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시대성을 입힌 갈릴레이의 삶 [공연예술]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리뷰
글 입력 2020.03.3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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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연극을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제작하기에 앞서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상업성, 작품성, 흥행성 등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서 선택지의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기도 하다. 만일 필자에게 단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통시성(通時性)'을 꼽을 것이다. 어느 시대를 가도 통용되는 서사라면 수천 년 전 고전 작품이라도 무대 위로 불러낼 수 있지 않던가.

 

연극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결국 연극의 정체성을 시대와 사회의 모습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극계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으며, 사회에 대해 그들이 갖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연극은 우리의 현 위치를 가리키는 나침반으로써의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제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연극의 동시대성, 즉 작품의 주제가 현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짚고 넘어가야 할 화두라고 생각했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속에서 이를 발견하고자 했다. 과연 17세기 이탈리아의 어느 과학자의 생애를 통해 동시대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을지 거듭 고민했다. 또한 서사극을 주창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작품인 만큼 서사적 요소를 배제한 채로 상연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말해 관객의 능동적 성찰을 요구하며, 이성을 일깨움으로써 연극을 관찰과 성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서사적 요소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작품에 나타난 서사적 요소와 현대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했다.

 

 

 

<갈릴레이의 생애>에 나타난 서사적 요소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하면 보통 ‘서사극’ 양식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연극을 사회의 공론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간 정신을 일깨울 미학적 구상을 펼쳤다. 감정이입을 목표로 하는 전통 연극과 달리 관객의 이성을 일깨우고, ‘장면의 내용요약’, ‘노래’, ‘관객을 향한 대사’ 등 서사적 장치의 힘을 빌려서 관객이 무대 사건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려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그 예이다.[1] 자연스럽게 이 작품도 연극을 관찰과 성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서사적 요소를 활용했을지 눈 여겨보았다.

 

먼저 우주를 연상시키는 무대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두 명의 악사와 적극적으로 쓰이는 노래가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악사들은 극이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관객을 향해 대사를 전달하거나 장면 전환 때 내용을 요약하여 노래로 전달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로마 추기경 집의 무도회 장면에서 가면을 쓴 배우들을 활용해 권위로부터 느끼는 갈릴레이의 심리적인 압박감을 환상으로 표현했던 점과, 수공업자조합의 가장행렬 장면에서 클럽을 연상케 하는 음악을 사용해 쇼적인 구성을 했던 연출이 흥미로웠다. 대사량이 많고 낯선 과학적 용어가 쏟아지는 극이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서사적 요소를 통해 역설적으로 ‘몰입’해서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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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레히트 기법과 관련하여 이성열 연출은 ”서사극이나 생소화 효과와 같은 것들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워낙 대사가 많은 작품이라 지루함을 덜고자 대중적인 요소인 노래와 음악을 원작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브레히트처럼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해서 이성을 확보하려던 장치로 사용하기보다 지루함으로 인해 무대에서 멀어지려는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반면 필자는 연출의 의도와 달리 지루함을 없애기 위한 장치를 ‘서사적 요소’라고 인식하고 작품을 관람했기 때문에 예상 밖의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브레히트의 작품이자 과학자가 주인공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들으면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가볍지 않은 소재와 주제 그리고 18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극장으로 들어서기 전까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다만 그런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볼거리가 많은 공연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서사적 요소 덕분이라 생각했다.

 

 

 

현대사회에 주는 시사점


 

 

“우린 아직 멀었단다, 얘야. 우린 사실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서 있는 거란다.”

 

 

새 시대의 주역으로 상징되는 안드레아가 국경의 어린 소년에게 위와 같이 말하면서 막이 내린다. 이 장면에서 뜻 모를 여운을 느끼게 되었는데, 필자는 잔상의 원인을 발견하려는 동시에 브레히트의 수많은 작품 중 <갈릴레이의 생애>를 택한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는 “안드레아에게 『디스코르시』를 건네주는 14장과 『디스코르시』를 가지고 국경을 넘는 15장은 전적으로 브레히트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창작”[2]이라고 한다. 실제로 갈릴레이의 삶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브레히트의 시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동시에 작가 브레히트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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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가는 시대의 경계에 서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가는 선구자로서의 갈릴레이’ 그것은 낡은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횡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과 종교, 감정과 추상이 판치던 세상에서 갈릴레이는 이성을 믿으라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당연한 것들을 다시 의심하라고 강조했다. 이는 옛것이 부정당하고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현대 사회를 비추는 말처럼 들렸다. 또한 갈릴레이의 주장은 철회되었지만, 다음 세대(안드레아)를 통해 국경을 넘어가면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다. 비록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경계를 넘어가는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전반에 걸쳐 급진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남북의 발걸음, 정치적 갈등, 외교적 문제, 젠더 갈등 등 과도기적 혹은 어느 경계에 위치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갈릴레이의 생애>가 시의적절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던 관념이나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편견도 의심할 필요가 있듯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품었던 브레히트의 믿음처럼 우리에게도 작은 믿음이 필요했던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1] 오성균, 『갈릴레이의 생애 프로그램북』, 국립극단, 2019.

[2] 이성열, 『갈릴레이의 생애 프로그램북』, 국립극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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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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