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쓸데없는 딴짓을 하며 잠시 쉬어갑시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도서]

메마르고 뾰족해진 당신에게 토끼가 건네는 침묵의 위로
글 입력 2020.05.2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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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림책에 관한 책이 아니다고 라문숙 작가는 말한다. 확실히 이 책은 그림책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그림책에 관한 글이기도 한, ‘그림책 에세이’다. 총 24개의 그림책을 소개하면서도, 동시에 그림책은 그저 작가의 일상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어쩐지 책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성인이 된 이후로 그림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판적인 사람이라서 정을 잘 주지 않는 편이고, 특히 어떤 글이나 작품을 접하고서 글을 쓰게 된 이후부터는 무작정 받아들이기와 같은 여유를 부리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5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들이 만원도 되지 않는 돈을 쓰면서도 어쭙잖게 ‘공주님’ 취급을 바라는 형편없는 모습들과 블로그를 오래 운영하며 “개돼지”라 거나 “병신” 같은 소리를 꽤 많이 듣다 보니 사람에 대한 신뢰가 거의 바닥나 있던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에세이 같은 것을 보면 작가가 자신의 깊은 생각을 자랑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 허영을 부리는 글이라는 생각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정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내 상식 밖을 벗어나는 부류의 인간들을 경멸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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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이라는 이 다정한 그림책 에세이를 읽고, 인간 불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나의 사고방식이 분명히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사람을 쉽게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도, 라문숙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블로그와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따라서 이 글은 왜 내가 라문숙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글이 될 것 같다.


 

 

외출에서 돌아올 때 거의 예외 없이 서점에 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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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에서 돌아올 때 거의 예외 없이 서점에 들른다. 몸이 피곤해도 시간이 없어도 서점 들르기는 웬만하면 거르지 않는데, 그것은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완벽하게 나를 이완시켜주는 시공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 좋게 마음에 쏙 드는 책이라도 구할 수 있게 된 날은 하루 치 피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듯해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서점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좀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 48


 

라문숙 작가는 책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보다는 사실 책 읽기라는 행위와 그 행위를 선사하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참 좋아한다. 하루의 피로마저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사실은 너무 부러울 정도였다.


이태원 클라쓰에서도 주인공 박새로이는 일과가 끝나면 이태원 일대를 달리기한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하는 게 습관이었고, 실제로 박새로이를 연기한 배우 박서준의 취미라고도 한다. 누군가에겐 살 빼기 위한 의무로 느껴지는 달리기가 그에게는 그저 당연한 일과 중 하나이며, 오로지 휴식이고 기쁨이 되는 행위라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그러고선 동시에 나에 대한 반성과 관찰이 뒤따라온다. 라문숙 작가에겐 책 읽기와 서점 방문, 누군가에겐 달리기, 누군가에겐 운동과 같은 일이 나에겐 과연 존재할까. 나를 해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강박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얻는 일. 라문숙 작가는 쓸데없는 것이지만, 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던 그런 시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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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라는 거, 타인이 갖고 있어서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 것을 따라 도전해봤을 때 오히려 버거운 짐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의 삶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나도 그들이 가진 생산성있고, 자기발전적인, 유튜브를 도전한다면 분명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취미가 부럽기는 하지만,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때에 서점에 들르곤 했던 기억 하나와, 내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강박적으로 뛰쳐나갔던 기억 둘,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그것은 내 하루의 일상이라기보다는 번외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언니가, 공부만 하는 나에게 취미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었다. 할 게 없어지면 그냥 자연스럽게 다음 자격증 준비를 하던 게 내 삶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에게 적당한 취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게 없어서, 유독 힘든 날은 일과가 끝나면 배가 부른줄도 모르고 빵을 그렇게도 먹으면서 내 공허한 속을 채우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 비슷한 일상 속 그저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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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비슷한 때에 일어나 비슷한 날들을 보내며 살고 있다. 마치 이렇게 살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어제 한 일을 오늘 또 하면서도 지겨워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특별한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그런 날들이 모여 괜찮은 한 달이 되고 기억하고 싶은 한 해가 된다.

