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러분에게 동물의 숲이 있었다면 내겐 마비노기가 있었다 [게임]

글 입력 2020.05.0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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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바, 손님이라곤 한 명 밖에 없는 그곳에서 개는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나비보벳따우, 나비보벳따우.’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뿐이지만 가볍게 통통 튀는 기타 소리와 함께 그 노랫말들을 가만히 듣고 이따 보면 마음은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든다. 역시 아무리 개라고 할지라도 단 한 사람을 위해 노래해 준다는 건 감동적이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닌텐도에서 출시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라는 게임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현재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와중에도 잔잔한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슈퍼 데이터’에 따르면 3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500만 개 이상이 팔렸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동물의 숲>은 도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사실 이 게임에 대해 알아보면 그 열풍이 의아하긴 하다. 몬스터와의 치열한 전투도, 스토리가 감동적인 것도, 환상적인 모험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락실 게임만의 캐주얼과 정겨움도 이 게임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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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동물의 숲>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만들고 어느 이름 모를 섬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집을 짓고, 새로운 주민들을 만나 함께 마을을 가꿔가며 성장한다. 그러다 새로운 친구를 찾아 다른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평화롭다 못해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런 게임에 벌써 수천만명이 매료되었다. 현실과 동일한 시간이 흐르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잔잔한 감동에 젖는다. 아마도 그들은 이 가상의 섬에서 쌓은 추억들을 ‘나비보벳따우’의 멜로디와 함께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도 이런 <동물의 숲> 같은 게임이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설레는 피아노 선율로 우리의 심금을 탁하고 건드리는. 오늘 여러분에게 <동물의 숲>이 있었다면, 그때 나에겐 <마비노기>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한 번은 학교에 닌텐도 게임기가 대대적으로 유행했었다. 쉬는 시간이면 게임기를 가진 친구의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 들었고 서로 한 번씩 해보겠다며 분위기는 왁자지껄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유행에서 한발 비껴 있었다. 게임을 싫어했던 건 아니다. 다만 우리 부모님은 내게 닌텐도를 사주지 않으셨고, 나 역시 부모님을 졸라 게임기를 사달라고 말할 성격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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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그 시절 내가 빠져 있던 게임은 바로 ‘마비노기’였다. 2004년, 데브캣 스튜디오에서 넥슨과 합작하여 출시한 <마비노기>는 당시엔 정액 결제를 통해서만 즐길 수 있었던 유료 게임이었다. 덕분에 나처럼 돈이 없는 어린 학생들은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로 겨우 아이디를 만들어 하루에 딱 2시간만 즐길 수 있었다(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이 게임만큼은 하는 걸 허락했던 걸까. 그 이상은 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이러한 마비노기도 게임산업 전반에 부는 부분유료화의 바람을 견디지는 못했다. 결국 2008년 부분유료화를 선언했고, 덕분에 나 역시 이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친척 형과 누나의 소개로 시작했던 <마비노기>는 우리에겐 생소한 아일랜드의 캘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NPC인 루 라바다, 모리안, 누아다, 레반 등은 실제로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나 영웅들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거기에다가 돌이 된 여신, 빛의 기사, 정령, 마족, 음유시인 등 다양한 판타지적 요소도 함께 등장한다. 여기까지 보면 하고많은 양산형 RPG 게임들 중 하나처럼 보이겠다. 하지만 <마비노기>에는 여타 RPG 게임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특별함 덕분에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등과 더불어16년을 버텨온 넥슨의 장수 게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보통 RPG 게임 장르라고 떠오르는 일련의 이미지들이 있다. 난폭한 몬스터와의 스릴 넘치는 전투, 장비를 강화하고 스킬을 통해 강력하게 성장해가는 나의 캐릭터,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신비로운 모험까지. 이를 통해 유저는 게임 속 세계관에 몰입하고 성장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마비노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기를 택한다. <마비노기>가 원하는 건 ‘판타지 라이프’다. 유저가 몰입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이 세계를 체험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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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에서는 플레이어를 ‘밀레시안’이라고 부른다. ‘다른 세계에서 온 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세계란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를 말한다. 컴퓨터를 켜고 <마비노기>에 접속하는 우리의 모습을 밀레시안이라는 설정을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밀레시안이 된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상의 일부가 되어 모험을 떠난다.

