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기적절했다. - 보이스 그리고 리스트

글 입력 2023.12.2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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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크리스마스 시즌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보이스 그리고 리스트’라는 공연을 관람하게 됐다. 슈베르트의 원곡과 리스트의 편곡을 비교하며 향유할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이었다. 소프라노 김민정과 피아니스트 정혜은이 출연했고,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렸다.


인춘아트홀은 예술의전당의 다른 홀에 비해 규모가 작았고 지하에 있었다. 아담한 홀인만큼 무대와 가까웠다. 좌석 간의 거리는 여유로운 편이라 답답하지 않았다. 다만 맨 뒤 좌석은 단이 없어서 앞에 앉은 사람에 의해 무대 일부분 또는 출연자가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시야에 방해되는 부분이 있으니, 평소에 비해 집중도가 떨어져서 아쉬웠다. 그래도 소규모 홀이라 출연자의 목소리나 연주가 가깝게 들려서 클래식 공연이 아니라 친목 모임에 온 것 같았다.

 

클래식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아늑하고 친근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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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1부 물, 2부 사랑, 3부 이별 테마와 어울리는 가곡과 피아노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공연에서 연주한 피아노곡은 리스트가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고 편곡한 곡들이었다. 원곡과 편곡의 차이점을 찾아보면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이 공연만의 특장점이다. 그러나 관객은 그 특장점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원곡과 편곡의 차이점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서다. 이를 고려하여 모든 관객이 곡의 차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애쓴 흔적들이 있었다.


첫 번째 흔적은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먼저 들려준 다음 가곡을 노래하는 구성이었다. 피아노 선율과 목소리를 한 번에 들으면 클래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구별하기 어렵다. ‘따로 또 같이’ 구성은 모든 관객이 원곡과 편곡의 차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두 번째 흔적은 해설에 있었다. 슈베르트와 리스트는 외모, 작곡 방식, 곡 스타일, 매력, 팬덤, 삶까지 모두 달랐다. 스토리 형식으로 두 작곡가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림으로 곡 스타일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공감할 만한 비유도 하며 관객이 알기 쉽게 설명해 줬다. 쉽고 세심한 해설 덕분에 곡부터 두 작곡가의 차이점까지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흔적은 족집게 해설이었다.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상상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무언가를 봤다 또는 들었다’로 끝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을 접하더라도 크게 와 닿지 않는 점이 쉽거나 자극적인 쪽으로 관심이 치우치게 만들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음악은 전시회처럼 도슨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했던 건지 해설은 직접 짚어주며 설명했다. 송어가 헤엄치는 모습, 물레 짓는 모습, 사랑을 느끼는 모습이 어느 부분에서 떠올릴 수 있는지 짚어준 후, 피아니스트 정혜은의 연주를 들려줬다.

 

다른 클래식 공연에서도 족집게 해설을 한다면, 더 많은 관객이 곡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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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을 맡은 사람은 출연자인 소프라노 김민정이었다. 사실 바로 전날, 지휘자가 직접 해설해 주는 공연을 관람했다. 그때도 신선했는데, 이 공연을 볼 때도 여전히 새로웠다. 나는 출연자가 직접 해설을 해주니 다른 사회자가 설명했을 때보다 내용이 더 잘 와닿았다. 출연자가 해설하는 만큼 공연 곡을 향한 남다른 애정도 함께 전해져서 좋았다.


소프라노 김민정의 해설에서는 클래식 자체에 대한 애정까지 느껴졌으며, 대중과 클래식이 친해지길 바라는 간절함이 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어떻게 하면 관객이 클래식을 쉽게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을지 끝없는 고민을 하며 공연을 직접 기획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 고민을 바탕으로 남다른 애정과 간절함이 담긴 공연을 보여주길 바라며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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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의 공연 실력은 매우 대단했다.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데도 소프라노 김민정의 목소리로 홀 안을 가득 메웠다. 1부 마지막 곡에서는 그녀의 짧은 연기까지 볼 수 있었는데,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성악 실력부터 연기력까지 고루 갖춘 예술인이었다.


피아니스트 정혜은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기 어려워한다고 알려진 리스트의 곡들을 매끄럽고 완벽하게 소화했다. 한 곡도 아니고 몇 곡씩이나 연주하는데도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음도 흔들림 없이 정확했으며, 리스트의 매력을 똑같이 재현하면서도 그녀만의 색으로 덧칠하여 풍부한 연주를 보여줬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은 1부에서의 ‘송어’와 3부에서의 ‘싫어하는 색’이었다. 송어는 라이브로 직접 들은 건 처음이었는데, 피아노곡과 가곡 모두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가 듣기 좋았다. 정말 송어가 파닥거리며 헤엄치는 모습이 떠올랐고, 첫걸음을 내딛기 전 설레어하는 순수한 소녀의 얼굴이 그려졌다.


이 공연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송어는 교과서에서 보고, 유년 시절 음악 시간에만 들었던 곡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시로 듣던 곡이었다. 세탁기 사진과 함께 익숙한 멜로디를 듣는 순간, 세탁기 알림음이 송어였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어떤 상황이든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누구나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게 ‘송어’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싫어하는 색을 들을 때는 사랑하는 이를 정리하는 슬프고 쓸쓸한 마음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이별한 것처럼 가슴이 미어졌다. 얼마나 사랑했기에, 떠날 때는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초록색이 싫어하는 색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며 숨죽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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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앵콜곡인 캐럴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홀에서 나오면 출연자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있었는데, 공연이 끝난 후까지 관객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보이스 그리고 리스트’는 슈베르트와 리스트 그리고 출연자와 관객의 따스한 만남을 성사해준 공연이었다. 또한 클래식을 향한 남다른 애정, 대중에게 클래식이 친숙한 존재이길 바라는 간절함이 돋보였던 공연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들이 크리스마스 시즌과 잘 어울려서 제목에 ‘시기적절했다’라고 적었다. 나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라는 힘으로 관객 모두에게 잘 전달되었길 바라며, 이 글로 인해 더 많은 사람에게도 퍼져나갔으면 한다.


부족한 글로 그런 바람을 품는 게 욕심이겠지만, 크리스마스니까 이런 욕심쯤은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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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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