 

<가끔은 토끼가 내 곁에 와 주었으면>, p. 9

 


라문숙 작가의 글귀를 읽다 보면, 그 삶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일상도 돌아보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SNS를 하는 이유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사진과 글을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SNS의 기능과 타인의 일기장과 에세이를 엿보는 것은 목적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정말 비슷한 행위 아닐까?

 

 

 

행복 회로 무한정 가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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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문숙 작가의 글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이 부분에서다. 그는 광고판에 이끌려 화장품 가게를 들어갔지만, 광고판 속 붉은 립스틱은 구매하지 못하고 그냥 립글로스만 구매한다. 집에 와서도 그 립글로스를 열어서 보지도 않는다. 그렇게 종일 머뭇거린다. 어떤 세제를 골라야 할지, 어떤 식빵을 고르는 게 좋을지, 선택지를 마주할 때마다 머뭇거린다.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고서라도, 잘못된 선택의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것을 선택한다. 한편으로는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아서 구매해둔 것이 쓸모없는 잡동사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집에 가기 싫을 때, 늘 편의점이나 마트에 들렀던 것이 떠올랐다. 어떤 공간이든 돈을 내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하루에 5천 원이나 하는 카페에 가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마트에 가면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집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나를 볼 수 있는 거울이 있었던 가장 적당한 곳이 마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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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필요 없는 물건들과 음식을 사 들고 오는 길에는 유난히 그 짐이 무거웠다. 그러나 그걸 하루걸러 하루 반복했고, 일반인이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내 뱃속에 집어넣었고, 빨리 먹지 못한 음식은 냉동실에 쌓여갔다. 내 마음 속 불만의 근원이 외로움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서 몇 개월을 반복하고 난 뒤에, 냉동실 청소를 했더니 음식물 쓰레기 봉지 10리터 4봉지를 썼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제일 큰 거로 달라고 하자, 편의점 주인 아저씨는 나를 혼냈다. 부모님이 보내준 걸 다 버리는 줄 아셨나 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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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엄청난 쓰레기를 버리면서 몇 개월간 쌓아온 허무함과 고단함을 버릴 수 있었다. 사실 그 부정적인 감정들은 편의점에 들르지 않고, 그냥 바로 집으로 들어와서 따뜻한 물로 씻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기를 쓰면 단번에 사라질 수도 있었던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견딜 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했던 감정이라 마주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아져서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위로해 줄 존재는 오직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굳이 바깥에서 내가 아닌 것들에서 위로를 찾기 위해 하는 행위다.



누군가 나의 이런 주저와 변덕에 관해 묻거나 설명을 요구하면 나는 그만 얼음장처럼 굳어버리고 만다. 소심하고 숨기 좋아하지만 잊혀지기를 원하는 건 아니고, 도드라지는 건 부담스러우나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 역시 피하고 싶은 첫 번째가 될 능력은 없지만 두번째는 싫은 사람

 

<가끔은 토끼가 내 곁에 와 주었으면>, p. 65



나는 자신과 자신의 방식에 대한 확신이 있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확신은 차치하고서라도 물건이나 스타일에서도 취향이라고 부를만한 것조차 갖고 있지 못한 건 아닐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함. 나도 모르게 내면화한 비겁한 적당함.

 

<가끔은 토끼가 내 곁에 와 주었으면>, p. 67



라문숙 작가가 선택할 때 앞서 고민을 수차례 하는 것은 아마 주부로 살면서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가정을 꾸리게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가족이 좋아하는 것, 가족에게 더 좋을 것으로 선택의 기준이 바뀌게 되니까 말이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자신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을 삶에서 우선순위로 여기는 것 자체가, 아이를 길러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상상조차 하지 못할 희생이며, 정말 가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딴짓을 하는 이유


 