 

이외에도 현실과 게임 속 세상을 유사하게 만드는 다양한 장치가 있다. 현실처럼 각각의 요일이 존재하며, 캐릭터를 생성한 요일이 되면 마스코트 NPC인 ‘나오’가 나타나 생일을 축하해 준다. 너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찌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지거나 허기를 느껴 제대로 움직이질 못한다. 키도 크고 나이도 먹는다. 다양한 서브 콘텐츠도 만들었다.


전투와 모험 이외에도 작곡, 연주, 농사, 낚시, 제련, 제작, 요리, 디자인, 애완동물 돌보기 등등. 심지어 모닥불을 피워 처음 보는 사람과 캠프파이어를 할 수도 있고, NPC들로부터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다(요 아르바이트에 대해선 할 말이 정말 많다. 오죽하면 아르바이트로 ‘메이킹 마스터리’라는 스킬을 2랭크까지 찍었게…….). 다른RPG 게임처럼 클래스나 직업 같은 시스템이 없어서 캐릭터를 키우는 것도 훨씬 자유롭다(물론 재능이란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이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환생’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는 캐릭터의 외양을 다시 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레벨과 나이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사라진 레벨은 누적 레벨이란 개념으로 저장된다). 이러한 설정들 덕분에 <마비노기> 안에는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유저로서도 RPG 게임 특유의 레벨업, 캐릭터 육성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모여 <마비노기>만의 특별한 게임성, ‘판타지 라이프’를 만들어낸다.

 

물론 오늘날 마비노기의 인기가 예전만 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지나친 과금 유도와 미숙한 운영은 걸핏하면 도마 위에 오르고, 조작감이나 액션 역시 요즘에 나오는 RPG 게임들과 비교하면 시대에 뒤처져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유저들이 이곳을 잊지 못하고 다시 연어처럼 돌아온다. 나 역시도 올해 초 이 게임을 다시 시작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만큼 오래된 게임이고, 적지 않은 추억을 이 게임과 쌓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면, 이 게임이 현실에서는 얻지 못하는 위로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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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목표는 흔히 두 가지로 나뉜다. 더 좋은 장비와 무기로 강력해지는 것. 강력한 몬스터를 때려잡아 레벨을 올리는 것. 안타깝게도 게임 속 이러한 모습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좋은 성적, 학교, 직장, 연봉을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타인과 당연하듯 경쟁한다. 이만하면 만족해야지 싶다가도 맹렬하게 쫓아오는 다른 이들을 보면 다시 부리나케 스스로를 다그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 내가 정말 원하는 목표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공허한 성장.’ ‘성장을 위한 성장.’

 

그런 우리에게 <동물의 숲>과 <마비노기>는 다정하게 손을 붙잡고 말을 건넨다. “원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아. 성장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인생의 즐거움이 꼭 그런 데에 있는 것만은 아니잖아?”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멋진 옷을 만들어 패션쇼를 해보는 것도, 사랑스러운 애완동물과 산책을 하는 것도, 모닥불 앞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심지어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것도 모두 인생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더 좋은 무기와 장비가 없더라도 지금 당신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바람직하게 이 게임을,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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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키틱, 들렀다 가자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서, 작곡가가 되는 꿈을 꾸며 노래를 쓰고 피아노를 치던 시절을 생각한다. 극심한 기계치였던 나는 시퀀싱과 미디를 도무지 적응할 줄 몰랐고, 차선책으로 마비노기 속에서 내가 만든 음악들을 키보드로 찍어보곤 했었다. 어설프고 초라한 실력이었지만 행복했던 기억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을 어디에 두고 나와 우리는 골방에서 남들을 따라 꿈을 가지고, 본래 내 것이 아닌 꿈들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걸까.

 

항상 그때에 머물 것 같았던 우리는 어느새 자라버렸고,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조금씩 닳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게 오늘날 우리가 <동물의 숲>에 열광하고, 10년도 더 된 <마비노기>로 다시 돌아오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게임을 통해서라도 문득 꺼내보며 변하지 않을 그때로 잠깐이나마 들렀다 가기를 우리는 소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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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lily
    • 저에게도 추억속의 잊지못할 인생게임입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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