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안적 이상향을 찾아서 -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시각예술]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미술관에서 만나다
글 입력 2020.05.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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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이상향을 찾아서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공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극도로 단순화해 보면 ‘모두의 행복이 가능한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더없이 관념적인 단어이다. 행복은 흔히 ‘기쁨’, ‘만족’ 등의 단어로 설명되나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 ‘행복’의 실제성은 그리 명백하지 않다. 그래서 행복의 길로 향하는 방법 역시 한 가지의 길로 선명히 지시될 수 없다. 그렇다면 행복이 아닌 ‘모두’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 보자. '모두'에 집중하는 사회는 곧 중심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이상적 공간의 필요성은 미술계에서도 늘 대두되어 왔다. 이러한 장소는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으로 9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류 미술계의 권위와 미술관과 갤러리의 엄격한 제도권 바깥에서 젊고 실험적이며 비상업적인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해 왔다. 물론 대안공간의 첫 등장 이후 십여 년이 지나면서 기존의 주변부적 특징은 옅어지고 어느 정도의 위상을 확립하며 주류 미술계에 편입되었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으나, 대안공간의 성격을 가진 장소들은 신생공간, 독립공간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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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이 선보이는 예술을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 현재 대림미술관은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展에서 10곳의 대안 및 독립공간(그리고 이번 전시에는 시청각, 통의동 보안여관, D/P, 합정지구, OF, 탈영역 유정국, 공간:일리, 스페이스 원, 취미가, 화이트노이즈)과 다섯 명의 작가(메리엠 베나니, 올리비아 에르랭어, 세실 B. 에반스, 이강승, 마틴 심스)와 함께 새로운 유토피아적 장소를 상상한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는 서울의 대안 및 독립공간의 역사와 헤테로토피아(현실화된 유토피아)에 대한 고찰에 집중한다. 전시 서문에 따르면 본 전시는 은유적인 “다른 공간”이 무엇일지에 대한 정의를 제안한다. 이때의 다른 공간은 인간이 다른 인간 및 주변 환경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하면서 기존 공간과 다르고, 바람직하며, 포괄적인 미래를 구축하는 장소이다.  각 대안 및 독립공간들은 각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지난 전시 중 일부를 미술관에서 구현한다. 전시는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며 각 기관들은 전시실의 반 정도씩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통의동 보안여관과 탈영역우정국, 취미가의 프로젝트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통의동 보안여관, 탈영역우정국, 취미가

 

먼저 통의동 보안여관은 한국 근대문학의 창작거점이었던 보안여관을 동시대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으로 2007년에 개관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통의동 보안여관이 구현한 전시는 <사이키델릭네이처>로, 그중에서도 류성실과 최하늘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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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의 <대왕트래블 칭첸 투어>은 가상의 나라 칭첸의 패키지 투어를 안내하는 영상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현지인 투어 가이드인 '나타샤'로 분해 어르신들의 효도 관광 상품을 소개하고, 그 터무니없고 조잡한 세계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화면을 점령한 출처 모를 이미지들과 눈이 아프도록 현란한 광고 문구, 어설픈 미신과 신화로 가득한 칭첸 투어는 어이 없는 헛웃음을 자아낸다. 진짜처럼 보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가짜 이미지들은 더없이 사기적이지만 오히려 동시대의 현주소를 비밀스럽게 혹은 노골적으로 폭로한다. 가상의 세계 속에 도사린 허구적인 유혹들과 성 산업,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거짓된 미디어와 상품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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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늘의  두 개의 노란 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다만 하나는 전시실에 직접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조각을 촬영한 사진 속에 존재한다. 작가는 두 조각 중 실재하는 조각은 Clean 버전, 사진 속 조각은 Drag 버전이라고 지칭한다. Drag 버전에는 Clean 버전의 조각 위로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오브제가 장식되어 있다.

