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가 온다 [사람]

이 날 만큼은 센치해져볼게요
글 입력 2020.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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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이런 날은 유독 일어나기 힘들다. 자도 자도 졸리고, 새벽 6신 줄 알았는데 시간을 보면 어느새 10시가 훌쩍 넘어 있다. 몸이 저절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보다 억지로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야 하는 날이다.

 

비에 대한 내 감정은 다소 복합적이다. 비가 내리는 소리와 창문에 맺힌 빗방울은 없던 감성까지 끌어내는데, 걸리적거리는 우산을 쓰면서 신발 속 양말까지젖는 건 또 불쾌하다. 비를 보는 건 좋지만 맞는 건 싫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도 비를 애정 하는 이유는 ‘비가 와서’라는 구실 좋은 변명으로 좀 더 편히 사색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지만 이날만큼은 좀 덜 웃을 수 있고, 좀 더 우울할 수 있고,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다. 이유 없는 센치함이 허용되는 날.


 

Sad Café Gray Rain (feat. 정영은, XenomiX) -마크툽

 

 

오늘같이 쉬는 날엔 꽤 사치스럽게 사색을 부려볼 수 있다. 이어폰을 꽂고 따뜻한 차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아준다. 그리고 괜히 지나간 인연들을 곱씹어보곤한다.

 

외로움을 심히 타는 시기가 가끔 있다. 사실 요즈음 그러한데, 이유 모를 공허함이 자꾸 찾아오는 것이다. 성취의 부족인지, 애정의 부족인지 알 수 없다. 곁에친구들과 가족들은 전과 같이 그대로인데 마음을 둘 곳이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텅 빈 듯한 웃음을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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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갈망이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이 감정 때문에 홀로 방황해왔다. 내 감정을 홀로 간직하기보단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했는데 주로 대상은 부모님보다 친구들이었다.


어떤 무리에 들어가더라도 한 명의 절친은 무조건 형성했다. 그렇게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절친들은 여럿이었다. 이때다. 누군가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가 영혼까지 빠져나간다는 감정을 알게 된 시작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건지 나는 몰랐었다. 관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것들을 공유하고 싶었던것뿐이다. 정말로 다양하고도 숱한 관계를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각기 다른 1인칭의 세상을 사는 가운데 3자, 즉 타인의 모든 감정과 상황을 감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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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참으로 힘들다. 애초부터 공석인 자리였으면 몰라도, 누군가 왔다 간 자리는 너무나도 크다. 내가 경험한 이별을 이성과의 관계로 국한하고 싶지 않다.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이었고 그들이 떠나감에 마음 아파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오픈한 걸까.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나. 장난이 너무 심했던 걸까.’ 남겨진 나는 내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자책하곤 했다.

 

시행착오 끝에 많은 가벼운 관계를 만들기에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안정된 인간관계라고 이름을 내릴 수도 있겠다. 세 손가락보다 적은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는 것 또한 성공했다. 하지만 마음속 가장 깊은 불안감이 불쑥 올라올 땐 나는 그들을 피해 숨어버린다. 지독한 불안감은 상대방에게 성급히 모든 감정을 표출해내고 싶은 충동을 이끌기에, 이를 애써 눌러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1/2 아니 1/3의 감정만 토해낸다.

 

이것이 내가 지나간 인간관계를 반추해가며 습득한 나름의 노하우다. 한 친구가 말했다. 너는 항상 모든 걸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숨긴다고. 그리고 터져버린다고.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네가 나한테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오래 함께하고 싶어 이러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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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지한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비의 무게는 진지함과 잘 어울린다. 때맞춰 나는 불안하다. 그렇기에 후두두 떨어지는 빗소리에 맞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연결음을 들어본다. 그리고 친구의 목소리에 응하며 오랜만에 진지한 이야기를 시도해본다.

  

아무래도 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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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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