다. 후회는 애증을 닮았다.

 

새로운 경험이 늘어가고 우리는 배운다. 당장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작게나마 깨달음을 준다. 진부한 말이지만 경험 자체가 의미 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내게 상처받았던 것들의 자리를 채워줄 무언가를 굳이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익숙함과 후회로 점철된 자아 속 한자리에 묶여버린 내가 다시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이유.

 

이러한 후회는 온전히 나로부터 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쉴 새 없이 부딪힌 결과물이다. 선택하는 주체는 내가 분명하지만,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이건 무언가를 탓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성취 또한 크고 작은 외부적 요인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더 많이 정신을 쏟고 더 많은 것을 주었음에도 후회할 때가 있지 않은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미치지 못한 것들로 후회하는 것은 왠지 더 서글프다.

 

 

넷, 다시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오직 나를 담던 공간을 다시 조금씩 내어주기로 했다. 그것이 새로운 사람이든 도전이든, 연기처럼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일지 날카롭게 나를 스치고 가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던 것과 지금도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것 그리고 절대 굴러가지 않는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작고 단단하게 나를 뭉쳐놓은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것들과 내가 사랑하고, 사랑할 것들 그리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안에 살고 싶다. 익숙한 것들을 익숙함에 잊지 않으며 출발선에서 뒷걸음치지 않고 싶다. 그것들마저 언젠가는 후회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그 후회들로 나는 깎이고 깎여서 형체를 알 수 없이 어설프고 모난 돌멩이에서 멋진 조각이 되는 꿈을 꾼다. 쉽지 않겠지만 후회의 시간은 길었고 다시 펜을 쥘 시간이다.

 


[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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