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움'의 수식어 없이,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저 《김지은입니다》
글 입력 2020.04.2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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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물결은 끊이지 않았고 거대한 폭로는 다시 이뤄졌다. 가해자의 연령, 직종, 계층 상관없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적 아래 모인 수많은 익명에 의해 범죄는 공모됐다. 모두가 주목하는 화두가 되었으나 나날이 불길처럼 번져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진척이 더디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피해자 책임론부터 사회가 배양한 범죄를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하는 기득권적 시각, 여기에 마이크를 대는 언론과 기대만큼 적극적인 변화를 취하지 않는 정계의 모습은 그동안 셀 수 없이 느꼈던 무기력감이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될 정도로 체계적으로 여성을 좌절시키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의제에 관하여 적지 않은 정당이 나름의 선거 공약을 내세웠고 관련 조사와 처벌이 더디게라도 진행되고 있다. 변화는 분명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진보 진영의 스피커를 자처하는 한 남성 정치 논객은 이번에도 특정 정당인을 성범죄 가해자로 몰아가는 ‘공작’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2년 전 미투 운동이 촉발되었을 때와 똑같은 발화로 지금도 보호받고 있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남성 중심 정치의 부품으로 기능하는 ‘선거 공학적 요소’로밖에 보지 않는 그의 시선은 2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 가설이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유효한 가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의 ‘진보’에, 분명히 누군가는 누락된다.


진보를 표방하며 퇴보를 거듭하는 어떤 이들과 달리 고단하고 치열한 발걸음으로 끝내 진보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보호받지 못했고, 입을 열 수 없었고, 누락되었으나,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어떤 말도 공론화할 수 있는 커다란 스피커를 가진 채 진보로 기록되는 자들의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그 어떤 목소리보다 처절하고 단단히 외쳐졌던 ‘Me too’와 ‘With you’의 목소리가 그러했다. 2년이 지났으나 결코 단절되지 않은 강인한 물줄기는 아직도 흘러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다. 그중 하나의 줄기로 흘렀던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가로지르고 온몸으로 부딪쳤던 물살을 기록했다. 온전히 자신의 이름, 우리 모두의 이름을 그 어떤 수식언에도 종속되지 않는 그 자체로 읽어냄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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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성폭력 사건 고발 이후 554일의 여정을 기록한 이 책이 소중한 이유는 피해자의 일상 모든 부분을 뜯어내 피해자다움의 여부를 따지고 정조를 왜 지키지 않았냐는 물음이 재판에서 오갔던, 철저히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입각한 폭력적 시선이 아득히 중첩됐던 해당 사건을 오직 저자인 김지은의 시선과 언어를 통해 기록한 아카이브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던 목소리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활자로 새겨 박은 지난한 기억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김지은’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뚫고 틔워낸 용기의 싹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안희정 선거캠프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부터 안희정의 성폭력 가해가 시작되고 지속된 순간, ‘미투’ 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자리에서 또다시 성폭력이 일어났던 순간, 저자가 미투를 결심하고 뉴스에 출연하여 피해 사실을 고발한 순간, 안희정이 기소되어 무죄 선고를 거쳐 2심과 3심에서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순간, 그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언론과 안희정 측 인사들, 여론의 공격과 저자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순간들을 모두 기록한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자세하고 생생하게 서술된 기록들은 수많은 음해와 공격에 몇 번이고 넘어져야 했던 흔적이기에 결과를 알면서도 승리에 대한 무조건적 확신과 긍정을 가진 채 마음 편히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상처를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승리는 시작된다. 사건의 진행 단계마다 자신의 시선을 잃지 않고 임했던 저자의 기록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연대가 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책은 1장에서 저자가 안희정의 성폭력을 고발한 과정을 다루고 2장과 3장을 할애하여 노동자 김지은과 피해자 김지은의 목소리와 사회가 그들에게 요구했던 노동자/피해자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한 다음, 고발 이후 저자가 세상과 단절되어 겪어야 했던 고통의 흔적을 4장에서 기술한다. 5장에서는 일상의 회복을 위한 저자의 노력을, 마지막 6장에서는 ‘위드유’라는 타이틀로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연대들을 기록하며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미투 이후 피해자의 일상과 용기들의 연결을 가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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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저자 김지은의 시선으로 쓰인 이 기록물은 고발 이후에도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거나 제대로 팩트체크되지 않았던 정보를 빠짐없이 기입한다. 이를테면 가해자의 부인까지 나서서 주도했던, 그리고 언론이 삽시간에 퍼뜨렸던 ‘꽃뱀론’이 성폭력 사실에 대한 판별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그 자체가 여성혐오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애초부터 위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발언을 자제해야 했던 저자에겐 해명의 기회가 없었고, 언론은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권력자가 발언한 폭력적 담론의 거대한 스피커를 자처했다. 김지은 씨를 ‘피해자답지’ 않은 ‘이상한 여자’로 만들기 위한 가해자 측의 공격은 그렇게 유효하게 작동했다.