“살림 아닌 일에 끝없이 욕심을 부리느라, 해야 할 일에 하고 싶은 일들을 끼워 넣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작가와 내 회피 성향이 참 닮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나도 정말 하루가 바쁜데도, 나중에 더 바빠질 것을 알면서도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신청하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못하고, 운동복을 챙겨서 운동을 간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사이사이에 끊임없이 딴짓했다. (…) 살림과 살림 아닌 딴짓이 무리 없이 섞일 수 있었기에 살아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 삶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는지. 중간중간 그런 딴짓들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는 걸 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나도 공부만 하다 보면 내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자꾸만 내 삶을 위한다는 거라며, 딴짓하는 걸까. 다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싶어서, 그래도 어떤 행위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눈을 감고 휴식시간을 가지는 대신 가졌던 쉬는 시간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엄마는 세 자매를 기르면서, 다섯 식구를 위한 살림을 혼자 책임지면서 어떻게 3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왔을까 궁금해졌다. 우리가 아무리 친구같은 존재였다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선머슴 같은 딸이어서 동생을 마트 카트 위에 태우고 100미터가 넘는 주차장을 질주하곤 했고, 엄마 바라기여서 고 3을 졸업할 때까지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었고, 마중을 왔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민폐였던 행동들을 그때는 너무 당연하게 해왔고, 엄마의 삶 일부분일 뿐인 내가 엄마의 삶 전부가 되고 싶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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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다 키워내고 대학까지 전부 보낸 엄마는 작년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요리학원에 가서 몇 달 요리를 배우고, 호텔에 취업해서 일하다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잠시 쉬고 있다.

 

통영은 관광지라 국가에서 휴직 비용 70%를 대준다고 하는데, 용역 업체에서는 정당한 월급을 지급하지 않는다. 휴직이라고 하지만, 말만 휴직이라 한 달에 열흘을 출근하고 겨우 23만 원만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한 달에 20일을 일한다고 치면 46만 원인 셈이고, 실제로 받아야 하는 월급의 25%에 해당한다.

 

심지어 5월부터는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나오라고 해서, 국가에서 주는 휴직비용만을 받은 채 무급으로 일을 다니고 있다. 우리 세 자매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신고하자고 해도 엄마는 집에서 놀면 뭐하겠냐고, 계속 일을 하겠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회 활동이기 때문에 정당한 월급을 받지 못해도 이어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한번 일을 시작했기에 느끼는 책임감 때문인지, 유독 우리 엄마만이 아니라 기숙사 청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많은 아주머니가 같은 상황을 겪던 것을 봤던지라 안타깝고 속상했다. 어디 말할 데 없어서 더욱 억울한 그런 일을 대체 언제까지 겪어야 할까.

 


 

나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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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도 모든 것을 빨고 싶다.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림책 속 엄마처럼 소매를 둘둘 말아 걷어붙이고 빨래 광주리 속에 구질구질한 일상을 쓸어 담아 깨끗하게 빨고 싶다.

 

<가끔은 토끼가 내 곁에 와 주었으면>, p. 95


 

작가는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를 언급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 그림책 속에는 강아지와 고양이, 두 자식까지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놓은 그림이 있어서 정말 너무 웃겼다. 한편으로는 아이들과 동물을 빨래집게로 널어놓으면 아프지 않을까, 하는 동심 파괴적인 생각을 하는 내 모습도 있었지만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작년 12월 중순에 견디기 힘들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아직 글로 써본 적 없고, 정말 가까운 사람을 제외한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자취방을 대청소했다. 정말 집을 뒤집어엎었다. 일주일 내내 집을 어떻게 치울지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사람이 극도로 죄책감과 상실감에 불안하고 힘들어지면, 오히려 그 일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 그 당시 내가 하던 일은 울거나, 집을 치우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집을 치우다가 잠시 움직임을 쉬게 되는 순간에는 울음이 복받쳐 나와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머리가 너무 아플 때까지 울었고,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이 주일 정도 지나고, 못 쓰는 가방과 옷들을 헌 옷 수거함에 난생처음 버려봤고, 고향에 보내야 할 물건들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버리질 못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집을 비워버린다고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내 곁을 떠난 것은 집이 깨끗해진다고 하더라도 돌아오지 않았고, 내 속에 응어리는 해결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자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박적인 행동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라문숙 작가는 얼굴이 다 지워지도록 빨아져서, 납작하게 말랐다가 새로 그린 얼굴과 순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만약 자신을 빨래하는 선택지에 게임 캐릭터의 환생과 같은 기능이 있다면, 나도 그 기능을 사용하게 될까.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이득 없는 일,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매 순간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또 그게 상처를 회복하는 데 아무 쓸데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만 같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면서도, 정말로 가슴에 와 닿게 읽는 구절이 많아서 읽는 이들에게 실례를 무릅쓰고라도 글을 길게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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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처음 자기만의 방을 가졌을 때의 글이다. 정말 처음 방을 가졌을 때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 감탄하면서 읽었다. 나만의 방을 가지면 엄마 몰래, 가족 몰래 하고 싶은 것들을 실컷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지만, 막상 혼자가 되면 “혼자라는 사실이 뭔가를 약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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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떠나고 싶었던 통영에서 떠나, 오롯이 혼자가 되었지만 나는 서울에 처음 와서 혼자 돌아다녔던 그 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방황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어서, 그 후로 몇 년간 지속하였던 ‘목적지 없는 길 찾기’였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경사진 캠퍼스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헤매던 그 날 밤 이후로 핸드폰에 중독되어, 나를 사랑해줄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찾기 위해 애썼던 지난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자유를 잃어가면서 지내왔던 시간이 길면 길수록, 혼자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애써 마련한 공간과 그 안에서의 시간을 형체도 없는 무언가와의 싸움으로 보내 버리는 게 억울했다.”