이는 Drag, 말 그대로 드래그 퀸의 외형을 빌려온 것으로, 작가는 사물을 인간에 비유하며 "비인간적 조각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그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새로운 미래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조각을 의미하는 sculpture의 첫 글자 S를 straight로 받아들이며 이를 Queer의 Q로 대체해 새로운 단어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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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탈영역우정국은 구 창전동 우체국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 탈영역우정국이 선보일 전시는 재작년 12월에 개최된 장우혁의 개인전 <달나라 부동산>이다. 이 전시는 달의 토지가 실제로 매매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달나라의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인류가 달나라에 첫 발짝을 내딛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달나라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내 생이 끝나기 전까지 한 번이라도 그곳에서 살 수 있을지는 묘연하다. 그럼에도 그곳의 토지를 매입한다는 것은, 지구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달나라에서는 가능할지 모른다는 불안정한 희망 하나 때문이다. 그저 문서로만 존재하며 물리적 실체로는 유효하지 못한 달나라 땅의 소유권은 물질과 희망, 부와 행복의 가치를 해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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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에이커의 달>은 10등분으로 잘린 땅문서를 각각 표구되어 전시한 작품이다. 달나라부동산은 달의 토지 1에이커를 10등분해 관람객에게 재판매하였고, 낙찰자들에게 10등분으로 자른 땅문서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낙찰자들은 그 땅을 되팔 수 있다.  전시실 한 켠에는 그 땅을 신규 옥션 매물로 등록할 것인지, 그렇다면 시작가는 얼마로 책정할 것인지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지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청사진>은 달의 1에이커의 토지 위에 조성된 아파트 단지 모형이다. 흔히 모델하우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의 이 모형은 실제 달에서의 생활에 대해 감각적으로 상상하게 해 준다. 또한 <땅 구경>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간 개 '라이카'의 안내를 받아 달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는 VR 체험이다. 이 영상에서는 1/10에이커의 달을 실제로 확인하고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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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대기>는 일상의 모습을 달의 사진과 합성해 행복한 시절과 달 풍경을 함께 제시한다. 이 장면은 순수한 동화와도 같은 달나라에서의 행복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다른 작품들과 결합되면서 우리가 달나라에서 꿈꾸는 희망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그리고 <리얼 에스테이트>는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속 "I have a dream that all men will one day have a real estate."라는 유명한 문장을 차용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오래 전부터 추구되어 왔던 가치, 즉 자유와 평등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문장 속 'real' 'estate'는 '진짜' '자신'이라는 의미이지만 real estate는 부동산이라는 단어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들어 마틴 루터 킹이 외쳤던 '자유와 평등'을 '부동산'으로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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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취미가는 2016년에 개관한 '미술을 소개하는 장소'이다. 취미가에서 선보이는 <취미관>은 유리 진열장 속에 전시된 작은 작품들로 이루어진다. 취미가는 예술의 가치를 사물의 가치로 대체시킨다면 어떻게 될지 질문을 던진다. 진열장을 채우고 있는 작품들은 곽이브, 권오상, 노상호, 이은새, 정금형, 김주원 등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유리 진열장에 빼곡히 진열되어 미술관의 좌대 위에서는 불가능했던 고민들, 이를테면 가격의 타당성과 구매 가능성 등을 숙고하게 한다. 예술 작품의 상품적 가치는 흔히 불순한 것으로 오인되지만, 어떤 작품이 지닌 예술적 가치가 과연 그 가격과 부합하는지를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색다른 방식으로 작품의 가치를 탐구하게 해 줄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

 

이번 전시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미리암 벤 살라에 의해 기획되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대림미술관이 지녔던 기존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특징들이 눈에 띈다. 대림미술관은 본래 패션, 디자인, 사진 등의 장르에 집중하는 미술관이며 '예술의 일상화'를 추구하며 순수예술은 다루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 된 대안공간은 흔히 주류미술계 바깥의 주변부에서 실험적인 시도와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만약 순수예술을 대림미술관의 비전인 ‘예술의 일상화’와 대비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번 전시의 내용들은 일상 속 예술보다는 순수예술에 더 가깝다.

 

이 점에서 이번 전시의 주 관객층은 미술계에 몸담은 전문인력이나 전공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전시 홍보에서 주가 된 문구는 ‘서울의 단 하나뿐인 구찌 플레이스,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구찌(Gucci)의 국내 최초 문화 예술 프로젝트’였다. 물론 구찌의 명성은 마케팅에 있어 더없이 매력적인 무기이다. 그러나 이 전시가 구찌와 연관성이 있는 브랜드 전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실망한 관람객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또한 리플렛의 순서가 전시 동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정보량이 많은 전시였으므로 장수가 60페이지가 넘는 리플렛이 제공되었는데, 그때마다 리플렛을 뒤적거리는 것이 다소 번거로웠다. 분량이 많은 만큼 쪽수를 넣고 차례를 추가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익숙한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 가고 당연한 것은 당당해진다. 당당해진 당연한 것들은 이외의 목소리를 묵살시킨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침몰한 사회는 행복한 사회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에게 당연하지 않은 목소리들과 마주하는 것은 불편하고 께름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 그것에 발언권을 주는 것은 우리가 그리는 '이상향'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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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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