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헬로, 미스터 써리얼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글 입력 2020.05.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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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빛과 그림들이 온 사방을 채워온다. 그 순간은 제법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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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세상을 떠난 화가의 작품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전시는 늘 그렇듯 회고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태어난 순간부터, 화가가 의도한 생각과 철학.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사건, 그리고 돈독한 관계를 가졌던 친우들이 나란히 화가의 옆에 서 있다. 이번에 있었던 인사동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에 ‘특별’이 붙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감쌌던 빔프로젝트의 향연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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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이름을 걸고 전시관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차근차근 연대를 밟아간다. 인터넷이나 책에서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대표작을 보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지금을 살고 있듯이, 연도별 나이별로 변화무쌍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화가의 삶에서 탄생한 명작들이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는 한 발짝 뒤에서 유명인의 인생을 훔쳐보고있다. 짜릿하고 은밀한 경험이다.

 

들어서자마자 전시는 원화가 아닌 프린팅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 실제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영상과 다큐멘터리가 작품의 너머에 있는 마그리트의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미술학교에 입학해 파릇파릇한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지나면 초기초현실주의 화풍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마그리트가 마그리트로서 정체화할 수 있었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마침내 나의 길을 찾았다’라는 말이 몹시 감동적이었다. 전시에서 해당 발언의 주체가 되는 작품 <길잃은기수>는 화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키리코의 <사랑의노래> 옆에 나란히 걸렸다.


스스로가 창조한 것에 충분히 만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마그리트는 자신했고, 확신했으며, 그것을 당당히 드러낸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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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그리트가 독점하고 있다 해도 무방할 초현실주의의 상징들이 한두개가 아닐테지만(파이프, 중절모, 새, 사과, 하늘...) 그중에서도 견고하고 독보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유명 영화 <매트릭스>의 주제이자 더 거슬러 올라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비틀어 생각한 것이며 현대에 와서는 본질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문장이다. 일상 사이에 존재하는 비일상과 비현실속에서 끌고온 극사실이 무료함에 절여진 뇌에게 어김없이 신선한 자극을 던져준다.


마그리트의 일대기를 감상하다 슬슬 묘비명을 읽을 차례일까 싶을 때 우리는 다른 것을 마주한다. ‘르네 마그리트 일대기’를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으로 만들은 것. 2020년 현재가 관람객에게 선사하는 공간을 가득 채운 초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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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연작을 구현한 공간을 지나, 커튼을 젖히고 들어간 곳에서 내가 처음 본 것은 밤하늘을 날아가는 새 한마리의 속이 푸른 하늘을 담고 있는 작품 <회귀>이다.


그림은 벽과 천장을 아울러 사방 가득 펼쳐진다. 영상은 웅장한 음악과 함께 자연스레 변화한다. 캔버스 속 프린팅 그림이 아닌, 내 키를 훌쩍 넘는 화면의 초현실 작품들은 화가가 겪은 삶의 흐름과 비슷하다.


암흑기에서, 파리로, 그리고 햇빛 아래로. 이 순간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평일 오후 두 시, 집을 나오는 시간 날씨는 화창했고 햇살이 따사로웠다. 한적한 인사동 거리를 뒷골목을 지나 전시를 보는 내내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그리트의 세계가 온 몸을 둘러싼 그 방에서도 그랬다. 소수의 인원들이 드문드문 거리를 두고 그 곳이 제자리인 양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 가운데 서서 마그리트가 보여주고자 한 시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머리 위와 발 밑을 뱅뱅도는 그림들 속에 있자니 기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차원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몇 안되는 관람객들은 서로 거리를 방해하지 않았고, 넋을 놓고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 빠져들기 좋은 시간이었다. 구름이 가리운 눈동자와 위아래가 바뀐 숲을 한참 서성이다 발걸음을 옮겼다. 나올 즈음엔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과, 르누아르 화풍의 꽃다발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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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방을 지나면 재밌는 체험 전시 작품들이 나온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 속에 직접 등장해 볼 수 있는 거울 장치, 방을 가득 채운 거대한 사과, 작품 <신뢰> 속 중절모를 쓴 신사가 되어 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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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형 전시라는 게 어찌보면 유치하거나 가벼워보일 수 있다. 깊이보다는 유희를, 감상보다는 사진을 남긴다. 이번 전시 역시 마그리트라는 화가에게 큰애정을 가지고 있거나 학구적인 의도로 방문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귀를 열어보면 클래식이 들린다. 또한 유명 고전 영화 <엑소시스트> 포스터의 모티브가 된 <빛의 제국>, 청명한 오후의 하늘 아래 가로등으로는 어둠이 가시지 않는 주택 한 채가 있다.


이 기묘한 세계 한가운데에서 피아노 소리와 함께 침침한 가로등이 깜박거린다면. 이 역시 마그리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한 현실의 이면을 보는 스산하고 기이한 경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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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관객이 생각하기를 원했다. 어떤 학문적 지식이나 해석 없이도 그림을 보자마자 누구나 기묘한 이질감을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 게 그의 작품 철학이었다. 그래서인지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는 달리나 에른스트보다 더 많이 재현되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매체들의 모티브가 된다.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적은 인파 속에서 내가 보았던 것처럼 하나의 공간을 전부 향유하는 마그리트의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그리트가 작품이 투영하고 있는 일상의 불협화음, 낯섦, 비틀림과 균형을 온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를. 전시장을 나오면서 나는 깊고 오랜 꿈 속에 빠져 있다 나온 기분이 들었다.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비처럼 내려오는 풍경 속에 혼자 서 있던 꿈.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 Inside Magritte -


일자 : 2020.04.29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휴관일 없음

장소
인사센트럴뮤지엄

티켓가격
성인(만19~64세) :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 13,000원
어린이(만7~12세) : 11,000원
미취학아동, 만65세 이상 : 6,000원

주최
크로스미디어
지엔씨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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