글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30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건가 궁금해진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때 그 심리를 지금의 언어로 분석하는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게 아니라면 그 시절부터 자신의 삶을 깊이 있고 풍부한 생각으로 채워온 작가가 너무 부러워서 샘이 날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어떻게 살지 잘 몰랐고,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을 때, 그러니까 정해진 무엇도 없어서 뭐든 가능하다고 여겼을 때, 그중 어떤 것이라도 원하기만 하면 다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을 때, 나를 둘러싼 모호함의 세계를 견딜 수 없어 버릇처럼 빨리 서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빨리 늙어서 어서어서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가끔은 토끼가 내 곁에 와 주었으면>, p. 95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정말 하나도 버릴 게 없다고 생각했던 문장이다. 어린 시절의 무모함과 대담함을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요즘은 애써 힘들이지 않고도 머리로 들어오는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는 것이 번거롭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문장을 접할 때면 다른 작품과는 달리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문장들을 받아쓰기에 내 손은 너무 느려서 답답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면서 썼다. 중간중간 글쓰기를 멈추고 뜨개질을 하거나 영화를 봤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것이 어려웠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남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로 글쓰기를 마친 밤이면 잠이 안 왔다. 뒤척이는 새벽에 설핏 든 잠 속에서 나는 내 그림책들을 따라 지난 시간을 여행했다. 어린아이였던 나부터 최근의 나까지 뒤죽박죽인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그림책이었다. 여러 개의 평행우주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소나기 같던 쓰기가 일단락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내가 쓴 글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앓아눕고 말았다.”

 

<가끔은 토끼가 내 곁에 와 주었으면>, p.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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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좋아하던 작가는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쓰기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정말 순식간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가 읽은 글과 삶이 합쳐져 이렇게 영감을 주는 하나의 글이 되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기도 하다. 읽는 사람도 이렇게 감동을 하는데, 직접 쓴 사람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사실 이 책의 제목으로 정한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의 일화에서 자신을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그저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자신이 잠꼬대를 심하게 하지 않지 않을까? 라고 하는 부분은 남 탓을 잘하는 사람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을 읽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비슷한 일들을 잘 떠올리고, 의미 부여 자체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누군가는 또 의미부여하느라 감정 낭비하고 시간 낭비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어차피 자신의 삶 아닌가. 별것 아닌 일에도 의미 부여를 해서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니, 그 일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메마르고 계산적이고 객관적인 삶을 알아서 잘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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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림책에 관한 책은 아니다. 그저 생각 많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라문숙 작가의 에세이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집에만 있으니 별로 소재거리가 없겠거니 생각했던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고 반성하게끔 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것도 아주 깊은 내면까지 건드려서 읽는 사람의 도피와 회피와 추억과 기억까지도 되살아나게 한다.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인데,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앞에도 말했지만, 한동안 과제를 하며 옆에 넷플릭스를 켜두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만 했는데, 다시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고, 거기서 더 나아가 내 내면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글로 써보고 싶다는 욕구를 깨워낸 책이었다. 비록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라문숙 작가의 블로그를 종종 방문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왜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


지은이 : 라문숙

출판사 : 혜다

분야
에세이
 
규격
130*188 / 올 컬러

쪽 수 : 276쪽

발행일
2020년 03월 10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67194-5-6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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