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계절은 [문화 전반]

가장 푸르른 밤의 계절, 여름
글 입력 2020.05.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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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언제나처럼 짧은 인사만을 남기고 떠나갔다. 지나간 꽃의 향기들에 무덤덤해질 때면 찾아오는 창밖의 푸르른 나뭇잎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찬란한 여름의 문턱 앞에 서 있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와서 시간의 흐름을 인식시켜주곤 한다. 이번에도 여름이라는 계절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모를 설렘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계절과 날씨를 흔히 '절기'에 빗대서 표현하곤 한다. 한 해 동안의 기후 변화를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을 24절기로 구분하는 것이다. 4계절을 경계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을 비롯해서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 등으로 이어진다.


날씨와 시간의 변화를 체감하며 자연과 더불어 삶을 즐기던 옛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려보게끔 한다. 날이 춥고 덥고, 해가 짧고 길어지는 등의 하루의 변화를 섬세하게 바라보았던 지난 시절의 태도를 통해 우리의 계절을 새롭게 감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태양의 움직임과 계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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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周) 나라 시기에 시작된 24절기는 황허강 주변 화북 지방의 기후 특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농경사회가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계절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다. 24절기법이 음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태양의 주기 운동에 따른 양력 법에 기반한 분류 체계다.


24절기는 황도(태양이 지나가는 길)를 춘분을 기점으로 15° 간격의 점을 찍어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총 24개의 기간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하늘에서 해가 1년 동안 움직이는 길을 15도로 나눴을 때 총 24개의 구분점이 존재하게 된다. 한 달에 두 절기씩 구분되며 월초(月初)에 오는 게 절기, 월 중(月中)에 오는 게 중기에 해당한다. 양력으로 절기는 매월 4~8일, 중기는 12~23일 사이다.


전체적인 구분으로는 낮밤의 변화를 알리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가 있으며 그 중간에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 입하, 입추, 입춘이 자리하게 된다. 더불어 온도의 변화를 나타내는 5개 절기와 날씨의 변화를 알리는 7개 절기, 만물의 변화와 농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4개의 절기로 이루어진다.

 



24절기와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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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건양다경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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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죽 ©아시아경제

 


계절의 변화에 따른 24절기는 단순히 시간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농경 생활의 지표가 되었다. 각 시기에 걸맞은 전통 행사와 문화 규범이었던 세시풍속은 과거 민족들에게 중요한 생활 양식이었으며 현시대에까지 지역 정신과 문화적 소산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대가족과 공동생활이 주요 생활 방식이었던 때에는 계절의 변화를 기점으로 이웃과 함께 만나 조상을 모시고 각종 모임과 놀이를 벌이곤 했다.


봄이 되면 대문이나 대들보, 기둥, 천장 등에 붙이던 전통적인 글귀가 있다. 바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이는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외로 가을의 처서를 맞아 벌초를 하거나 일 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지에는 팥죽을 끓여먹는 등 절기를 기념하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과 다양한 형태로 접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푸르른 여름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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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

 


거리의 풀잎과 나뭇잎이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소만'(小滿)이 왔다. 소만은 24절기 중 8번째 절기로 5월 21일 무렵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여름을 알리는 시기이다. 만물이 점차 성장해 풍성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농사 시기로는 모내기가 시작되는 손길로 1년 중 가장 바빠지는 때라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무렵이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양식이 떨어져 배고픈 시기를 가리키기도 했다.


며칠 전 쏟아지는 비와 내리치는 천둥을 보며 생뚱맞은 날씨라고 여겼지만 기록상 소만 절기에는 기후변화가 심하고 장마기가 나타난다고 하니 과거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이처럼 24절기는 계절의 섬세함을 반영하는 역법의 역할을 넘어서 우리네 삶의 형태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자연을 우러르고 땅과의 정서적 교류를 잇고자 했던 선조들의 마음을 살펴보게 된다.


쌀쌀한 소만의 바람 때문에 잠시 움츠려있지만 이 순간이 곧 새로 솟아나기 위한 준비 과정인 것은 아닐까. 나날이 푸르러 가는 풀잎들의 신록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계절의 순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처럼 몸과 마음의 여유를 담아 새로운 여름을 맞이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뎌본다.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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