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나 다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사람]

글 입력 2020.03.15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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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눌러 참다가 속병이 나는 이들이 있다. 다르게 말하면 타인에게 힘든 걸 티내지 않고, 항상 평소 같은 모습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한편으로 좀 부러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에게도 투정부리지 않고 혼자 처리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니 이게 바로 성숙한 어른 아닌가.

 

나는 또한 화를 잘 내는 이들도 부러워했다. 자신이 당한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을 즉각 표출하고, 분노를 연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내 눈에는 언제나 세상에 당당하게 도전하고자 하는 용감한 이들로 비춰졌다.

 

그럼 나는?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 타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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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나는 가장 멋없고 찌질한 유형에 속한다. 투덜대고, 혼잣말로 욕을 뱉고, 친구에게 토로하고, 알코올을 마시면서 타닥타닥 한탄글이나 쓰는 사람이다. 물론 화룡점정으로 자기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지렁이 기어가는 글씨로 저주의 일기를 썼고, 나이가 좀 더 먹어서는 블로그에 비공개 글을 썼으며, 요새는 휴대폰 일기장이나 트위터에 투덜투덜댄다. 매체와 방식은 바뀌었지만 요지는, 결코 분노를 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시원하게 토해낼 줄도 모른다는 소리다.

 

이런 나의 스트레스 처리 방식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또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어른스럽지도 못하고 쿨하지도 못하고! 감정을 잘 관리한다는 건 대체 얼마나 더 성숙해야 가능해지는 일일까?

 

나의 감정 관리는 여러모로 미숙하다. 일례로,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너무 공허하고 불안할 때면 손발이 차가워지고는 한다. 손발이 찰 때는 내가 뭔가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 그 불안의 근간은 강박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해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보이지 않는 강박의 채찍이다.


계획했던 대로 일과를 진행하지 못할 때도 손발이 차가워지고,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도 손발이 차갑다. 이건 얼마 전에야 깨달은 점이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혈액순환에 좋은 음식을 챙겨먹어도 낫지 않는다고 걱정했는데, 사실은 이런 원인에 기인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집착과 강박이다. 강박은 나를 성장시키지만 또한 고통을 준다. 언제나 나는 발전해야 하고 그걸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밀어붙이다가도,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그 문제는 노력이라는 관념의 실체가 더 이상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눈앞의 단기 목표만을 좇던 수험생의 모습 그대로 멈춰있는지도 모른다.


재밌는 건 막상 수험생이던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했다는 것이다. 자유를 얻고 나면 그건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강박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매일 밤마다 허무하고 괴로운 기분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괴롭고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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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힘든 건 아니다’. 이 사실은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들고 강박이 나를 잠식하는 그 순간에, 또 다른 형태로 나의 행동과 생각을 검열하고는 한다. 너는 너무 자의식이 강해. 너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 그러지 말아야 해. 내면으로 파고들기 전에 고리를 끊고, 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

 

가끔은 어떤 특정의 틀 안에서 위안을 얻고자 할 때도 있다. 사람들이 MBTI나 심리테스트, 운세나 사주 등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까? 그러나 뇌과학을 공부하고, 우울증 자가진단이라는 걸 해봐도 도통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죽고 싶지도 않고 죽을 만큼 괴롭지도 않으니까. 갑자기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거나, 나 자신을 해치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나는 지극히 정상인 게 분명하다. 그냥 현대인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자주 괴롭고 가끔 행복할 뿐이다. 이 말은 어쩌면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아니면 반대로 가장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

 

누구나 다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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