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크니의 아이패드 [시각예술]

내가 망각했던 삶과 가치관을 그리는 미술
글 입력 2020.04.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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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중 미술의 선호도는 카페 인테리어를 살펴보면 대강 보인다. 작년 가을에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가 자주 보였다. 미술에는 관심이 없지만 한국에 유행하는 카페투어에 승선하는 사람이라면 그림이 눈에 익다 못해 ‘도대체 어떤 그림이길래 여기저기 다 붙어있어?’라며 작가 이름 한 번 쯤은 살펴봤을지도.

작년 2019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를 보고 온 친구는 호크니를 “미친놈!”이라며 흥분했다. 대표작이라면서 A Bigger Splash(1967)을 보여주었는데, 당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로 관심이 복귀했던 터라, 딱히 흥미가 가지는 않았다. 캔버스의 구역을 정확히 나누는 A Bigger Splash(1967)와 정형화의 정 반대편에 선 모네는 반대 위치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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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igger Splash(1967)

 


내가 자주 전시회를 같이 보러 다니는 사람이 세 명 있다. 그 중 두 명이나 데이비드 호크니를 최애 예술가라고 손꼽았다(당연히 이 중 한 명은 호크니를 욕한 친구다). 친구가 매료되었던 전시는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었으며, 그 때 호크니는 국내 전시계에 첫 발을 들였다(전시계라고 제한하는 이유는, 신세계 SSG 광고로 이미 당신은 호크니를 맞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1년 사이에 열성적인 팬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은 ‘도대체 그의 작품이 어떻길래?’라는 궁금증을 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호크니를 딱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호크니전"이라고 검색하면 로드되는 모든 팜플렛, 티켓은 이 그림 하나로 점령되었는데 뭘 더 찾아봐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친구가 보여줬던 대표작에서 문전박대를 한 것이다. 그랬으면 안됐다.


 

I began drawing the winter trees on a new iPad, then this virus started

나는 나의 새 아이패드로 겨울 나무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바이러스(코로나)가 퍼졌다.


- 데이비드 호크니

 

 

호크니는 노르망디에서 COVID-19(이하 코로나)에 대비한 자가격리 중이다. ‘코로나가 거기서 왜 나와?’라고 생각했는가? 호크니는 이 노르망디에서 3월부터 작업중이다. 현재까지 10여개의 작품을 공개했는데 정원에 앉아 아이패드로, 피어나는 봄을 그리고 있다. 예술가와 현재 사이에 선을 그어 놓지는 않았었는가?

 


세상의 한 부분, 봄의 회복
the renewal that is the spring in this part of the world


제일 먼저 그리기 시작한 것은 겨울나무이다. 우리가 서 있는 시점이 이 곳이 겨울나무가 결국 꽃을 피우는 봄이며, 현재 호크니가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부분이다. 병리로 시작한 대공황 상태에 대한 위로 뿐만이 아니라, 잊었던 ‘초록색’과의 교감 또한 권하고 있다. 전통방식의 회화도구가 아닌 패드를 이용한 작품이라는 점도 그의 그림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보듬어 주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은가?(호크니가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것은 익히 유명하다)
 

 

I went on drawing the winter trees that eventually burst into blossom. This is the stage we are right now.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시점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점은 결국 겨울나무가 꽃피울 때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

 


봄은 결국 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작품의 이름이 이렇다. 나는 어느 순간은 예술가의 배경과 작품의 맥락을 알고 싶지 않기도, 너무 알고 싶기도 하다. 전시장을 방문하는 나도 팜플렛을 꼼꼼하게 읽기도, 쳐다보지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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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2020)

 


아무 말 없이, 미술관의 벽 한 면에서 이 풀들을 봤다면 또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크니가 바이러스에 대해 직접 언급한 말들이 내가 그림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나도 위로를 받고 싶었던 세상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여전히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코로나 사태는 끝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코로나블루에 고통스러워하는 나와 주변사람들을 돌아봐야 하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한 계획도 세워 두어야 한다. 여기에 호크니의 신작 소식을 전한 기자는 한 쪽 눈만 가지고 세상을 보지 말자고 덧붙였다. (동시에 당부하고 싶다. 코로나를 손에서 놓아주라는 것이 아니다.)

83세의 호크니는 자신은 죽을 것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요즘같이 인간이 원초적인 직감과 혐오감정에 얽매이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인지, 나도 고전적인 말이 많이 떠오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모든 것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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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2020)

 


실시간 스트리밍의 시대에서 우리는 현재의, 최신의 정보를 갈구한다. 하지만 현재의 것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게 마련이다. 고전을 강조함에 밀려 나는 호크니를 거부하고 은연중에 모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점을 통틀어, 현재만큼 중요한 게 없을 것을 망각하고, 예술이 인간과 동떨어진 고귀한 어떤 것이라고 추앙만 했을 나였을지도 모른다. '예술성'이라는 오만함이었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호크니가 그렇게 멋있게 느껴졌다. 시대와 예술과 실제를 구분한 내가 원인임을 알면서도 그가 나에게 있어 멋있어진 것이니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나와 같은 날짜를 보내고 있는 그가 실시간으로 보내는 위로는 가히 감동이었다. 그 어떤 고전에서 파헤쳐 온 무엇보다도.

코로나사태에 제한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이 시간의 호크니에게 위로 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또 오늘을 산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코로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은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참고자료
David Hockney shares exclusive art from Normandy, as 'a respite from the news' by Will Gompertz(2020.04.01)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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