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고백] #01. 실패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다

더 이상 실패가 부끄럽지 않도록
글 입력 2020.05.0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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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비서로 취직을 했으나 얼마 못 가 해고를 당했다. A씨는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해외로 나가 결혼을 했다. 하지만 13개월 만에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A씨는 10만 원 조금 넘는 정부 생활 보조금을 받으며 어린 딸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결국 A씨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난방비가 없어 한겨울에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추위와 허기를 견뎌낸 A씨는 힘겹게 완성한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다.


 

A씨의 이야기를 읽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A씨의 이야기는 안타까우면서도 이와 동시에 ‘별 볼 일 없는’ 실패담처럼 읽힌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단 한 줄을 추가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연이은 실패에 지쳐갈 때 즈음 한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아 출간된 A씨의 책 <해리포터 시리즈>는 300조 원의 수익을 내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한 줄로 ‘A씨의 별 볼 일 없는 실패담’은 ‘베스트셀러 조앤 롤링의 성공 신화’로 탈바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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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혼자 있을 때 ‘별 볼 일 없는’ 존재일지라도 성공과 함께 있는 실패는 다르다. ‘안타까운 A씨의 이야기’가 조앤 롤링의 성공 이야기 속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주는 서사적 요소가 되듯, 우리는 평범한 전교 꼴등 B씨의 이야기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수능 만점자 B씨의 전교 꼴등 시절’에는 열광한다. 실패는 성공 신화 속 ‘위기 역할’을 담당하며 성공을 보다 빛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성공의 길로 향할 수 있다고 하는 이 명언은 역설적이게도 실패를 더더욱 구석지고 어두운 곳으로 밀어 넣는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의미보다 실패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에 주목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이다.


후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다면, ‘성공의 어머니’인 실패는 성공이 태어났을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며, 성공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한 우리 인생 속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은 그 가치를 상실한다.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열정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더라도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우리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에 우리는 이 무가치하고 부끄러운 존재를 가장 구석지고 아무도 찾을 수 없을 만한 비밀장소에 꼭꼭 숨겨놓는다. 그 존재가 너무 커서 도저히 숨길 수 없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만든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거짓말이 들통날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어떤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그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을 때, 시험을 쳤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거나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라는 말로 결과를 포장한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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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실패를 극도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현상의 원인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명언에서조차도 ‘성공’에 집착하게끔 하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 한 번의 실패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그 한 번의 실패가 불러올 낙인 효과와 부정적 파장에 대한 두려움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두려움에 갇힌 사람들은 작은 실패 하나하나를 숨기는 데에 급급하여 그 실패들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지 깨닫지 못하게 된다.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배우고 한 단계 앞으로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중시하는 평가 방식을 개선하는 제도적인 변화뿐 아니라 실패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실패는 ‘당연한’ 대상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며, 두려워하고 숨긴다고 해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1년 안팎의 ‘실패’를 경험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경험한다. 실패는 ‘시도’, 또는 ‘시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실패를 부끄럽고, 두려우며,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삶의 과정 속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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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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