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싸'들의 성장기 - 영화 "월플라워" [영화]

글 입력 2020.04.0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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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날부터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겉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좋아했다. 내가 스스로를 ‘아싸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그저 우르르 몰려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는 자신감 없고 소심한 주인공에게 나는 곧잘 몰입하곤 했었다.

 

‘아싸적인’ 캐릭터가 주도하는 서사에 이끌렸던 이유로는 몇 가지를 대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이유는 위에서 밝힌 바와 같고(공감이 잘 되었기 때문에), 두 번째로는 현실에서는 충족되지 못하는 자기표현의 욕구를 영화 속 아싸들이 대변해주는 것을 매력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기성세대, 혹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아싸들의 일탈은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강하게 흡수한다.

 

마지막으로, 아싸가 주인공인 영화는 대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또래 집단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외로움을 느끼지만, 이윽고 마음 맞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게 되며 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대부분의 전개 방식이다. 비극보다 희망적인 분위기의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전개 방식이 마음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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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플라워> 또한 위와 같은 ‘아싸 서사’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작품이 지닌 매력을 해체해 본다.

 

 

 

‘아싸’인 주인공 - 찰리(로건 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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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를 잃고 난 후 외톨이가 되어버린 찰리. 그는 잠깐만 봐도 수줍은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정도로 타인을 어색해하고 소심하게 행동한다. 불안정한 시선 처리, 작은 목소리, 쉽게 붉어지는 얼굴은 남들에게는 좋은 놀림거리가 되어준다.

 

고등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장에서, 찰리가 지닌 이런 특징들은 ‘비주류’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남성다움’을 중시하는 또래 남자 집단에서 찰리의 존재는 눈엣가시, 혹은 좋은 먹잇감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찰리는 딱히 눈에 띄는 짓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faggot(남자 동성애자를 낮잡아 부르는 말)’으로 불린다거나, 수업 시간에도 무시를 당하는 등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집에서도 그는 가족들의 걱정을 안고 사는 존재이다. 그의 부모, 누나, 형 등은 당연히 그를 사랑해마지않는 가족들이지만, 절친의 자살과 어렸을 적 어떤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가끔은 환각까지 보는 찰리를 가족들은 ‘돌보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자식과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도 찰리를 보면 “학교 생활은 어떠니?”라며 걱정하는 마음을 비추고, 찰리는 실은 잘 적응하고 못하고 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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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좌)과 샘(우)

 

 

이후, 찰리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네고 친해지게 된 ‘샘’(엠마 왓슨)과 ‘패트릭’(에즈라 밀러)은 또한 아싸 기질이 다분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아싸인 이유는 주인공처럼 자신감이 없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주류 문화를 의식하지 않고 본인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꾸미지 않고, 남들처럼 행동하지 않고, 남들의 취향을 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암묵적인 아싸 취급을 받는다. 소심한 찰리처럼 대놓고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건수 하나만 잡히면 언제든지 괄시할 수 있는 부류로 여겨지는 것이다.

 

신입생인 찰리, 그리고 비록 4학년이지만 자유로운(?) 삶을 사느라 아직 1학년의 수업을 듣는 패트릭은 같은 수업에서 마주치게 된다. 1학년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하는 패트릭을 보고 호감을 느낀 찰리는 한 번의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고,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 되어 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꾼다. 특히, 뒤이어 만나게 된 패트릭의 이복 남매 샘은 찰리의 삶에 특별한 존재로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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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품들의 섬에 온 걸 환영해!

 

 

 

이렇게 굴면 한국에서는 ‘인싸’일 텐데


  

바른생활 어린이(?)였던 찰리는 샘과 패트릭을 만나 특별한 경험들을 쌓아 간다. 친구의 파티에 초대되어 참석해보고, 난생 처음 마약도 접해 보고, 자신을 위한 축배도 들어 보며 그들과 특별한 우정을 쌓는다.

 

특히, ‘음악’은 샘과 찰리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둘이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의 음악 취향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올드 팝, 록 밴드를 좋아하는 샘의 취향에 공감하는 찰리는 종종 샘에게 음악 테이프를 받으며 그녀의 세계를 더 깊이 알아 간다.

 

 

 

 

찰리와 샘이 공통적으로 좋아한다고 밝혔던 밴드 ‘The Smiths’의 노래 'Asleep'이다. 제목처럼 들으면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잔잔한 노래. 가사도 “날 깨우지 마”, “잠이 들게 해줘”, “혼자 내버려 둬” 등 고독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쩌면 이 노래만큼 그들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매개체도 없는 듯하다. 남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는 당당함에, 파격적인 파티에,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음에도 그들이 ‘주류’처럼 여겨지지 않는 이유 말이다. 한국에서는 잘 놀고 자신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인싸’라고 평가하지만, 영화 속 배경에서는 그것과 별개로 개성적 감수성을 지키고 피력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과의 변별점이 된다. 남들이 모두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를 들을 때 홀로 80년대 록발라드에 열광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자신의 목소리의 귀 기울이고 자신의 취향에 솔직한 그들은 활기차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찰리, 샘, 그리고 패트릭이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환상적인 음악을 듣고 감동을 이기지 못하여 차 밖으로 몸을 빼고 터널을 달리는 장면은 과히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면에 곁들여지는 찰리의 대사도 우리의 마음을 대단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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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eel infinite

(무한한 것처럼 느껴져)

 

 

샘과 패트릭을 만나 자신감을 배우고,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해 나가며 점차 무궁무진한 자신을 깨닫는 찰리의 모습은 우리에게 해방감을 안겨준다.

