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홈 카페 - 여유 결핍증에 대한 여유 보충제

글 입력 2020.04.25 11: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산림욕을 가 본 적도 없을뿐더러 당연하게도 즐기는 사람 또한 아니다. 산림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을 꼽자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실용적인 것들을 차치하고 잠시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기며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추스를 수 있음이다.

 



여유 결핍증



대한민국 국민에게 성실함과 빨리 빨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다. 주변을 둘러보면 24시간 영업하는 업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살아간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이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이건 간에 모두가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음은 같다. 하루하루를 이렇듯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기계라도 휴식 없이 무리하게 가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고장 난다. 과열되지 않도록 가끔은 가동을 멈춰 식혀줘야 하고 마모나 고장은 없는지 점검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인간에게 이러한 과정은 여유를 갖는 시간으로 치환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으나 이 사회에서 여유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대단한 사치를 부리는 것 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죄악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아직 대학생인지라 주변의 친구들도 진학 대신 취업을 택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학생이었고 이들이 여유를 위해 지불하는 시간적 기회비용은 휴학이었다. 휴학이라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은 그럴 시간에 빨리 졸업해서 취업할 생각이나 하라는 일말의 도움조차 되지 않는 잔소리였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대학생들이 휴학을 택하는 이유는 보통 학교 생활에 지쳐 쉴 시간이 필요하거나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자산을 모으기 위해 투자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나마 반작용이 부드러운 편이나 전자일 경우에는 그 반작용이 무척 거센 편이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과 버너로 불을 붙이는 것은 그 위력의 차이가 명백하다. 필요한 연료, 시간, 기계에 가해지는 부담 또한 상이함은 말할 것도 없다. 잔소리라는 반작용은 라이터, 성냥, 버너 가릴 것 없이 전부 그저 같은 화력을 내기만을 바라고 있음에 대한 증명 과정에 불과하다.


 

angel-sinigersky-THdmJFIBEI8-unsplash.jpg
Photo by Angel Sinigersky on Unsplash

 


비타민이 부족하면 인간의 신체는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밤눈이 어두워지기도 하고, 복부가 팽창하기도 하고,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기도 한다. 비타민 결핍증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신경질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양보 조차 손해라 받아들여 양보를 하기보다 받기만을 바라게 되고, 그렇게 사회가 점차 피폐해지고 삭막해져 간다.


여유 결핍증이다. 비타민이 부족할 때는 비타민 보충제로 해소가 가능하나 여유가 부족할 때는 이를 보충해줄 만한 것이 여유 그 자체밖에 없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필요한 것이 부족해 이를 채우고자 하는 행동을 사치로 여기는 이 사회에서는 몰아붙이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사치로 받아들여지는 기분이다.

 



커피 한 잔의 산림욕



내가 사는 지역은 도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나 시골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그런 애매모호한 곳이다. 시골과 도시가 무질서하게 섞여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아무렇게나 얽혀있는 곳이다. 대도시처럼 숨이 막힐 정도로 하루하루가 치열하지는 않더라도 일상에 치여 나가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가끔 산책이라도 하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시골처럼 자연에 파묻혀 온전히 그 신선함을 즐기기에는 마땅치 않다. 애초에 나는 자연과 그리 친근한 사이가 아녔기에 자연 속이라고 해도 산림욕을 즐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커피를 꽤 좋아한다. 처음에는 어렸을 때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 한 잔을 들고 돌아다니는 어른들이 그렇게나 멋있어 보여서 나도 저렇게 다녀봐야지라는 생각에 커피에 관심을 가졌었다. 대학생 초반에는 하루하루 졸음을 떨쳐내기 위해 살고자 싸고 양 많은 아메리카노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로 살았다. 그러다 알바를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소위 좋은 커피라는 것들을 몇 번 접하게 되면서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 그렇게 이제는 집에 여러 커피 기구를 갖추어 놓고 홈카페까지 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manki-kim-aHXGRIooMi0-unsplash.jpg
Photo by Manki Kim on Unsplash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가끔 올리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주변의 친한 지인들은 커피를 왜 그렇게 피곤하게 마시냐고들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관리나 크기 등 여러모로 방에 두고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핸드드립 기구만을 마련해뒀다. 그라인더도 전동이 아닌 핸드밀이었다.


설명하자면 커피 원두를 일일이 손으로 갈아서 드리퍼에 담아 드립 포트로 물을 부어가며 커피를 우려낸다는 뜻이다. 설명만 보자면 번거롭고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게 번거로우며 귀찮다. 나에게는 그 과정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는 여유일 뿐이다. 나와는 달리 빠르고 간결하게 일이 흘러가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면 머신이 더 낫다.


핸드밀에 원두를 계량해서 담은 뒤 손잡이를 잡고 돌릴 때 부들거리는 손과 힘이 들어가 저려오는 어깨 근육이 가져오는 스트레스와 원두가 갈리면서 내는 드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프래그런스는 그 특유의 향으로 내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드립 포트에서 떨어지는 가는 물줄기가 내는 도르르륵 소리와 방 안으로 퍼져나가는 커피 향에 지금까지 쌓인 모든 피로가 날아간다. 그렇게 내린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듣거나 책을 보며 아주 잠시의 티타임 속에서 다시 찾아올 바쁜 일상을 살아갈 힘을 비축한다.


비타민 보충제 한 알이 비타민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치료약이듯 여유가 부족한 나에게는 이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지불하는 시간과 내 방 한 편의 이 자그마한 카페가 치료약이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노력과 이 노력을 이어가려는 성실함은 결코 죄악이 아니다. 그렇기에 보다 더 나아가기 위한 여유도 죄악이 아니다. 여유를 부리다 놓치는 것이 있듯이 서두르다 놓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여유와 서두름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존재이기에 어느 한쪽의 태양이나 그림자도 없다면 균형이 무너지고 그 반작용은 결국 우리를 잡아먹는다.



[김상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