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과 노래의 상관관계 [음악]

노래를 트는 순간, 그 시절이 떠오른다.
글 입력 2020.04.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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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이후에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결과, 나에게 여행이란 다른 환경에서 또 다른 일상을 맞는 것이다.


큰 의미부여 없이 숨을 쉬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었기에 관광지에 대한 감탄보단 그 시점의 대화, 분위기가 나의 여행을 채워주었다. 조금은 특별한 일상 속에선 항상 드라마의 OST 같은 배경음악이 있었기에 추억을 회상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때 그 노래를 듣는 것.

 



별 침대 옥상 (월콕스)


 

제주1 크기.jpg

131.jpg

(위) 앨범커버와 비교되는 제주바다

(아래) 실제 월콕스 앨범커버


 

스물 둘의 여름이었다. 항상 가족과 가던 제주도에 처음으로 친한 언니와 갔다. 성향이 비슷할뿐더러 체력도 없던 우리에게 여행의 목표는 하나였다. 잠깐이라도 진짜 휴식을 취해보자! 그래서인지 우리 숙소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고 주변에는 정말 바다와 우리뿐이었다.


어둑해지기 바로 직전 도착한 첫날, 부리나케 바다를 보러 나갔다. 드넓은 바다 위로 타이밍 좋게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을 받았고, 정답은 이 노래의 앨범 커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진을 찍고 난 후 잠깐의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정말 가사 속의 별빛 같아 보였다는 점 이랄까?



쏟아지는 별빛은 여름 밤의

Rain Rain Rain


 


Only You (Parson James)



두번째 제주 크기.jpg

 

 

인생이 안 풀린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만큼 속이 답답해질 때도 없는데, 그 응어리를 강제로라도 놓고 싶을 땐 뻥 뚫린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아준다. 내가 제주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남들은 척척 해내며 잘 해내고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괴로울까 자책도 하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불쌍해서라도 조금은 인생을 순탄케 해줄 수 있는 게 아닌지 원망도 하면서 하루를 버틸 때 바다는 이런 나를 위로해준다. 호텔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산책하며 이 노래를 듣는데, 코러스로 반복적으로 나오는 “Only you”라는 구절은 내 마음을 간지럽혔고 뭉클하게 만들었다.

 



2 soon (Keshi)



영월 크기.jpg

 

 

도심에 거주하는 것의 장점은 단연 편리성과 접근성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와 의식적으로 멀어질 필요가 있다. 자리에 앉아 버스 밖을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풍경이 건물이 아닌 강일 때,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지나 기사님께 직접 하차 신호를 보내며 내려야 할 때, 분명 같은 한국이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낯선 느낌이었다. 영월은 그런 곳이었다.


시내에서 버스 한 대를 타기 위해 약 3-40분을 기다려야 했지만,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만난 할머니와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반대로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땐, 염소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깊숙이 들어간 곳에선 믿을 수 없을 정도인 별 무더기를 볼 수 있었다. 사진으론 절대 남겨지지 않는 아쉬움에, 그때의 황홀함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틀고 그 속에 저장했다. 생생한 광경이 지금까지 떠오른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별을 바라보며 찌질하게도 울컥했던 감정을 나는 아니 우리는 기억한다.

 



Your Dog Loves You (Colde)



미드타운 크기.jpg

 

 

타지에서 꽤 오래 살게 되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실은 낯선 것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움을 잊어버리게 된다. 무감각을 벗어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여행 속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주거지를 피해 한 정거장만 도망쳐도 잠시나마 다시 낯선 설렘을 만날 수 있다.


반복적으로 말했다시피, 설렘 속에서 특별한 것을 찾으려는 건 아니었다. 상쾌한 바람과 햇볕을 온전히 느끼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필요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모두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주기적으로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몸을 움직여 걸어보는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삶을 영위하는 패턴이 비슷해진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거나 공부를 하거나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무표정의 얼굴을 한 채 살아간다. 잠시 그 속에서 빠져나와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걷다 보면, 나는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깨닫는다.


나 또한 새크라멘토에서 그랬다. 익숙한 외로움은 한 번 더 나를 찾아왔고 전환이 필요했다. 트램을 타고 미드타운으로 향했고 함께 간 언니에게 풀리지 않는 한탄함을 토해내며 무작정 걸었다. 또, 노래를 틀고 영상으로 서로를 찍었다. 그 영상 속 나는 참 오랜만에 웃고 있었다.

 

기타 때문인지, 멜로디 때문인지, 소중함을 내포한 가사 때문인지, 아니면 감미로운 목소리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분명 진심으로 기뻐했고 오랜만에 재생한 지금, 2년 전 흡수했던 햇살의 꿈틀거림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진다.


*


‘여행하면서 주구장창 노래를 듣고 여행이 끝난 순간 듣지 않기’ 스스로 정해놓은 작은 규칙이다. 평행이론에 빗대는 것은 너무 간 해석이 아닌가 싶지만 그 시절 나는 비슷한 일상을 살았지만 분명 다른 나였다. 짜증과 예민함으로 범벅이 된 평소의 나로 추억을 물들고 싶지 않았다.

 

치열한 일상을 외면하고 싶지만 바로 여행을 떠날 수 없을 때, 그제서야 나는 그 시절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재생해 기억을 되새기며 지금을 버텨낸다.

 

 

(삽입된 사진은 모두 직접 촬영했습니다.)

 

 

 

에디터 박수정 tag.jpg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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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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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인
    • 저 역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의 무감각과 익숙함을 벗어나 공간만의 특별함을 느끼고 그 공간과 시간만의 온도를 느끼러 가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느꼈던 처음 만난 할머니와, 염소 그리고 별 무더기는 일상속의 특별함을 선물한 것 같네요.  여행에서의 그 온도를 플레이리스트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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