 

 

 

상처와 성숙


 

찰리, 샘, 패트릭은 모두 각자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

 

찰리는 절친을 잃고 의기소침했던 청소년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친구들을 만나 단단한 사람이 된다. 처음 페트릭의 파티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어.”라며 자신 없어 했던 그는 어느덧 자신을 넘어 타인의 상처에도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해 용기를 가질 줄 아는 어엿한 고등학생으로 성장한다.

 

세 인물의 상처는 각각 다르지만 그들 상처의 회복 과정과 그들의 성장 과정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찰리가 친구들을 위해 가장 용기를 내었던 순간이라고 하면 단연코 패트릭을 위해 건장한 남학생들에게 망설임 없이 주먹을 지른 순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주먹다짐 사건의 배경은 또한 패트릭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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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은 학교 친구 ‘브래드’와 동성연애 중이었다. 찰리는 학기 초 파티에서 의도치 않게 그 사실을 알게 되고, 패트릭의 연애사에 대해 간략히 전해 듣게 된다. 둘이 비밀리에 연애 중이라거나, 아직은 술 없이 스킨십을 못한다거나,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거나 하는 등 둘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브래드의 아버지에게 둘의 연애를 들킨 것을 이유로 그들의 연애는 안 좋은 결말을 맺는다. 브래드는 아버지에게 맞아 얼굴에 상처를 달고 학교에 나타났는데, 이상하게도 패트릭이 일방적으로 브래드에게 집착했으며, 패트릭만 게이라고 소문이 난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패트릭은 전교생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고, 연인이었던 브래드로부터도 완전히 외면당하게 된다.

 

혼자한 연애가 아님에도 화살이 온통 패트릭에게만 쏠린 것은 학교 내 그들의 입지가 어떠한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브래드는 운동을 잘하고 인기가 많은 소위 인싸였으며, 그렇기에 얼마든지 소문의 주동자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또한 분명히 둘은 진실된 사랑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래드가 패트릭을 배신한 것은, 브래드는 자신의 진짜 마음보다는 자신의 이미지와 주변 여론을 더 신경 쓰는 인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한 때 사랑했던 전 연인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심지어는 ‘호모’라고 조롱받은 패트릭은 브래드 무리와 싸움을 일으켰지만 일대 다수로 싸움을 이길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싸움의 시작에는 패트릭 혼자였지만 끝에는 찰리가 함께했다. 찰리와 패트릭은 그것을 계기로 더 깊은 우정을 다지게 되고, 패트릭은 자신의 과거사를 찰리와 나누며 상처를 치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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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는 어렸을 때 얻은 가혹한 상처가 있다. 11살의 불과한 나이에 아버지의 상사로부터 성 학대를 당한 것이다. 찰리도 그녀와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다. 영화 초반부터 찰리는 정신적으로 불안하며 ‘헬렌’이라는 그녀의 이모와 관련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이모가 자신의 선물을 가지러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인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사건의 진정한 전말은, 헬렌 이모와 찰리가 둘이 남겨졌을 때 이모로부터 성 학대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샘과 찰리의 이러한 비슷한 상처는 한편으로는 둘의 관계가 진전하지 못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찰리는 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다가가기를 주저한다. 샘 또한 찰리가 누구보다도 좋은 사람임을 잘 앎에도 다른 남자친구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훗날, 샘은 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사람들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걸까?"

 

그러자 찰리가 대답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온당하다고 여겨지는

크기의 사랑만을 받아들여."

 

샘과 찰리는 어쩌면 어릴 적 학대의 기억으로 인해 자신이 함부로 여겨져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은 크지 않다고 여기기에, 서로의 마음을 앎에도 겁을 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순간, 마침내 그들 서로에게 어울리는 크기의 사랑을 주기로 결심한다. 자신보다 더 근사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지켜보기만 했던 찰리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하찮은 크기의 사랑만 받아들였던 샘은 찰리의 넘치는 마음을 받아들인다.

 

 

 

조금은 다른 해피 엔딩


 

<월플라워>도 여타의 성장물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결말을 맺고 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희망을 안겨 주지만, 이 영화만이 가지는 매력은 작품 내 인물들 모두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 진행형’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이다. 찰리가 첫눈에 반했던 샘의 사랑을 쟁취해내고 평생을 함께한다거나 하는 뻔한 종지부가 아니다. 잊고 있었겠지만 찰리는 졸업까지 한참 남은 1학년이고, 샘과 패트릭은 졸업해서 다른 길을 가야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영화가 해피 엔딩인 이유는 위에서 밝혔듯이 그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찰리, 샘, 패트릭 서로에게처럼 자신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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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할 때까지의 학교생활을 걱정했던 찰리, 그러나 그는 패트릭과 샘이 없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패트릭은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향유할 것이며, 샘은 꿈에 그리던 대학교에서 멋진 삶을 펼쳐나갈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그들이 나아갈 방향만 가리켜줬을 뿐이다. 마침표 없이 끝난 그들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I feel infinite

(무한한 것처럼 느껴져)

-영화 초반 찰리의 대사-

 

And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이 순간, 맹세코 우리는 무한해)

-영화 마지막 찰리의 대사-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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