또한, 위력이 존재하나 행사되지 않았다며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당시 법원의 1심 결정에는 위력의 존재 자체가 곧 행사라는 당연한 사실이 간과되어 있었으나, 이는 유효한 판단으로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2심 판결만을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법원의 모순된 판결을 옹호하며 이는 합의된 관계이고 김지은은 피해자가 아니라는 왜곡된 추측이 공론장에서 어김없이 발언되었다. 2심과 3심에서 판결은 뒤집혔으나 위력에 의한 성범죄에 대해 법원이 드러내던 몰이해는 정조를 왜 지키지 않았냐는 발화와 더불어 한국의 사법 체계의 성 인지 감수성이 여실히 결여되어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자다움’의 프레임 속에서 강요된 침묵과 공백에는 가해자의 권력이 침투하고 개입하여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기록되었다. 성폭력에서 작용했던 위력은 가해자 중심적 논리를 투과하여 피해자가 느꼈던 ‘존재’와 관련 없이 가해자의 ‘행사’ 여부에 의해 그 유무가 정의되었다. 또한 실력보다 평판을 중요시하는 정치계에서 ‘전지적 상사’로 군림하며 공과 사의 구분 없이 기분을 맞춰주는 것을 업무의 핵심으로 규명했던 가해자의 ‘무형화된 권력’과, 차기 대통령 만들기라는 단일한 목표를 추진하는 데 반동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저항도 허락하지 않았던 캠프 내의 분위기 역시 성폭력 시 작용했던 위력에 대한 당시의 논의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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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과된 진실이 너무 많았다. 약자인 피해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권력을 가진 가해자의 주장만을 신뢰했던 당시 여론의 모순을 확연히 느낀다. 침묵은 우연이 아닌 강요였고 그것은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권력자와 그를 비호하는 제도에 힘입어 촘촘히 피해자를 찔렀다. 사건을 담당한 부장판사는 안희정과의 간접적 연고를 이유로 재판을 거절했고, 현직 국회의원의 보좌진과 경선 캠프의 담당자들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일삼다가 송치되었다.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은 쉽게 마련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은 오로지 피해자가 감수해야 했다. 김지은 씨는 해고되었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생계를 이어가며 판결의 끝을 기다려야 했다.

 


내 눈앞에 더 이상 안희정의 범죄는 없다. 폐쇄된 조직 안에서 느꼈던 무기력과 공포에서도 벗어났다. 다만 부여잡고 지키려던 작은 나의 일상도 무참히 사라졌다.



판결은 승리로 끝났고 이는 하나의 성취로 기록되었으나 저자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미투 고발 후 업무 시간을 초과하여 근면히 일에 임하고자 한 그의 노동은 가해자를 좋아했기 때문으로 설명되었고,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고자 대학원을 간 것은 충분히 거절을 할 수 있는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않은 것이라는 가해자 측의 논리에 종속되었다. 김지은 씨의 삶은 ‘피해자다움’, 혹은 ‘피해자답지 않음’의 이분법으로 평면화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저자는 밝은 옷을 입었던 일상과도 분리되어야 했다고 한다. 피해자답지 않다는 여론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인과 그 주변인들의 비윤리적 공격을 견뎌야 했던 저자에게 이제 공권력도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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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 적힌 고통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연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김지은 씨의 고발 이후 연대의 손은 끊임없이 서로를 붙잡았다. ‘보통의 김지은’들이 모여 만든 지은이연대, 탄원서를 제출한 저자의 동료들,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증인들, 저자를 도왔던 일상회복 프로젝트, 안희정 성폭력 피해자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등의 찬란한 연결이 있었다. 또한 저자는 본인이 직접 성폭력 상담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연대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했다. 또한, 용기 있게 이 책을 펴냄으로써 또 하나의 연대를 시도했다. 권력형 성범죄는 해결되지 않았고 미투는 계속되고 있지만 2년 전 시작된 외침이 불러온 성취를 결코 작게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촉발된 용기와 연대의 불씨는 지금도 꺼지지 않은 채 기억을 바람 삼아 더욱 크게 타오르고 있다.


재판이라는 단일한 사건만을 역점에 두었을 때, 안희정의 유죄 판결로 끝나는 이 사건은 승리의 엔딩으로 맺어진다. 그러나 이 책은 재판에서의 승리로 이야기를 끝맺기보다,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김지은’들과 그들에게 건네어진 ‘With you’라는 한 마디의 제목으로 마지막 장을 시작한다. 텍스트로 느껴질 정도로 거듭된 고통과 폭력의 상흔이 생생히 아로새겨진 이 책의 엔딩으로 기억하고 싶은 제목이다. 여성에게 언제나 가해지는 위력과 그로 인한 성범죄의 위험을 함께 느끼며 체기를 느끼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책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With you’의 흔적에 잠시라도 편한 숨을 내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침표를 찍으며 일상으로의 완벽한 회귀가 시작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부디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이 책의 선언적 제목처럼 무엇다움을 강요하는 수식어가 없이도, 오직 그 이름의 존재만으로 하나의 인격이 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모든 김지은에게 그 세상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야만 한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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