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가씨'를 향한 나의 2번째 발걸음 [영화]

글 입력 2020.05.0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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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며칠 전 영화 아가씨를 두 번째로 관람했다. 몇 년 전 처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논란이 된 야한 장면이 있다는 사실만 들었을 뿐 이런 줄거리라고는 반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했을 뿐 반전은 어쩌면 당연한 요소였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영화니까.


처음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세히 신경 썼다는 열정이 드러나는 연출과 감각적인 색감들이었고 솔직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변태의 뇌 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그만큼 내게는 반전을 거듭해 다가오는 그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의 관람으로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어려운 감이 없지 않은 것 같아 다시 볼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영화를 같이 봤던 친구도 그 후에 두-세 번 더 봤다는 이야기를 해주어 이번 기회에 다시 모니터로 눈을 고정시켰다. 그렇게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보게 된 두 번째 관람은 <아가씨>라는  작품의 더욱 많은 부분들을 내게 담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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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조진웅)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김민희). 그녀에게 백작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가 찾아온다. 매일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외로운 아가씨는 순박해 보이는 하녀에게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녀의 정체는 유명한 여도둑의 딸로,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 고아 소녀 숙희(김태리).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아가씨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하녀가 된 것. 드디어 백작이 등장하고, 백작과 숙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매혹적인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3부작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이야기의 시작과 숙희의 관점, 2장은 히데코의 관점, 3장은 해석과 결말.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형식이 마치 긴 소설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3부에 걸친 2시간 24분이라는 꾀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두 번째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화면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없었고 지루함을 느낄 틈조차 가지지 못했다.


또한 영화는 박찬욱 감독, 그 다운 미장센으로 가득했다. 잔잔하게 톤 다운되어 있으면서도 감각적인 색채와 아름다운 구도,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건물의 독특한 양식이나 가구들, 시선을 사로잡는 고풍스러운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 그 모든 것들은 감독이 카메라로 담아내는 그 어떤 것도 평범하게 두지 않겠다는 듯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흔적들이었다.


듣기로는 주 배경이 되는 건물이 영화에 나온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고 기본적인 배경에 기술을 더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 건물이 영화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나오다 보니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히려 더 실망하게 되기도 했다. 후에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었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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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뗄 수 없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요소로는 연출 외 영화 속 인물들의 특징들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우선 주인공 네 명 모두는 욕망과 결핍으로 잔뜩 물들어있다.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는 조선인임에도 완전한 일본인이 되고자 고군분투하며 백작(하정우)은 가격을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주문할만한 품위를 갖춘 그 재력을 갈망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채우고자, 콤플렉스를 가리고자 여성들을 착취한다. 코우즈키는 히데코가 호흡까지도 완벽하게 낭독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집착을 보여주었으며 백작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히데코의 지위를 이용하고 숙희를 속인다.

 

그러나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의 욕망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둘은 자유를 갈망한다. 공통된 것을 원하기 때문이었을까. 처음에는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는 관계였지만 그들은 끝내 서로를 알아보고 미친 듯이 이끌리게 된다. 자신들을 속박하고 이용하려는 남성들의 시선이 끈덕지게 따라붙음에도 그 사이에서 피어난 둘의 애정은 상당히 애틋하고 자유롭다. 서로를 탐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조심스러운 손길이 배어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토록 논란이 되던 둘의 애정신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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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습게도 여성들을 착취하고자 했던 남성들은 오히려 욕망과 본능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고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던 여성들은 힘을 모아 자신들이 원하던 것들을 당당히 가져간다.

 


 

감성과 본능에 치우쳐 일을 그르친 남성들



코우즈키는 서재 입구에 둔 가짜 뱀을 ‘무지의 경계선’이라고 부르며 그 선 안에 있는 자신을 이성적인 지식인이라고 언급하지만 서서히 밝혀지는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 그의 욕망으로 점철된 책과 기구들은 무지의 경계선을 경계하라던 그의 모습을 망가뜨린다. 게다가 마지막에 히데코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욕심을 부리다 되려 백작에게 당해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백작은 자신이 성공했음을 자신한 채 순간의 욕망에 취해 히데코를 탐하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발등을 찍게 되고 그녀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기회를 선물해버리게 된다. 그가 없었다면 숙희와 히데코도 자유를 얻기는 힘들었으리라 생각되니 오히려 그는 두 여성을 위한 큐피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성적인 자세로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여성들



하지만 숙희와 히데코는 달랐다. 철저히 남성화된 곳에서, 내쳐진 존재로, 소외된 존재로, 핍박받는 존재로 지내왔고 그 처지에 놓여있었지만 그녀들은 그 위기를 되려 기회로 삼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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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코는 저택에서만 길러져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로 모두에게 인식되어 있지만 그 누구보다 판단이 빠르다. 그녀는 손님 한 명, 한 명을 똑바로 쳐다보고 새로운 손님이 누구인지 즉시 알아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주체적으로 행동해 파헤쳐 버린다. 심지어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와의 타협을 통해 자신이 원하던 기회와 물건을 손에 쥐기까지 한다.


숙희는 히데코를 속이는 일에 큰 대가를 부르며 자신의 이익을 확실히 챙기고자 했지만 그런 이익이 눈앞에 놓여있음에도 이를 포기하고선 모든 것을 히데코에게 털어놓는데 이 부분은 남성들의 모습과 상당히 대비적이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지 않았고 그로 인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기회를 얻었으며 철저한 계획을 시행해 히데코와 자유를 모두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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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는 여러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가득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부분은 히데코가 숙희를 코우즈키의 서재로 데려가 모든 것들을 토로하던 부분부터다. 히데코가 코우즈키의 강요 아래 성적인 책들을 낭독해왔다는 사실을 숙희가 알게 되는 장면. 분노를 참지 못한 숙희는 코우즈키가 아껴온 책과 작품들을 찢고 칼로 긁고 물감으로 망가뜨린다.


이때 히데코가 숙희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 표정과 눈빛 속에는 애처롭기 그지없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과 현재부터 제게 일어날 해방과 자유가 가득 담겨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코우즈기에 의해 가해진 폭력 때문에 그를 무서워하며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히데코는 자신의 인생 대부분이 담겨있는 그곳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그 행위가 자신이 사랑하는 숙희에 의한 것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후에 둘은 짐을 챙겨 길고 긴 억압의 장소로부터 새 삶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런 숙희와 히데코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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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작은 담조차 넘지 못하는 히데코이지만 그녀 곁엔 사랑하는 숙희가 있었다. 숙희가 그녀를 위해 발판으로 놓아준 짐을 밟으며 드디어 히데코는 담을 넘어간다. 그렇게 서로를 도우며 그녀들은 자유를 향해 한층 더 나아간다.


퀴어를 소재로 하고 있고 워낙 논란이 컸던 애정신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즈라는 시선보다는 두 '사람' 사이의 애틋한 사랑으로 숙희와 히데코를 바라보면 영화에 더 빠져들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영화 <아가씨>는 한 번 보기엔 아까운 영화다. 다시 보면 또 새로운 장면과 감정이 물밀 듯이 스며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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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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