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롱이의 바다 [사람]

글 입력 2020.04.26 01:50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76b1bb3b8db268f04c5fdcc31953aad5.jpg

 

 

미용실을 운영하는 외숙모댁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이름은 ‘초롱이’였다.


걸어서 십 분 거리 그곳을 달려가는 이유는 엄마를 봄과 동시에 초롱이를 보기 위함이었다. 미용실로 뛰어가는 날엔 문턱에 닿기도 전에 “왕왕”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왔어?”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먼저 나를 반기는 건 언제나 초롱이였다.

 

초롱이는 똘똘했다. 사람을 좋아했고, 침착한 면이 있어 보고 있으면 든든했다. 초롱이는 말썽 한 번 피우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짧고 하얀 털을 만지면 몸을 낮춘 채 내게 머리를 맡겼다.

 

그런 초롱이를 안아 들고 동네를 몇 바퀴 돌곤 했다. 그땐 강아지가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발로 걸으며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란 사실을 몰랐다. 그저 미용실 머리약냄새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내게 안긴 초롱이는 내려 달란 투정 한번 없이 조용히 바람을 느끼는 듯 보였다.

 

어린 마음에 초롱이가 좋은지 엄마에게 자주 묻곤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에게 초롱이가 사랑받길 바랐다. 초롱이는 그럴 자격 있었다. 그 마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가엽다”고 답했다. 예쁘다 만지며 가엽다 말하는 엄마의 마음을 그때도 지금도 알지 못한다. 앉은 무릎 위로 뛰어오르는 초롱이를 안으며 혼잣말하듯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알아듣고 초롱이가 상처받진 않을지 걱정했다. 그러나 꼬리를 흔들어 우리를 웃게 해주는 건 언제나 초롱이 쪽이었고, 지금도 지그시 감았다 뜨는 까만 눈동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눈을 봐도 나는 초롱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3696595160_BRl2ozOd_eyeem-90856157[1].jpg

 

 

가끔 생각한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는 존재에 대해서. 그 마음을 헤아리면 떠오르는 건 언제나 인간보다는 동물이었다. 나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달려왔을 마음과 외워놓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길 기다렸을 작은 몸을 생각한다. 나로서는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큰마음으로 그렇게 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그에 비해 나는 사랑을 담담히 대면하는 법을 몰랐다. 사랑이 진정 맞는지, 사랑받고픈 마음을 사랑한다 표현하고 있진 않은지, 사랑이란 말이 돌아오지 않아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상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진실을 숨겨 버렸다.

 

사실은 알고 있는데도.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고, 상처 입을까 두려워 쉬이 사랑하지 못했단 것도. 사랑한다 말할 땐 매 순간이 불안했고, 내가 내뱉는 사랑엔 한계가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느낄 때 초롱이가 떠오른다. 그 작은 몸으로 쥐고 있었을 큰마음을 생각한다. 나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진심을 담은, 작은 숨을 몰아쉬던 하얀 강아지를 떠올린다. 까만 눈동자를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던 이유는 내가 모르는 무게의 사랑을 초롱이가 하고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동그란 검은 눈동자를 기억하면 밤바다가 떠오른다. 두 눈에 담긴 초롱이의 넓은 마음이 떠오른다. 그건 결코 닿지 못할 깊고 넓은 바다 같았다. 내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사랑을 담고 있는.

 


[김소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이정화
    • 내가 글자를 읽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 1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